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단원 김홍도 - 마상청앵도

從心所欲 2018. 5. 18. 11:10

 

<김홍도 - 마상청앵도>

 

보는 안목은 없어도 전부터 수묵산수화를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었다. 반면 다른 우리

옛 그림은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오주석 선생의 해설을 접하면서부터 시큰둥하게 봐왔던 그림들의

진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눈이 뜨이게 되었다. 여기  <마상청앵도>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1.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그림이라는데 얼핏 보기에는 너무 평범해서 이 그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모르면 보이지 않는 법인가 보다.

이 그림에 대한 오주석2 선생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봄날 점잖은 선비가 말구종 아이를 앞세워 길을 나섰다. 단출한 차림새지만 복건에 챙 넓은 갓을 써서 턱 아래

반듯이 묶고, 도포는 옷고름과 술띠3를 낙낙하게 드리워 멋을 냈다. ‘선비 도포 발은 모가 나서 손을 벤다’더니,

선비 집 아낙의 풀 먹이고 다림질하는 솜씨가 절로 짐작이 간다. 말 꾸밈은 수수해서 번거로운 방울 하나 달지 않고,

등자4 뒤 다래5조차 아무 꾸밈이 없지만, 다래 오른편에 드림6 한 줄이 길게 늘어져 풍류가 넘쳐난다.

 

 

사위는 고즈넉해서 보이는 것은 오직 한 줄기 좁은 길과 길가의 버드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잡풀 무더기뿐이다.

축축 늘어진 늦봄의 버드나무는 보는 이의 마음을 느긋하고도 여유롭게 한다. 봄빛을 듬뿍 받아 연둣빛 새

이파리가 움돋는 버들가지....

기름한 버드나무 둥치를 보니, 그림을 그린 건지 장난을 친 건지 넉살 좋게 쓱쓱 그어 내린 선이 천덕스럽기 이를

데 없다. 이따금씩 무심하게 쳐 넣은 태점(나무 윤곽선의 긴장을 깨뜨리기 위해 군데군데 쳐 넣은 점)7에도

아름다운 자태는 없다. 이파리는 어떤가? 붓 닿는 대로 툭툭 쳤다. 무슨 화가가 버들잎 긴 것도 모를까?

그러나 아무리 고쳐보아도 영락없는 버들잎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버들 이파리에 떠돌던 봄빛이 말에서도

느껴진다. 머리 굴레며 가슴걸이, 뒷다리 위로 맨 끈이며 길게 드린 드림이 모두 톡톡 찍은 점으로 그려진

까닭이다. 버들잎과 어울리는 이 작은 점들은 다래 오른편 아래와 말의 앞발 가에도 보여, 선비의 마음과

버들잎의 마음이 한 가지 봄빛에 물들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건 잔가지를 그린 수법이다. 선비의 코앞까지 드리워진 잔가지 이파리들을 보라.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오고 있는 양, 가지도 없이 나부끼는 이파리로만 열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옛 그림에서 이르는바 ‘붓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 는 필단의연(筆斷意連)의 경계이다. 그린 이의 가슴속에 봄볕이 이미 가득한데 구태여 여기까지 일일이 그려 넣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아니, 여기선 오히려 가지를 그려넣으면 큰일이 난다. 일부러 이파리만 툭툭 쳐 넣었기에 혼화한 봄기운이 애써 살아났는데, 실가지까지 애면글면 그렸다가는 그 예리한 선에 주인공의 봄꿈이 베어져 여지없이 깨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짐짓 끊어진 필선 가운데서 참된 詩情을 맛보는 즐거움을,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인 화가였던 소식(소동파)은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다.

