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동양화 화론(畵論) 5 - 동거파, 오파, 절파

從心所欲 2018. 8. 1. 12:44

 

동거파(董巨派)는 중국 남당(南唐, 937~975)의 화가 동원(童源)과 거연(巨然)의 화풍을 이어받은 후대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말로 마하파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북송의 미불(米芾)은 동원의 그림이 지닌 ‘천진평담(天眞平淡)’을 극찬하였고 원대의 조맹부 역시 동거파를 가장 높이 평가하여 화단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황공망을 비롯한 원말 4대가1도 동거파 화풍 육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명대 중기에는 심주(沈周) 등 오파(吳派)가 흥하자 동거파의 전통이 집대성되어 그 후 문인화풍의 전거(典據)가 되었다. 명말에 동기창은 이 계보를 남종화로서 찬양하고, 상대적인 마하파(馬夏派) 계통인 절파를 비판하였다. 동거파 화풍은 험준한 산악보다는 강이나 호수 주변의 산수를 다루고 한겨울의 고목보다는 한여름의 잎이 무성한 수목들을 선호하며, 바위와 언덕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반두준(班頭皴)과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하는 양식적 특징을 가졌다.

 

동원(童源)은 중국 '남종산수화'(南宗山水畵)' 화파로 알려진 화가 그룹의 대표적인 화가였다. 동원의 생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나, 작품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중국의 산수화는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럽던 시기인 5대10국(907 ~ 960) 시대에 많은 발전을 거둬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원이 바로 이 시기에 활동했다.

동원도 당(唐)왕조 시기에 유행했던 청록산수를 그리긴 했지만, 그가 화가로서 가장 크게 이름을 떨쳤던 것은 단색조, 즉 채색을 하지 않고 먹만으로 그린 수묵산수화를 통해서였다. 동원은 묵을 흠뻑 적신 상태에서 칠한 넉넉한 붓질을 통해 수묵 산수화를 그렸다. 마치 고요한 꿈결처럼 몽환적으로 펼쳐지는 그의 그림 속 풍경은 실제 양자강 유역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인물화와 제자 양성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동원은 자신의 가장 뛰어난 문하생이었던 거연(巨然)과 함께 남종 산수화파를 창시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동원 <용숙교민도(龍宿郊民圖)>, 비단위에 채색. 156 x 160cm. 북경고궁박물원 소장]

 

동원은 무거운 색으로 강남 교외 풍경을 그려냈고, 산수속에 풍속의 정절(情節)을 끼워 넣었으며 산과 구릉은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하는 한편 청록의 채색은 이사훈(李思訓) 산수화의 유풍을 볼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 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원 <동천산당도(洞天山堂圖)> 비단에 채색 121.2 x 183.2cm 교토양족원소장]

 

거연(巨然, 생몰년 미상) 은 중국 오대, 남당의 화승(畵僧)이었다. 동원(董源)을 스승으로 하였으며 산수화에 능하였다. 숲 속의 산길과 같은 소박한 정취를 그리는 데 주력하였고, 산 속 누정인물(樓亭人物)의 묘사가 빼어났다. 수묵적 성격이 강한 필묵법을 써 윤연(潤然)한 강남풍경을 장기로 하였고 후세에 동원과 함께 남종화의 시조로 받들어졌다

 

[거연 <추산문도도(秋山問道圖)>, 견본담채(絹本淡彩) 77.2 x 156.2 cm,  타이페이고궁박물원]

 

명대에 이르면 중국의 화파는 다시 또 오파(吳派)와 절파(浙派)라는 이름으로 갈리게 된다. 오파는 오현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는데 오현은 장쑤성 소주의 옛 이름이다. 명대 중기인 1465 ~ 1505 년간에 활약한 심주(沈周)를 시조로 하여 그 영향 하에 문징명(文徵明)을 비롯하여 그 일족과 문하로 이어지고, 당인(唐寅)과 장령(張靈) 등을 포함한 소주화단을 말한다. 화법상으로는 원말 4대가의 필법을 모범으로 하여 문인화풍을 확립하고, 명나라의 제11대 황제인 가정제(嘉靖帝, 1522 ~ 1566)시대 이후로는 절파(浙派)를 대신하여 회화사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절파계 화가의 활약과 그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오파 화가들의 필치가 문인적인 기질의 기미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절파는 조방(粗放)한 용필과 묵을 많이 사용한다는 기법면의 차이와 함께, 오파는 이가(利家, 문인화가)인데 비하여 절파는 행가(行家, 직업화가)라는 품격론이 논의되면서 '절파·오파론’이 생겨 났다.

절파(浙派)2는 저장성 항주 출신의 대진(戴進, 1388 ~ 1462)을 시조로 명말(明末)의 람영(藍瑛)에 이르는 직업 화가의 계보에 부여된 유파의 명칭이지만, 유파라고 부르기에는 화가들 사이의 사승관계(師承關係)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절파는 남송원체화(南宋院體畵), 이성, 곽희(郭熙), 미법산수, 원(元) 사대가까지 화법상의 포괄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 다만 절파 화가들의 공통된 특색은 절강지방의 전통적 수묵법을 기반으로 하고 필묵이 거칠며 점경 인물의 극적인 표현과 묵면(墨面)과 여백의 대비, 율동감 등을 강조하였다.

명초에 대진이 화원(畫院)에 들어갔기 때문에 명대를 통하여 화원 회화는 절파의 경향이 강했고, 또 그 영향의 범위도 복건, 광동지방으로 확대되어 오파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대진 <어락도(漁樂圖)>부분, 두루마리, 비단 담채, 46×740cm, 워싱턴프리어갤러리]

 

[대진 <어락도(漁樂圖)> 세부]

  

명말(明末)에 이르면 오파의 양식은 고화(古畫)의 화풍에서 분리된 독자적인 것이 되고, 동기창의 남북이종론(南北二宗論)이 전개되면서 남종화(오파계 문인화) 의 우위(優位)가 주장되었다.

동기창은 선종에서 유래한 남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일종의 문인화 계보도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계보도가 이후 문인화의 정석으로 굳어진다. 16세기 성립된 오파의 문인화 전통이 하나의 규범으로 정착된 것은 동기창 덕분이었다. 그의 화론이 이후 전근대의 중국 회화를 규정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수묵화라고 하면 선비들이 사랑채에 앉아서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기 쉬운데 그러한 이미지가 일반 사람들에게 정착된 것에도 동기창의 공이 컸다. 동기창은 수묵산수화를 문인화의 대표적인 장르로 규정짓고 채색 산수화를 궁정, 직업화와 결부시켜 구분함으로서 오늘날의 동양화 관념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를 미쳤다. 이러한 동기창의 이론과 기법의 영향을 받은 청초의 4왕에 의하여 청대(淸代)의 정통파 화단은 오파 계통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 글은 미술대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 세계미술용어사전(1999. 월간미술), 501 위대한 화가(2009.

마로니에북스), 두산백과 및 기타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1.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 : 중국 원대(元代) 말기에 활약한 황공망(黃公望), 오진(吳鎭), 예찬(倪瓚), 왕몽(王蒙)의 4인을 일컫는 말로, ‘원4대가’라고도 함. 특히 명대 중기 이후의 오파 문인 화가들 중에는 대가에게서 화풍을 전수받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미술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본문으로]
  2. 절파(浙派)라는 이름 역시 오파처럼 지역적 배경을 바탕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저장성의 한자(漢字)인 浙江省(절강성)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