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사대(事大)의 의미

從心所欲 2018. 10. 18. 12:04

우리는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를 말하다 ‘사대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이상하게 주눅이 든다.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근거나 논리도 없고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사전마저도 ‘사대주의(事大主義)’는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라고 했으니 “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사대주의’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대주의’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덧씌운 수많은 악의적 프레임 중의 하나에 갇힌 결과일 뿐이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사와 민족성을 중국에 빌붙어 산 노예근성의 민족과 예속의 역사로 비하시킴으로써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에 치욕을 느끼게 하려 했던 것이다.

미술사가 고 오주석선생은 오래전에 ‘사대주의’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사대(事大)라는 말은 『맹자(孟子)』에 나온다. 제나라 선왕이 “이웃나라와 사귀는데 도(道)가 있습니까?”

하고 묻자 맹자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겨낼 수 있습니다........

또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겨낼 수 있습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즐기는 것이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편안히 하고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를 편안케 합니다1.

사대(事大)란 어디까지나 사소(事小), 즉 큰 나라의 작은 나라에 대한 도덕성과 예의를 바탕으로 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병자호란 이후 조선 조정은 이미 멸망한 명나라에는 사대를 표방하였으나, 현존하는 강대국 청나라에 대해서는 그 연호를 쓰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사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게 지녔던 것이다.

또 『노자(老子)』를 보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낮추면 작은 나라의 신뢰를 얻게 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낮추면 큰 나라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대국은 자기를 낮추어 신뢰를 얻고, 소국은 자기를 낮추어 신임을 얻는다’2고 하였다. 똑같이 자신을 낮추는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대주의는 힘에 의한 주종 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외교관계였다. 또 사대주의는 반드시 사소주의(事小主義)와 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예(禮)의 정신에 근본을 둔 관행이었다. 사대주의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면, 그것은 소국이 대국과 현실적 관계를 가질 때 자기의 독립성과 이익을 유지하려고 취했던 대응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먼저 대국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저들이 강압을 가하면 과감히 창검을 들고 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주의를 표방했던 조선은 일찍이 명나라의 요동지역을 수복하려고 정벌을 꾀했던 일조차 있었다. 일본은 사소(事小)를 가리고 사대(事大)만을 부각시키고 자율성대신 타율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식민지 백성의 자기 비하 감정을 더더욱 조장하였던 것이다.

사대주의의 뜻을 아무리 강조해도 조선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름지기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럽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핵을 가지면 어린애 칼 쥔 격이라 걱정되니 제 스스로 개발 않겠다 맹세하고, 미사일 연구는 발사 거리를 남의 허락을 받고 그만큼만 진행한다. 심지어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까지 외국이 살 수 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라 하니,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3

 

유학적 사고와 가치관에 기초한 오주석의 항변이 현대인에게는 궁색해 보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던 시기는 그런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오히려 오주석의 논리는 더 큰 타당성을 갖는다.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근대적 잣대로만 지난 역사를 논하고 평가한다면 어느 누가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오주석은 사대(事大)를 왜곡한 일제와 그런 농간에 말려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분개하는 것이다. 막말로 우리가 사대를 하지 않았다면 이 조그만 나라가 어떻게 이제까지 이 땅에 존재했겠는가! 인조가 청나라를 개무시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가! 인조가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것이야 치국을 책임진 위정자로서 정세 판단에 오류를 범한데 대한 당연한 보응이라 쳐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백성들이 이 땅에서 겪은 고통과 포로로 끌려간 60만이 낯선 땅에서 당했을 고통은 차마 상상하기 조차 두렵다. 만일 청나라가 그 때 ‘사소(事小)’하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아 조선을 지배했다면 과연 지금 이 땅에 대한민국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사대’는 민족과 국가의 생존을 위한 실용적 외교술이었다. 왜(倭)는 근대화 전까지는 자기들끼리 섬 안에서 지지고 볶던 민족이다. 외세로부터 국가 존망의 위협을 받아본 적도 없고 외국과 제대로 된 교류를 해본 일도 없는 민족이 외교의 경륜인들 제대로 있었겠는가? 지금 그들이 과거사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세계에 무례함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일천한 외교 경험과 무지의 소치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 왜(倭)가 우리 민족과 역사에 굴레를 씌워 우리에게 치욕을 주려 만든 말이 사대주의다. 헌데 저들이 지금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패전 이후 저들이 언제 한번이라도 미국에 골칫거리가 될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내본 적이 있었던가? 멀리 떨어진 미국에게는 ‘주체성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아직도 자신들보다 후진국이라 생각하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끝없이 각을 세우고 있다. 저들에게는 ‘이웃나라와 사귀는 도’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Jack Trout와 Al Ries의 「Positioning: The Battle for Your Mind」라는 책에는 “몸무게가 800파운드(약360kg)인 고릴라는 어디에서 잘까?”하는 질문이 있다. 답은 “어디든 자기가 자고 싶은 데서”이다. 그 정도 몸무게의 고릴라라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밀림이든 문명사회든 강자(强者)는 약자(弱子)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드(THAAD)배치 때 중국이 우리에게 보인 태도와 북핵 문제 때 미국이 한반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저들에게 사소(事小)의 예(禮)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대(事大)’의 예를 버릴 수 있는가? 중국과 미국에 맞서 지지 않을 힘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우리의 환경은 과거 조선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필요하면 ‘사대’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줄타기’도 하며 난국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를 비하하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약소국가의 운명인 것이다. 

