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동양의 옛 그림이나 글씨에 대하여 신품(神品)이나 일품(逸品), 무상신품(無上神品) 등으로 소개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흔히들 그냥 뛰어난 작품을 칭하는 수식어 정도로 이해하기 쉬우나 이는 감정가들이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한 평가에 의한 것이다. 앞서 사혁은 ≪고화품록≫에서 6법을 소개하며 화가 27인을
제1품에서 제6품까지 나누었는데, 8세기 전반 당나라의 장희관1은《화단畵斷》에서 신, 묘, 능품(神, 妙, 能品)
의 삼품(三品)을 처음으로 회화비평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신품이란 그림의 기예와 공력이 탁월하고 절묘하여 형사(形似)와 신운(神韻)이 겸비되는 것이고, 묘품이란
의취와 구상이 절묘하여 표현에서 마땅함을 얻는 것이며, 능품은 형사를 얻어 법칙을 잃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元)대의 하문언(夏文彦)은 《도회보감(圖繪寶鑒)》에서 “신품은 하늘이 이루어 주는 것이며,
묘품은 의취가 넘쳐서 되는 것이고, 능품은 형사를 얻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후 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주경현2은《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에서 삼품설(三品說)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일(逸)"을 덧붙여, "사품(四品)"설 혹은 "사격(四格)"설을 형성하였다. 주경현은 《당조명화록》서문에서
“장회관은 《화단》에서 신, 묘, 능 3품으로 그 등급을 정하고 다시 이를 상중하 셋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격(格)
외에 상법(常法)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일품(逸品)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그 우열을 표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경현은 ‘일품(逸品)’에 대하여 단지 ‘상법(常法)에 구애되지 않는 것(不拘常法)’ 이라고 해석했을 뿐,
‘신(神)’, ‘묘(妙)’, ‘능(能)’ 삼품에 대해서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일품(逸品)’이라는 말을 주경현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주경현보다 100년은 앞선 당(唐) 고종
연간에 이사진(李嗣眞, ? ~ 696)이 《속화품(續畵品》을 지어 일품(逸品)에 네 사람을 열거한 일이 있었다.
중국의 고대 서론에서도 서예의 최고 경지를 말할 때 ‘逸’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었다. 이는 본래 ‘방종
(放縱)’을 가리키는 것으로 ‘진부한 법도에 구속을 받지 않고 뜻을 따라 나아간다’는 의미로 쓰였었는데 후세로
오면서는 ‘마음에 작용이 없는 한가로움’을 뜻하는 ‘안한(安閑)’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품(逸品)’은 ‘신품
(神品)’의 기초 위에 전진난만함을 더하여 강조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주경현(朱景玄)이 제출한 '사품설(四品說)'은 이후 후세 그림의 우열을 평판하는 기본의거(基本依據)가 되었다.
주경현의 뒤를 이어, 당대의 저명한 화론가 장언원(張彦遠 : 815~875년)은 그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중에서 또 다시 회화를 품평하는 표준을 오등(五等)으로 나누었다. 즉 ‘자연(自然)’, ‘신(神)’, ‘묘(妙)’, ‘정(精)’,
‘근세(謹細)’ 이다.
장언원은《역대명화기》권2 에서 말하기를,
“무릇 자연(自然)을 잃고 난 후 신(神)이 되고, 신을 잃고 난 후 묘(妙)가 되며, 묘를 잃고 난 후 정(精)이 되고,
정이 병(病)이 되면 근세(謹細)가 된다. 자연(自然)이라는 것은 상품지상(上品之上)이요, 신(神)이라는 것은
상품지중(上品之中)이다. 묘(妙)라는 것은 상품지하(上品之下)요, 정(精)이라는 것은 중품지상(中品之上),
근세(謹細)한 것은 중품지중(中品之中)이다.” 라고 하였다.
장언원은 ‘자연’격(格)의 그림에 대하여 ‘저절로 그렇게 된 표현으로서 인공의 티가 없고 기교의 흔적이 없는 것’
이라고 하였다. 또한 ‘무엇이든지 다 그려내는 것’은 하품(下品)의 그림이라고 하였다. 장인원은 천의무봉
(天衣無縫)3을 가장 높은 예술로 보는 한편, '하나하나 모두 갖추어(甚謹甚細)' '밖으로 세밀한 기교를 드러낸 것(外露
巧密)'을 품격이 낮은 예술로 본 것이다.
