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단원 김홍도 - 주상관매도

從心所欲 2018. 5. 22. 22:11

단원 김홍도가 남겨 지금까지 전해지는 시조가 두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연인과 보낸 밤에 대한

아쉬운 정을 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봄 풍경을 감상하는 모습을 그린 시조이다.

 

봄 물(春水)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霧中)인가 하노라

 

그런데 사실 이 시조는 김홍도의 독창적인 작품은 아니다.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가 만년에 양자강 일대를 배를 타고 떠돌며 생활하다가 죽던 해인

59세에 지었다는 ‘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이라는 제목의 칠언율시가 있다. 소한식은 한식 다음

날이란 설도 있고 한식 전 날이란 해석도 있다. 어쨌거나 그 날도 찬밥을 먹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글로 옮겨진 시의 내용은 이렇다.

 

좋은 날 억지로 먹는 밥은 여전히 찬데

책상에 기대어 쓸쓸히 은자의 관을 써보네

봄 강물에 배는 마치 하늘 위에 올라앉은 듯 하고

늙은이 되어 보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사뿐사뿐 나는 나비는 장막을 스쳐 지나가고

점점이 나는 갈매기는 빠른 여울에 내리꽂히네.

흰 구름에 푸른 산의 만리 밖

북쪽에 있는 장안 하늘 시름겨워 바라보네.

 

김홍도가 지었다는 시조는 두보가 늙은 나그네의 시름을 읊었다는 이 시의 세 번째, 네 번째 구(句)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 확연해 보인다. 지금 같으면 당장 표절 논란이 일 정도로 내용이나 표현이

유사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것도 어엿한 시(詩)작법의 하나로, 점화(點化)라고 불렀다. 점화는

옛사람이 지은 시문의 격식을 취하되 그것을 새로이 고쳐 더 훌륭한 시문을 짓는 것을 가리킨다.

 

 

 

‘배위에서 매화를 본다’는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이다. 볼 관(觀)자 대신에 볼 간(看)자를

써 <주상간매도>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위 김홍도의 시조 내용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오주석 선생의 해설이다. 

 

예술 작품에는 위대한 작품이 있고 또 사랑스런 작품이 있다. 위대한 작품은 정색을 하고 똑바로 서서

박물관 같은 곳에서 바라보기에 걸맞은 것이라면, 사랑스런 작품은 이를테면 나만의 서재에다 걸어놓고

늘상 바라보면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은 그런 그림이다. 화면이 텅 비어있다. 겨우 화면의 1/5밖에 그리지

않았다. 남자의 어른 키만 한 큰 그림인데(164 X 76cm) 화가는 어떻게 요만큼만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뿌옇게 떠오르는 끝없는 빈 공간, 그 한중간에 가파른 절벽 위로 몇 그루 꽃나무가 안개 속에 슬쩍

얼비친다.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는 이편 산자락의 끄트머리가 꼬리를 드리웠는데 그 뒤로 잠시 멈춘 조각배

안에는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 하고 비스듬히 몸을 젖혀 꽃을 치켜다보는 노인과 다소곳이 옹송그린

뱃사공이 보인다. 여백이 하도 넓다 보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을 할 수 없다. 그렇다.

김홍도가 시조에서 읊었듯이 “물 아래가 하늘이고 하늘 위가 물인가“ 보다. 또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잎새 같은 조각배는 둥실둥실 흔들리며 기운 없는 노인에게 가벼운 어지럼증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늙은 눈에 보이는 저 꽃나무는 아슴푸레하니

안개 속에 잠겨있는 듯“ 하다. <주상관매도>에서는 그려진 경물보다 에워싼 여백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 보일 듯 말 듯한 느낌은 마치 지금은 들리지 않는 노년의 단원 김홍도. 그 분이 소리하는 가녀린 시조창인 듯하다.

 

 

허공중에 아스라이 떠오른 언덕. 그것은 어쩌면 신기루와도 같다. 그림 한복판의 언덕은 짙은 먹선으로

초점이 잡혀있으나 오른편과 왼편으로 뻗어나가는 필선은 점점 붓질이 약해지고 말라가면서 뿌연 여백

속으로 사라진다. 꽃나무도 마찬가지다. 가운데 가지 하나가 쌩 하고 짙게 보이지만 그 좌우로 가면서는

역시 흐릿해지는 것이다. 나무 아래 언덕의 주름에도 김홍도의 순간의 흥취가 배어있다. 척 하고 짙은

첫 붓을 댔다가 그대로 끌면서 아래로 비스듬히 쳐 내려갔다. 하나, 둘, 셋, 넷.......일곱까지. 그리고 다시

그 붓을 돌려 잡고 아래쪽으로 하나 둘 셋 넷....이번에는 너무 흐려서 필획을 셀 수조차 없다.

경물과 여백이 서로에게 안기고 스며드는 이 작품의 시적인 공간감각은 김홍도의 노년기 산수화에 엿보이는

특징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저 언덕의 풍경은 실제의 모습일까? 그렇지 않다. 언덕이나 꽃나무는 우리가

바라본 것도, 맞은편에 앉은 뱃사공이 바라본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림 속의 주인공, 주홍빛 도포를 걸친

노인의 늙은 눈에 얼비친 풍경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림 속의 노인이 바라보는 풍경이 그대로 화폭 위로

떠오를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옛 그림의 맛이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저 언덕 위를 치켜다보고 있다. 그러니 언덕 아래쪽은 저절로 뿌예질 수밖에 없다.

작가 김홍도는 완전히 저 노인과 한마음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시선 또한 작품의 하변바닥까지 내려와서

노인이 타고 있는 배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것처럼 그리고 있다.

 

 

김홍도는 작품의 화제(畵題)를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間)이라 썼다. 바로 김홍도가 지은 시조의

종장이고 두보 시의 4번째 행을 이루는 글이다. 단원은 ”늙은 나이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을 보는 듯하네.“

라는 글이 주인공의 쓸쓸한 심정을 묘사한 것임을 고려하여 그 글씨 역시 전체적으로 약간 비스듬하게

써서 그 연장선이 뱃전의 노인 쪽을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글씨 오른편 위에 두인(頭印)1으로 심취호산수

(心醉好山水 좋은 산수에 마음이 취하네)라는 백문타원인을 찍고, 글 말미에 찍은 작가인(作家印)은

주문방인(朱文方印)2으로 ‘홍도(弘道)’와 백문(白文)방인으로 ‘사능(士能)’이 찍혀있다. 단원은 호이고 사능은 자이다.

 

 

 

  1. 전각의 종류에는 성명을 새긴 성명인, 호를 새긴 아호인, 좋아하는 문구를 새긴 사구인(詞句印), 작품의 소장을 확인하기 위한 수장인(收藏印), 새·물고기 등 동물문양을 새긴 초형인(肖形印) 등이 있다. 성명인에는 백문인이, 아호인에는 주문인이 주로 쓰이며, 사구인에는 서화 폭의 우측 상단에 찍는 두인(頭印)과 중간에 찍는 유인(遊印)이 쓰인다. (두산백과) [본문으로]
  2. 인장은 요철에 따라 양각인 주문(朱文)과 음각인 백문(白文)으로 나뉘고, 생김새에 따라 방인(方印),·원인(圓印) 등으로 구분한다. 백문은 그림이나 글씨를 옴폭하게 파내서 종이에 찍었을 때 글씨가 하얗게 나오는 것을 뜻하며 주문은 백문과는 달리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양각으로 새겨 종이에 찍었을 때 글씨가 붉게 나온다. 방인은 사각 모양의 도장을 말한다. (한국 미의 재발견 - 용어 모음, 솔출판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