“형태가 닮았는지로 그림을 논한다면 그 생각은 애들 생각이나 마찬가지다. 시 짓는 것을 ‘반드시 이렇게’라고 한다면 진정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시와 그림 본래부터 한 가락이니 자연스런 솜씨와 밝고 신선함이 있을 뿐....누가 말했나? 한 개의 붉은 점에도 가없는 봄기운을 모두 부쳐낸다고.....“

그림의 말을 보면 앞다리는 주춤해서 나란히 섰고 뒷다리는 아직 어정쩡하다. 아마도 주인이 막 고삐를 당긴 모양이다. 무엇인가? 선비는 순간 고개를 들어 오른편 나무 위를 치켜보고, 구종 아이도 주인을 따라 나란히 시선을 옮겼다. 고요한 봄날의 정적 속에 환하게 퍼지는 새소리가 지척간 버드나무 위에서 들려온다. 온몸에 선명한 황금빛을 두른 노란 꾀꼬리 한 쌍이다. 선비는 말 위에서 가만히 숨을 죽인 채 꾀꼬리가 노래하는 갖은 소리 굴림을 듣는다.

 

 

뜻밖의 소리와 자태에 선비의 입에서 절로 제시(題詩)8 한 수가 터져 나온다.

佳人花底簧千舌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니)
韻士樽前柑一雙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으니)
歷亂金樽楊柳岸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惹烟和雨織春江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그림 왼쪽 위에 있는 제시의 내용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제시를 이인문이 지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오주석선생은 김홍도의 자작시로 봤다. 제시 말미에 기성유수고송관도인(棋聲流水古松館道人) 이문욱증 단원사(李文郁證 檀園寫)라는 관서9가 붙어있는데 ‘바둑소리, 흐르는 물, 늙은 소나무 드려진 집의 도인’이라는 긴 호(號)를 가진 이문욱이 단원이 사(寫)한 것을 증명한다는 의미다. 문욱(文郁)은 이인문10의 자(字)로, 오주석선생은 단원의 동료화원이자 허물없는 벗인 이인문이 김홍도가 그림 그리고 시 짓는 것을 한자리에서 모두 지켜봤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오주석선생은 이 제시의 내용을 또 이렇게 풀었다.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는 것’은 울음 재주가 좋은 꾀꼬리의 음성이다. 옛 글에 꾀꼬리는 서른두 가지 곡조로 목을 굴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 많은 선비에게는 오히려 천 가지 가락이 되어 귓전을 황홀하게 하니, 마치 아리따운 여인이 꽃에 파묻혀 부는 생황의 화사한 봄노래인 듯하다.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올려 놓은 밀감 한 쌍’은 눈부시게 샛노란 꾀꼬리의 씻은 듯 깨끗한 모습이다. 그 모양이 얼마나 예뻤으면 시인은 순간 얼큰한 누룩냄새까지 맡았으랴!
어여쁘다 꾀꼬리야! 수양버들 가지 위아래로 무엇이 바빠 그리 오르내리느냐? 마치 명주 짜는 베틀 속의 황금빛 북 모양으로 오락가락 눈길이 어지럽구나. 오호라! 그러고 보니 이 봄날의 아슴푸레한 안개와 보일 듯 말 듯한 실비가 모두 네가 짜서 드리운 고운 깁이었단 말이냐!'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서 선비의 뒤쪽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뿌옇고 막막한 그림 바탕이 있을 뿐이다. 텅 빈 여백! 이 여백 속에는 원래 무엇이 있었을까? 강이 있고 그 강 건너 맞은편 기슭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화면에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다. 꾀꼬리가 안개와 봄비를 이끌어 봄 강에 고운 깁을 짜서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선비는 지금 실비를 맞고 있다. 다만 꾀꼬리 노랫가락에 마냥 도취된 탓에 사랑스런 아내가 갈무리해준 도포는커녕 속옷까지 젖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형상이 드러나지 않는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마치 위대한 음악의 중간에 침묵의 몇 초를 기다리는 순간과 같은 마음 졸임이 있는 까닭이다. 침묵의 위대함은 앞뒤의 음향이 만든다. 그림 속 여백의 의미심장함은 주위의 형상이 조성한다. 좁은 길에 오른편 위에서 왼편 아래로 흐르는, 삼중으로 겹쳐진 사선,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비스듬한 버드나무 가지와 그것을 치켜보는 선비와 동자의 시선, 끝으로 왼편 위쪽의 제시가 멀리서 아래 빗금들이 조성한 공간감을 되받아 아련하게 메아리친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는 이것 말고도 병풍에 그려진 것도 있다.