장언원의 ‘자연(自然)’은 주경현의 ‘일(逸)’과 같은 것으로 ‘신(神)’, ‘묘(妙)’, ‘정(精)’ 역시 신(神), 묘(妙), 능(能)으로 화품(畵品)을 나눈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도 있다. 장언원의 "오등(五等)"설은 비록 면밀하기는 하지만 주경현의 "사격(四格)"설의 간단명료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후세에 대한 영향력은 "사격(四格)"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기실 ‘4격’과 ‘5등’은 당나라 사람들이 새로 수립한 회화의 비평기준이다. 그러나 ‘4격’과 ‘5등’의 기준은 6법과
같이 구체적으로 준수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또한 예술적 성과를 어느 정도 포함하기는 하지만 주로 작품의
품격 측면만을 다루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송대(宋代)는 중국화론의 황금시대로 회화 품평서로는 황휴복(黃休復)의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 화사
(畵史)4는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 산수화론에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 저록(著錄)5에 휘종(徽宗)의 명으로 편찬된 《선화화보(宣和畵譜)》등 뛰어난 저서가 많다.
명·청대(明·淸代)에 이르러서는 방대한 분량의 갖가지 화론이 쓰였지만 뛰어난 저술은 많지 않다. 그 중에서
남종화(南宗畵)의 우월성을 내세운 동기창(董其昌)의 《화안(畵眼)》, 전통적 화보의 결론적인 의미를 지닌
왕개(王槩)의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화론의 모든 종류를 집대성한 강희제(康熙帝) 칙찬(勅撰)6의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등이 저명한 책들이다.
남북조시대에 태동한 산수화는 당대(唐代)에 크게 유행하면서 독립적 분야로 발전하여 이후 중국 회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귀족출신 화가였던 이사훈7은 산수화에 색채를 넣어 청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흰색과 금색을 섞어 쓴 청록산수 또는 금벽산수(金碧山水)로 이름을 높였고 나중에는 북종화
(北宗畵)의 시조(始祖)로 불리게 되었다. 반면 시문을 겸비한 승려화가로 알려진 왕유8는 먹의 번짐 효과를
활용한 수묵선염법을 기본으로 하는 사의(寫意)화법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수묵산수화는 당나라 중반 이후
등장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당나라 후기의 형호, 송의 문인 소식, 명나라의 동기창 등이 왕유를 수묵산수계의
중요한 화가로 인정하고 나서면서 역사적 재평가 속에서 왕유는 당나라 최고의 수묵화가로 공인되기에 이른다.
아래는 북송(北宋)의 왕희맹(王希孟)이 그린 <천리강산도(千裏江山圖)>이다.
비단 위에 그린 작품으로 세로 51.5cm에 가로가 무려 1191.5cm에 이르는 중국의 국보급 청록산수화이다.
2006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퍼포먼스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북송 화원 학생이던 왕희맹이 18세 때
송나라 휘종(徽宗) 조길(趙佶)에게서 직접 전수받은 후 6개월 후에 창작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왕희맹은 20세의 젊은 나이로 절명했다.
구영(仇英)은 진채 미인도(重彩仕女)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명나라 시대의 화가로 심주, 문정명, 당인과 함께
명나라 4대 화가로 불린다. 그가 그린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는 중국 인물화의 전통 소재인 궁중 비빈의
일상생활을 표현한 작품으로 구영 일생 일대의 역작이자 중국 중채미인도 중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명작이라 한다. 섬세한 표현과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깔로 궁중 비빈들의 일상생활을 생동감 있고 화려하게
묘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래는 정간, 오도자 등과 함께 남종화(南宗畵)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왕유의 <장강적설도(長江積雪圖)>이다.
왕유(王維)는 문인화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유홍준 박사는 추사 김정희 <세한도>에 대하여 '문인화의 최고봉인 원나라 황공망과 예찬 류(類)를 따르고
있다'고 하였는데 아래는 바로 그 예찬(倪瓚)9의 <육군자도(六君子圖)>이다. 역대의 감상자들과 화론가들이
중국 산수화 최고의 명작이라고 손꼽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여섯 군자란 전경에 모여 있는 여섯 그루의 나무로, 송(松: 소나무), 백(柏: 잣나무), 장(樟: 녹나무),
남(楠: 녹나무의 일종), 괴(槐: 홰나무), 유(楡:느릅나무)를 말한다고 한다. 갈필로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몽고
족에 의해 중원이 침략을 당해 한족(漢族) 사대부들이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고 있던 시기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지조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해설도 있다.
