우리 옛 그림

동양화 화론(畵論) 1 - 6법(六法)과 6요(六要)

從心所欲 2018. 7. 22. 21:12

 

 

화론(畵論)은 동양 회화에 관한 이론과 논평을 말한다. 화론의 범주에는 창작의 원리에서부터 기법, 품평,

감정, 비평, 역사, 감상과 수장에 이르는 모든 논저가 포함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동양 문화의 특성에 따라

서양과는 아주 다른 화론이 생기게 되었다. 그 가장 중요한 점을 든다면, 동양에서는 처음부터 그림이 대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재현하는 데에 그 주된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양 화론을 논할 때면 ‘미술’

이라는 현대적 어휘가 내포하는 여러 가지 개념과는 전혀 다른 도덕적, 형이상학적, 또는 문학적 어휘들이

사용되게 된다.

 

동양 회화의 발달에 주도적이었던 중국이 역시 화론의 발달에도 중추적이었다. 즉, 음양오행설, 도가(道家),

유가(儒家) 그리고 북송시대 이후에 사대부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던 선불교(禪佛敎) 등의 사상적 배경에서

회화의 존재 이유, 작화(作畫)태도, 회화에서 추구하는 가치 등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생겨났다.

중국의 화론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싹텄지만 한대(漢代)까지도 화론은 단편적이었다.

 

그러다 위진(魏晉)시대로 접어들면서 문인화가들에 의한 본격적인 화론이 나타났으며, 남북조(南北朝)시대에

이르러 고개지(顧愷之, 345~406)가 썼다는 《논화(論畵)》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중국 미술의 기틀을 닦아 놓은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 고개지는 인물, 동물, 풍경화 등 각 방면에 재주가 있었으며, 특히 인물화에 뛰어났었다고

한다. 중국 미술사에서 이름과 화풍이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화가이기도 하다.

 

중국에 현존하는 화론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화론은 《고화품록(古畵品錄)》이다.

《고화품록》은 중국 남북조시대 남제(南齊)의 화가 사혁(謝赫, 500~535년경 활동)이 저술한 1권으로 된

화가품평서로, 본래는 《화품(畵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532년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화품록》은

화가 27인을 제1품에서 제6품까지 나누고 짧은 평론을 덧붙였다. 이 책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책의 서문에

회화창작의 요체로서 서술된 육법(六法) 때문이다. 육법은 그림을 그릴 때 꼭 있어야 할 6가지의 창작 원칙으로,

종래 여러 가지 어휘로 표현되던 사항들을 정리하여 표현한 것이다. 사혁은 이를 기준으로 그림의 우열을 나누었고

그가 제시한 육법은 이후 회화평론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때부터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같은 미학적 개념도

등장하게 되었다. 《고화품록》의 서문은 아래와 같다.

 

【무릇 화품(畵品)이라는 것은 대개 여러 그림의 우열을 논한 것이다. 그림이라는 것은 옳은 일은 권하고 악한

일을 타일러 못하게 하며, 나라가 흥하고 쇠함을 드러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천여 년 동안 사람들

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림을 펼쳐보면 그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그림에는 육법이 있다 하나,

모두 갖춘 사람은 드물었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각각 그 육법 중에 한가지씩만 잘하였다.

          

육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기운생동이요(一,气韵生动是也)

둘째, 골법용필이요(二,骨法用笔是也)

셋째, 응물상형이요(三,应物象形是也)

넷째, 수류부채이요(四,随类赋彩是也)

다섯째, 경영위치요(五,经营位置是也)

여섯째, 전이모사다(六,传移模写是也)

 

오직 육탐미(陆探微)1와 위협(卫协)2만이 이를 모두 갖추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혁은 6법을 이렇게 열거만 하고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남기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이후 이들 용어에

대한 여러 가지 구구한 해석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기운생동

육법 중의 첫 번째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지만 그 뜻이 처음부터 분명히 전달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사혁이 활약하던 시대에는 인물화가 가장 중요한 화목(畫目)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구절은 인물화에서 대상의 기(氣), 즉 정신이, 보는 사람에게 공감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란 대상의 기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념은 당나라 때부터 조금씩 변천되기 시작하였다. 9세기 중엽에 활약한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에서 형사(形似)3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운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1070년대 북송의 곽약허(郭若虛)는 ≪도화견문지(圖畫見聞誌) ≫ 에서 기운이란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화가가 날 때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며, 높은 인품과 학식을 갖춘 사람은 자연히 기운을 갖추게 되며

기운이 높으면 생동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명나라 말기의 동기창(董其昌)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화선실수필(畫禪室隨筆)≫ 에서 “기운은 천수(天授)의 기질이며 배울 수 없는 것이지만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산수화를 그리면 전신(傳神)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청나라 초기에 발간되어 지금까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동양화 지침서인 왕개(王槩)의 ≪개자원화전(芥子園畫傳)≫에서는 기운(氣韻)을 기운(氣運)으로 표기하였다.

