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皴法)이란 산수화를 그릴 때 산이나 바위의 입체감과 명암, 질감을 나타내고 나아가 음양(陰陽)의 향배(向背)까지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기법을 말한다. 준(皴)이란 글자는 ‘주름’ 또는 ‘트다, 틈이 생겨 갈라지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준(皴)을 의복에 비유한다면 '옷 주름'으로 볼 수 있고 산세(山勢)에 적용한다면 요철부(凹凸部)에 의해 생기어지는 굴곡을 주름같이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준법은 대자연의 산석(山石)과 능곡(陵谷)을 직접 보고 관찰한 뒤,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한 필묵의 조합이지 지질학적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다. 또 그런 준법을 써서 산수화를 그린 화가가 “나는 무슨 준법을 써서 그림을 그렸다.”고 밝힌 것도 아니었다. 준법(皴法)은 산수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의 일부분이며 준의 형태에 따라 산의 형세(形勢)가 결정되고 작가의 실력과 개성이 평가될 만큼 준의 역할은 산수화에 있어 중요한 요체(要諦)이다. 또한 준법은 모든 대상(對象)의 정신 및 외형을 통하여 산수화의 골기(骨氣)를 뽑아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수화에서 준법(皴法)은 산의 구조를 잘 파악하였을 때에만 올바른 준법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으로, 중국 역대를 통한 준(皴)의 창안은 화가가 살고 있던 지방의 산세(山勢)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500년이 넘는 산수화사(山水畵史)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창조한 온갖 준법을 한마디로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준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남긴 사람은 북송(北宋)때의 화가 곽희(郭熙)로 알려져 있다. 곽희는 저서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날카로운 붓을 옆으로 뉘어서 끌면서 거두는 것을 준찰(皴擦)이라고 한다'고 말함으로써 '준(皴)'이라는 낱말을 최초로 문자화하였다. 그러나 곽희는 ‘터져 주름질 준(皴)’과 ‘문지를 찰(擦)’을 따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곽희보다 훨씬 먼저 산수화를 그린 동원(董源), 거연(巨然), 범관(范寬), 이성(李成)과 같은 화가들도 저마다 피마준, 운두준, 우점준 등을 사용하여 산수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런 암석(巖石)화법을 특정한 이름의 준법으로 명명(命名)하지는 않았다.
준(皴)과 찰(擦)에 대한 명확한 구별은 그로부터 약 반세기 후인 1121년에 편찬된 한졸(韓拙)의『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한졸은 책에서 피마준, 점착준(點錯皴), 작쇄준(斫碎皴), 횡준(橫皴), 균이연수준(勻而連水皴)의 다섯 가지 ‘준’의 명칭을 적고 그 모습이 저마다 다름을 밝혔다. 원말(元末)에 남종화가 성립한 이후, 준법은 그 종류가 두드러지게 증가하였으며, 명대(明代)의 진계유(陳繼儒)는 『이고록(妮古錄)』에서 ‘준법’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화가의 이름과 준법을 함께 언급하였다. 또 청초(淸初)의 미술사가 왕개(王槪)는『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에 18가지의 준(皴)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덧 붙였다.
준법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면서, 산수화의 발전과 함께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
준(皴)은 크게 점(點)준, 선(線)준, 면(面)준으로 나뉜다. 점준에는 우점준, 미점준이 있고, 선준에는 피마준,
하엽준, 절대준, 우모준 등이, 면준에는 부벽, 마아, 운두준 등이 있다.
1) 우점준(雨點皴)
수묵산수화에서 점묘풍(點描風)2의 준법(皴法)으로 지마준(芝麻皴) 혹은 호마준(胡麻皴) 이라고도 한다.
세로로 긴, 작은 타원형의 붓 자국을 밀집시켜 바위나 산을 묘사한 것이 비오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점준을 그릴 때는 하부(下部)에서 먼저 점을 찍고 차차 위쪽으로 찍어가는데 산의 아랫부분에서는
진하고 크게 나타내며 위로 갈수록 작고 연하게 그린다. 점을 찍을 때는 모필(毛筆)을 바르게 정리한 후 붓끝
으로 종이를 찌르는 것 같이 찍는다. 산과 바위의 양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점을
찍어가며 표현하되 똑같은 크기의 점보다, 크고 작은 점과 농묵과 담묵을 혼용하여 그리는 것이 더욱 높은
효과를 얻게 된다. 우점준은 기후가 건조한 화북(華北)지방의 황토암석(黃土岩石)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중국 북방산수의 웅장한 형세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준법이다. 바위절벽보다 황토절벽을 즐겨 그렸던 북송(北宋)
초기의 산수화가 범관(范寬)3이 처음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관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4> 1010년경, 103 x 206cm, 타이베이고궁박물원]
2) 미점준(米點皴)
북송대(北宋代)의 문인화가 미불(米芾, 1051~1107)과 미우인(米友仁) 부자에 의해 이룩된 미법산수5의 한
기법이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토산이나 녹음이 무성한 여름 수림을 그릴 때 붓을 옆으로 기울여 큼직한 묵점
(墨點)을 찍어나가며 표현하는 방식이다. 미불 부자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線)보다는 점(點)의 사용
으로 먹의 중요성이 두드러진 발묵법(潑墨法)6이다.
특히 숲이 우거진 산수 또는 비오는 풍경(雨景)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다.