조폭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려움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 조폭이 수천년을 우리 바로 이웃에 살았다고 생각해 보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백악관의 기자간담회에서 ‘5.24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국정감사 발언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의 승인 없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고, “우리의 승인 없이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심기를 건드렸다.

주권국가임을 자처하는 우리로서는 엄청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상처받은 우리 국민은 미국과 트럼프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가가 미국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왜 안 하고 못 하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오마이뉴스 사진]

 

[통일뉴스 황선 사진]

 

1995년 11월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간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일국의 대통령이 그야말로 ‘감정 그대로'를 표출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말만 들어도 얼마나 속이 시원했던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 자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년 2개월 후인 1998년 1월 일본은 한국의 정권교체와 IMF사태의 틈을 타 1965년 체결된 한일어업협정의 ‘일방적 종료’를 통보해왔다. 우리 어민들은 당장 동해에서 장어, 명태, 꽁치 등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은 김대통령의 발언 직후부터 수면 밑에서 어업문제 쪽으로 한국정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그러다 한·일간 갈등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발언 이후 약 1년 반 뒤, 일본이 이른바 ‘직선영해기선’을 적용, 한국 어선들을 나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에 앞서 일본은 1994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에 근거해 근해의 작은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 영해기선을 새롭게 설정하고, 1997년 1월 1일을 기해 시행에 들어갔다. 착실한 명분을 축적해온 것이다. 새 유엔해양법조약에 따른 양국 간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획정 문제가 맞물려 기본적으로 복잡한 구조인데다, 한국으로서는 나포된 선박과 선원 처리에 있어서 ‘명분’까지 확보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칼자루를 쥔 쪽은 명백히 일본이었고, 한국은 “한·일간 어업문제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1997년 5월 당시 유종하 외무장관은 미국방문 길에 수행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어업문제에 대한 일본의 요구가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러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YS정권은 결국 97년 10월 일본 측이 제시한 ‘잠정공동수역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같이 판을 깰 경우 우리 어민들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일간 신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은 이런 상황에서 시작되어 1998년 9월 최종 마무리된 것이고 오늘날 독도영유권 훼손이라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동수역’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는커녕 거꾸로 당하기만 한 셈이다.】4

 

우리가 우리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자부심과 자존심을 갖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일에는 우리의 자부심과 자존심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국민은 일본을 방사능오염 동물로 부르고 중국을 죽이고 죽여도 박멸되지 않는 벌레 취급을 하고, 이현세의 ‘남벌’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의기충천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예전 어른들이 하던 말씀 중에 “소련놈에 속지마라. 뙤놈들 떼로 온다. 일본놈 일어선다. 미국놈 믿지 마라.” 라는 말이 있었다. 총칼 없는 전쟁이라는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미국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전후복구와 지금까지의 한반도 평화유지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음은 두고두고 고마워 할 일이다. 하지만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든든한 방패라고 믿었던 미국이 바로 얼마 전에는 자신들의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거론하며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는 상황까지도 불사할 듯한 태도를 보였다. ‘우방’이라는 외교적 수식어 뒤에 숨은 미국의 속내가 이것이라면 우리로서는 섬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미국은 우리를 진짜 섬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조선은 미국의 압력에 의하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단순히 양국간 국교수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조약의 1조는 “제3국이 조약 당사국 일방을 부당하게 또는 강압적으로 대할 경우, 조약 상대국은 이를 통고받는 즉시 사안이 원만히 처리되도록 거중조정을 행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선의 조정은 미국이 조선을 든든하게 수호해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1905년 7월 극비리에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 카츠라 타로(桂太郎)와 계약을 체결한다. 이른바 ‘카츠라-태프트 밀약’이다. 새로운 식민지 필리핀의 지배를 인정받지 못한 미국이 일제가 미국의 필리핀 점령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일제의 한반도 지배권을 보장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미조약의 1조는 먹통이었다. 미국의 승인을 받은 일제는 1905년 11월 17일 조선의 재정 및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제했다. 이후 1906년 일제는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자국의 관리들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조선이란 국가는 세계지도에서 지워졌다. 밀약의 진상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야 밝혀졌다.