 

[<김홍도필 행려풍속도> 병풍 중 4폭, 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소재의 그림이지만 구도가 다르다. 우리 옛 그림은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쪽으로 시선이 옮겨가도록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그림은 그렇지 않다. 병풍으로 제작되었기에 병풍 속 옆 그림들과의 조화때문에 이런 구도로 그려진 것이다. 앞의 <마상청앵도>보다 5~6년 앞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확실히 앞의 그림에 비하여 복잡하고 군더더기가 많아 보인다. 말구종과 짐꾼까지 합쳐 등장인물도 3명이고 커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온 화폭에 가득히 퍼져있다. 뒤의 나중에 그린 그림에는 총각 말구종 하나에 버드나무도 한쪽 가장자리로 쭈욱 밀어내고 잔가지 하나만 늘어뜨렸다. 그림이 단출해지고 화면에 여백이 가득해지면서 격조도 높아졌다. 오주석 선생은 이를 김홍도의 나이 듦에 따른 깊고 높아진 경지의 결과로 보았다.

 

 

말 위에 앉은 선비는 상체가 길고 다리는 짧아 보이는 반면 곁에 선 마구종의 다리는 상대적으로 늘씬해 보인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상체가 길어야 장자(長者)의 풍(風)이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고 아랫사람은 여기저기 오가며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이니 다리를 길게 그리고 대신에 머리는 작게 그렸다는 해석이다.

 

 

  1.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가 그린 조선 후기의 산수인물화. 종이바탕에 수묵담채. 세로 117㎝, 가로 52.2㎝. 간송미술관 소장. [본문으로]
  2.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송미술관 연구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단원 김홍도와 조선시대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 평가받은 그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으며, 한국 전통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2005년 2월 49세의 나이에 혈액암과 백혈병을 얻어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생을 마쳤다. [본문으로]
  3. 도포의 허리부분에 둘러서 앞이 헤집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묶는 띠 [본문으로]
  4. 말을 탔을 때 두 발을 걸치도록 만든 장구 [본문으로]
  5. 안장의 아래, 즉 말의 배 아래로 늘어뜨려 진흙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는 안장의 부속 장구 [본문으로]
  6. 드리개(매달아서 길게 늘인 물건) [본문으로]
  7. 태점(苔點) : 산이나 바위, 땅의 묘사나 나무줄기에 난 이끼를 나타낼 때 쓰는 작은 점(한국 미의 재발견, 솔출판사) [본문으로]
  8. 그림이나 표구의 대지(臺紙) 위에 적어 놓은 시문(詩文). 제화시(題畵詩), 화찬(畵讚)이라고도 한다. 제시의 내용으로는 그림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나 감흥, 작가에 대한 평, 진위(眞僞)에 대한 고증 등 다양하다. 제시와 그것을 쓴 서체,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본문으로]
  9. 관서(款署) : 관(款), 관지(款識), 관기(款記)라고도 하는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제작일시,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관의 필치나 위치는 그림의 한 부분으로서 화면 구성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한국 미의 재발견 - 용어 모음, 솔출판사) [본문으로]
  10. 이인문(李寅文 : 1745년 ~ 미상)은 김홍도와 도화서(圖畫署)의 동갑 화원으로 가깝게 지냈으며, 강세황, 박제가, ·신위 등의 문인화가들과도 친교하였다. 산수·포도·영모(翎毛)·도석인물(道釋人物)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화단을 풍미하던 진경산수나 풍속화보다는 전통적인 소재를 많이 다루었다. 특히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명암(明暗)이 엇갈리고 몸이 뒤틀린 모습의 소나무와 가늘게 솟아오른 나목(裸木) 그리고 5각형의 바위들을 특징 있게 묘사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