이는 그 당시 산수화에서 중요시하던 기세(氣勢)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반영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기운생동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은 기운이 충일(充溢)해야 한다는

것으로 대상의 형태, 기질, 성격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작가의 주관적인 개성과 정신적인 기품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동기창의 초기 그림 〈구봉초은(九峰招隱)〉, 상하이 박물관 소장]

 

골법용필

골법용필(骨法用筆)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골(骨), 즉 뼈대, 또는 그림의 중요한 구조적 요소를 설정하는

데 어떻게 붓을 사용하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동양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필선에 관한 법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선인의 필체의 품격이나 골법의 습득을 비롯한 붓놀림에 관한 기법으로 회화의 중요한

표현수단인 붓의 사용에 관한 예술적 기법으로서의 결구(結構) 혹은 운필 방법이라고도 한다. 운필에 의하여

나타나는 형태 속에 골격을 형성시키는데 이는 변화 많은 먹색의 세밀한 톤과 여백의 표현에 의하여 자아내게

되며,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내면을 포착하는 화법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에서는 서예에 관한 이론이 화론보다 먼저 나왔고, 회화의 용필법은 서예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달하였다. 특히 9세기 중엽의 저술인 ≪역대명화기≫에서 글씨와 그림은 그 원류가 같다(書畫同源論)는

설을 내세워 서예와 회화에서 필선을 긋는 데 용필법을 중요한 요소로 삼게 되었다.

 

응물상형

응물상형(應物象形)은 대상의 형체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풀이할 수 있다. ‘대상을 직접보고 사실적인

형체를 중시하여 사생하는 것으로 이는 형태상의 사실, 즉 형사를 위주로 하는 화법을 말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상(象)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여러 가지 의미, 즉 물체의 단순한 외적 형태, 자연현상,

물의(物宜)4 등 깊은 의미를 고려하여야 하므로 물체의 외형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수류부채

수류부채(隨類賦彩)는 사물의 종류에 따라 채색을 가하는 것이나 명압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울러 대상의

종류에 따라 색채를 각기 달리 칠하는 것뿐만 아니라, 뒤로 가면 먹색에 오채가 있다고 하여 먹의 농담표현도

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경영위치

그림의 구도를 말하는 것으로 제재의 취사선택과 화면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형상의 위치 설정을 뜻하는

배치법을 말한다. 중국화의 구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는데 예를 들어 형상을 배치하는데 있어서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산점투시(散點透視)를 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화면 위에 그리는 형상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묘한 재단을 거칠 것을 요구한다. 교묘한 재단이라는 것은 화가의

이성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당나라의 장언원5은 입의(立意)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경영위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경영위치는

곧 장법(章法)6으로 입의(立意)에 의거하는 것인데 입의는 화가나 서예가의 머릿속에 있는 '복안(腹案)'이고

경영위치의 장법은 이미 가시적인 형태로 구체화된 입의의 물화(物化)이다. 전자는 무형이고 후자는 유형이다.

입의가 그림의 기초이기 때문에 경영위치는 곧 그림의 총요(總要)이다.”

여기서 입의는 곧 구성인데 이는 창작의 중요한 핵심으로 고개지가 제시한 ‘천상묘득’의 결과라고 하였다.

‘천상묘득(遷想妙得)’은 ‘생각을 옮겨 묘를 얻는다’는 의미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묘사할 대상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대상의 사상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체득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생각을 옮기는 것(遷想)이고,

점차 대상의 정신적 특징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분석하고 정련하는 과정을 거쳐 예술적인 구성을

획득하는 것을 바로 묘를 얻는 것(妙得)이라고 보았다.

 

전이모사

전이모사(傳移模寫)는 모사에 의해서 대가의 좋은 그림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법은 동양 회화의

특수성 중의 하나인 복고주의(復古主義)와 임(臨),방(倣),의(擬), 필의(筆意) 등 옛사람의 그림을 그 정신 및

형태를 따라 그리면서 그 기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묘화의 기법을 수련하기 위하여서는 전통적인 화법의

묘사를 체득하는 한편 언제나 새로운 창조는 전통의 완벽한 습득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 육법은 사혁이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라기보다는 그 당시까지 발달해 온 회화에 대한 이론을 그가 체계화한 것으로 

본다. 그 한 예로 동진(東晉)의 고개지(顧愷之)가 쓴 《논화(論畵)》에 이미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대상을 닮게 그림으로써 그 정신을 전달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기운의 개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기운생동’은 중국회화에 있어서의 미학원칙이라 할 수 있고, ‘골법용필’은 조형기교이며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는 표현기교로 이해된다. 이 가운데서 특히 첫번째인 ‘기운생동’은 중국 회화창작에 있어서 가장 많이

요구되어졌다. 처음에 기운은 대상 본위의 외면적 기운관(氣韻觀)에서 출발하였으나 唐 중기인 8세기 후반 이후

사의(寫意) 혹은 심인(心印)이라는 내면적 표현의 존중으로 변화하여 북송(北宋) 문인화론의 기초가 되었다.