이와 관련한 당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발언은 더욱 섬뜩하다.

“우리는 조선인의 편에 서서 일본에 간섭할 수 없다. 조선인은 자신을 위해 주먹 한 번 휘두르지 못했다. 조선인이 스스로 하지 못한 일을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해주겠다고 나설 국가가 있으리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말이다.”

 

지금 트럼프는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의 방어를 위해 10억 달러가 드는 시스템을 배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방위비 분담비율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논리가 맞는지 안 맞는지,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의 역사와 취지에 대하여 무지한지 아닌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미국과의 우방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입장이라면 우리는 미국에 대하여 ‘사대’를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미국도 ‘사소’하도록 노력하는 길 밖에 없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이 나라를 지켜왔다.

우리가 사대를 하지 않고도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이 강해지는 것 뿐이다.

 

덜 떨어진 전직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저급하고도 유치한 표현을 온 국민 앞에서 사용했다. 이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조선일보는 2014년에 ‘통일이 미래’라며 통일이 되면 20년 동안 국방비가 400조가 절감되고 군복무는 1년 미만이 될 것이라는 전망 기사를 내놓았다. 과연 그럴까? 지금은 그나마 북한이 우리와 중국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우리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이 된다. 그 때가 되면 지금 중국이 주변국들과 국경분쟁을 벌리고 있는 일들이 남의 일로 끝날까? 사진핑은 2017년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중국의 군대를 ‘세계 제일류의 군대’로 가겠다고 표명했다. 선언적 의미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이미 2020년까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고 2035년까지는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며 49년까지는 전 세계의 평화유지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내부 목표를 세우고 있다.

중국만이 아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2017년도 우리나라 국방비 규모는 세계 10위다. 그런데 자위대인 일본의 국방예산은 세계 7위로 우리보다 20% 가까이 많다. 러시아는 4위이고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이다. 하지만 이런 논의도 단순 국방예산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핵무기 앞에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재래식 무기가 아무리 많은들 핵무기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통일이 우리의 미래이기는 하지만 국방에 대한 낙관은 질 낮은 프로퍼갠더에 불과하다.

왜(倭)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나 일제가 조선을 늑탈할 때, 한반도가 둘로 나뉘어져 있었기에 당했던가?

 

‘사대’를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약소민족과 약소국가가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전략이었고 그 덕분에 이 나라가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 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고지를 점령하려는 병사들은 적의 사격을 피하여 때로 포복을 하고 은폐, 엄폐를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병사들이 땅을 기었다고 해서 비겁하거나 비굴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타당한가?

 

전직 대통령 한 분은 우리 민족의 ‘사대’를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 민족은 비록 형식적으로는 사대를 했지만 내부적으로 특히 국민 대중은 자기의 주체성을 튼튼히 유지했습니다. 중국 문명의 월등한 영향 속에서도 문화 전반의 뚜렷한 자기 특색을 보존해왔습니다. 의복, 음식, 언어, 주거 등 전체 생활이 분명한 특색을 간직했으며, 경제면에서는 저 유명한 화교의 침투와 지배를 완전히 봉쇄하였습니다. 동남아시아 각국이 지금까지도 그 경제권을 화교의 손에 내맡기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는 우리 조상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 원문 : 齊宣王問曰 "交隣國有道乎?" 孟子對曰 "有. 惟仁者爲能以大事小, 是故湯事葛, 文王事昆夷. 惟智者爲能以小事大, 故太王事獯鬻, 勾踐事吳. 以大事小者, 樂天者也; 以小事大者, 畏天者也. 樂天者保天下, 畏天者保其國. 《詩》云 '畏天之威, 于時保之.'" (맹자 梁惠王章句 下) [본문으로]
  2. 원문 : 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노자) [본문으로]
  3. 오주석 ‘조선과 이조’ 中에서 [본문으로]
  4. 문화일보 2005/03/22 이병선 국제부장 기사 요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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