아래의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는 중국 회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중 하나로 1급 국보이기도 하다.
북송 화가 장택단(張擇端)10의 진귀한 작품인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는 정교한 세밀화 화법으로 북송
(北宋) 말엽, 휘종(徽宗) 시대의 수도인 변경(汴京) 교외와 성(城) 안의 변하(汴河) 양안의 건축과 민중생활을
기록했다. 청명절의 번화한 풍경과 자연 풍광을 묘사한 이 그림은 변경(汴京)의 번영을 입증해 주는 그림이자
북송 도시 경제 상황을 사실처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그림이다. 긴 두루마리 형식의 이 작품은 산점투시를 이용
하여 번잡한 정경을 표현했다. 입은 옷도 모두 다르고 표정도 각양각색인 그림 속 인물 500여명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서보경역주 고화품록(1996, 中國語文學譯叢),
세계미술용어사전(1999. 월간미술) 과 기타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장회관(張懷瓘, 생몰년도 미상) : 당나라 태종시대인 8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서예가이자 서예평론가였다. 해서(楷書)와 행서, 소전(小篆), 팔분(八分) 등을 잘 썼다. 스스로 자신의 글씨를 자랑하여 “해서와 행서는 우세남(虞世南)과 저수량(褚遂良)에 비견할 수 있고, 초서는 수백 년 동안 독보적인 존재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전하는 작품은 없다. 《화단(畵斷)》을 지어 고개지, 육탐미, 장승요 등에 대한 평론을 하기도 하였다. (곽노봉 선주, 중국역대서론) [본문으로]
- 주경현(周景玄, 생몰년도 미상) : 본명은 주방(周昉)이고 경현(景玄)은 자이다. 문예와 서화일반에도 두루 뛰어났지만, 특히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 능했다.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에서 당대(唐代) 97명의 화가를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의 4품(品)으로 나누고, 다시 신품(神品)을 상 ·중 ·하로 나누어 격(格)을 붙였다.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이회문화사) [본문으로]
- ‘천의무봉(天衣無縫)’은 “하늘나라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라는 뜻으로, 시나 문장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깔끔해 흠잡을 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백이나 두보의 시를 흔히 ‘천의무봉’ 단계에 오른 작품이라 평한다. [본문으로]
- 사전(史傳): 회화의 역사 및 본질을 논한 것. 장언원이 저술한 ‘역대명화기’에 의해 형성되었다 [본문으로]
- 저록(著錄): 공사(公私)의 감장품목록(鑑藏品目錄)으로 많은 작품을 기술 고증 평론하고, 특히 화가 평전을 첨가하는 예가 많다 [본문으로]
- 칙찬 (勅撰) : 1. 임금이 몸소 시가나 글을 지음. 2. 칙명에 따라 책을 엮음. 또는 그 책 (국어사전) [본문으로]
- 이사훈(李思訓, 651 ~ 716) : 중국 당(唐)나라의 화가. 산수화에 능하였고 특히 금벽산수(金碧山水)에 뛰어났으며 전통적인 정교·주밀한 묘법을 구사하였다. 품위와 격조가 높다는 평을 들었으며, 나중에 북종화(北宗畵)의 시조(始祖)로 불리게 되었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 왕유(王維, ? ~ 759) : 중국 당(唐)의 시인이자 화가로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에 뛰어나 ‘시불(詩佛)’이라고 불리며, 수묵(水墨) 산수화에도 뛰어나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평가를 받는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 예찬(倪瓚, 1301 ~ 1374) : 중국 원대의 화가. 산수화는 동원, 거연의 화풍을 배웠으며 간원(簡遠)한 평원(平遠)산수의 양식을 확립했다. 그 화풍은 문기의 일기(逸氣)에 넘쳐 명초의 왕불, 중기의 문징명(文徴明), 후기의 홍인(弘仁) 등 기타 많은 자가 그를 따랐다. [본문으로]
- 장택단(張擇端) : 북송말에서 남송초기(12세기 전반)의 화가. 일설에는 금조의 화원화가라고도 한다. 청년시절에 변경에 나가 학문을 했으나 후에 화가가 되어 성곽, 배, 차, 다리 등의 옥목화(屋木畫)와 시가의 풍속도를 특기로 하였다. (미술대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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