사혁의 육법은 전대의 미술이론을 훌륭하게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미술이론의 새로운 공헌으로 평가된다. 또

당시의 미술이론이 이미 산만하고 단편적인 단계를 지나 하나의 체계를 지닌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당나라 말 오대(五代) 초기의 산수화가인 형호(荊浩)7의 저술인 ≪필법기(筆法記)≫에는 육요(六要)가

등장한다. 6요는 ⓘ기(氣), ②운(韻), ③사(思), ④경(景), ⑤필(筆), ⑥묵(墨)을 말한다.

氣는 ‘마음에 따라 붓을 움직임으로써 물상을 묘사함에 있어 미혹됨이 없는 것(心隨筆運取象不感)’이고,

韻은 ‘필적을 숨기고 형상을 이루어냄으로써 법식을 갖추어 속되지 않는 것(隱迹立形 備儀不俗)’이다.

思는 ‘큰 요점만 남기고 잔 생각들을 잘라냄으로써 상상을 응집하여 사물을 형상화시키는 것(刪拔大要 凝想形物)

’이며,

景은 ‘때에 의거하여 제도에 맞추면서도 오묘한 것을 모아 진을 창조하는 것(制度時因 搜妙創眞)’이다.

筆이란 ‘비록 법칙에 의거하긴 하지만 운용하면서 적당히 변통하는 것(雖依法則 運轉變通)’이고,

墨은 ‘색채의 밝기를 조절하여 사물의 깊고 얕음을 결정하는데 문채가 자연스러워서 마치 붓을 대지 않은 것처럼

하는 것(高低暈淡 品物淺深 文彩自然 似非因筆)’이라 하였다.

 

육법과 비교하여 보면, 기와 운이 각각 독립된 요소가 되었으며 여기서 운은 ‘형체를 만드는 데 있어 필적을

숨기고 예절을 갖추어 속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려, 사혁의 기운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색채에 관한 조항이 없는 대신에 먹에 관한 것이 새롭게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6세기 초와 10세기 중엽 사이에 일어난 중국 회화 기법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당나라

말인 오대 초기부터 수묵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주는 문헌적 증거로도 볼 수 있다.

 

[형호「광려도(匡廬圖)8」비단위에 수묵. 185.8 X 106.8 cm.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와 유백아님이 작성한 ‘사혁의 화론육법(畵論六法)과 제백석(齊白石)’, 서보경역주 고화품록(1996, 中國語文學譯叢), 세계미술용어사전(1999. 월간미술) 등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1. 육탐미(陸探微, 생몰년 미상) : 육조시대(六朝時代) 유송(劉宋)의 화가로 고개지의 제자이다. 확실한 유작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위협(衛協, 265 ~ 316) : 중국 서진(西晉)의 화가. 초기의 문인화가 [본문으로]
  3. 사물의 모습을 닮게 그리는 것 [본문으로]
  4. 사물이 당연히 그러하여야 할 상태 [본문으로]
  5. 장언원(張彦遠, 815 ~ 879) : 당나라의 서화론가로 당나라 문화의 퇴폐기에 서화의 전통을 기록·유지하려는 목적에서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10권)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는 중국 화가 371명의 전기(傳記)와 회화에 관한 자료, 지식, 논의 등이 수록되어 있어 중국 회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글씨와 그림은 용필(用筆)이 같은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박식하고 문장이 훌륭하였으며 회화의 감식과 고증에도 뛰어났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6. 구성법 [본문으로]
  7. 생몰연대 미상. 중국 당나라 말 5대(10세기 전반)의 화가로 학문이 있고 문장도 뛰어났으나 난세를 피해 관도에 오르지 않고, 태행산의 홍곡에 은퇴하여 홍곡자(洪谷子)라 불렸다. 산수화에 뛰어 났던 그는 중국 회화사의 앞과 뒤를 잇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화가이자, 중국 북방산수화를 연 인물이기도 하다. 전경(全景) 구도와 준법(皴法)은 이 화가의 손에서 나왔다. 미술대사전(1998.한국사전연구사), 메토도스 인문과학연구소 [본문으로]
  8. 이 그림은 여산(廬山) 일대의 풍경을 그린 명작으로 짜임새가 엄밀하고 기세는 넓고 크다. 구도는 ‘고원(高遠)’과 ‘평원(平遠)’을 고루 쓰고 있으며, 화법은 구(勾), 준(皴), 염(染)을 활용하여 수묵화의 장점들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다. 혹자는 북송(北宋) 화원에서 형호의 작품을 모방하여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다. (출처 : 메토도스 인문과학연구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