우점(雨點)준법과 비슷하나 점을 내려찍지 않고 옆으로 약간 굵게 찍는다. 이 준법은 산이나 나무, 그리고
비온 뒤의 습한 자연이라든가 자연의 독특한 분위기 묘사에 특출한 경지를 개척하여 원(元), 명(明), 청(淸)에
이어지면서 남종화의 한 조류를 이루었다. 산 지형의 윤곽을 그리지 않고 횡(橫)으로 일자 점을 중첩(重疊)하여
입체감을 나타내는 대미법과 윤곽선을 그린 후에 섬세하며 가늘고 적은 횡점을 병행하여 찍어가는 소미법으로
나누어진다.
[ 미불 작품으로 전해지는 춘산서송도(春山瑞松圖) ,세계미술용어사전]
[미우인 <운산도(雲山圖)>, SmartK]
3) 피마준(披麻皴)
역대 준법 중 가장 기본적인 준법에 속하는데, 마피준이라고 한다. 붓의 표현이 피마(披麻), 즉 꼬인 마의 올을
풀어놓은 것 같이 보여 이름 붙여진 준법이다. 옅은 먹으로 얇고 가는 선을 평행하게 여러 번 그어 중복된 선
전체가 입체적인 산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도록 한 것으로, 흙이 많은 토산을 표현하는데 주로 쓰였다. 산의
바위나 돌에 흙이 섞여 있을 때 그 산맥의 무늬를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되며, 선의 시작과 끝이 변화 없이 일정하여
부드럽고 가라앉은 느낌을 준다. 또한 매우 교묘하게 다른 조합을 가진 변화하는 선으로 형성하여 작가의 정신
까지도 표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산수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준 가운데 하나로 특히 남종화와 관계가
깊다. 피마준은 오대의 화가 동원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동기창이 남종화론을 주장하며 동원을 대표
화가로 꼽은 이후부터 문인화가들이 애용하는 기법이 되었다.
[元 황공망(1296~1354)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부분]
이 글은 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 미술대사전(1998. 한국사전연구사), SmartK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각주 1
- 중국 청초(淸初)에 간행된 화보로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라고도 한다. 원래는 3집이었으나 이후 4집이 위탁본(僞託本)으로 간행되었다. 1집은 ‘산수수석보山水水石譜’ 5권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1679년 왕개(王槪)가 명말(明末)의 화가 이유방(李流芳)이 옛 명화들을 모아 만들었던 ‘산수화보山水畵譜’를 증보 편집한 것이다. 1집은 중국화의 기본적인 기법을 설명하는 책자로 발간되자마자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하였다. 성행에 힘입어 1701년 왕개형제가 2, 3집을 편집하였다.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 8권이고,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草蟲翎毛花卉譜’ 4권이다. 1818년 출간된 4집은 인물화보로 개자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이름만 차용한 것이다. 각 책은 첫머리에 화론의 요지를 싣고 그 다음에 화가의 기법, 마지막에는 역대 명인들의 작품을 모사하여 게재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청말(淸末)의 화가 소훈巢勳(자오슌)이 앞의 3집을 충실히 임모하고 4집에 역대 명인들의 전신비결(傳神秘訣) 등을 보완하여 1898년에 전 4집의 개자원화전을 발간하였다. (월간미술) [본문으로]
- 점묘(點描) : 화면의 밝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물감을 넓게 칠하지 않고 붓으로 점을 찍듯이 채색하는 기법 [본문으로]
- 범관(范寬, 990년 추정 ~ 1027년 추정) : 중국 송대 회화를 대표하는 북종 산수화파의 선도적인 화가. 송대 회화를 대표하는 북종 산수화파는 중국의 중심부인 황하 이북에서 주로 활동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토착 종교인 도교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렸던 반면에, 은둔 생활을 하던 범관은 산시 지방의 산과 강을 두루 유람하며 다양한 기후 속에 변화하는 산수의 형태를 관찰하여 웅장하고 빼어난 산세를 그려냈다. 그는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점을 내리찍어 건조한 화북지방의 황토 암석을 나타내는 기법인 우점준으로 산의 견고한 질감을 표현했다. [본문으로]
- 산의 질감을 표현하는 우점준과 고원, 심원, 평원의 삼원법을 이용하여 도교의 주요 개념인 '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중앙에 '거대한 산'을 배치한 '거비파'(巨碑派) 산수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전경에는 작은 인물들과 정교한 필치의 나무들을 그려 넣었다. (월간미술) [본문으로]
- 미법산수(米法山水) : 중국 북송의 미불(米芾), 아들인 미우인(米友仁)이 창시한 산수화풍. 미가(米家)산수라고도 함. 미불은 산수를 그리는데 붓으로 하지 않고 지근자(紙筋子, 거르기 전의 종이섬유), 자재(蔗滓, 사탕수수를 짠 찌꺼기), 연방(蓮房, 연밥이 든 송이) 등을 사용하고, 또 종이에는 번수(礬水, 명반에 아교를 섞어 만듬)를 바르지 않고 선염(渲梁,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짧게 하는 바림)을 이용해서 당대(唐代) 발묵(潑墨)의 효과를 의도함. 또한 동원(董源)을 본받은 상당히 거칠고 방종한 수묵화법을 썼다고 한다. (미술대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본문으로]
- 발묵(潑墨) : 수묵화의 용묵법(用墨法)으로 필(筆)이나 준법을 쓰지 않고 먹을 붓거나 뿌려가면서 형태를 그리는 방법이다. 번지는 효과를 이용하여 우연의 미를 얻을 수 있으므로 주로 일격을 나타낸 문인화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었다. 후세에는 먹물이 풍부하고 기세가 가득한 모든 것을 다 ‘발묵’이라 불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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