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군맹무상(群盲撫象)

從心所欲 2016. 5. 30. 09:50

 

 

 

군맹무상(群盲撫象)의 한자를 직역하면 소경의 무리가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이 되겠지만 속뜻은 앞을 못 보는 여러 사람이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보고는 모두 자신이 만져본 것이 코끼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어떤 사물에 대해 좁은 식견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 고사성어의 유래는 이렇다고 한다.

인도의 어떤 왕이 어느 날 앞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체험하도록 그들을 불러 모아 코끼리를 만져보게 했다. 그런 뒤 소경들에게 코끼리의 생김새를 물었.

그러자 소경들은 자신들이 만져본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각기 서로 다른 대답을 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무와 같다고 했고 귀를 만진 사람은 곡식 까부를 때 쓰는 키와 같다”, 코를 만진 사람은 절굿공이 같다”, 배를 만진 사람은 항아리와 같다”, 다리를 만진 사람은 나무 널빤지와 같다”,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과 같다”며 저마다 다른 소감을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는 그 자체에 또 다른 비유가 들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말하자면 코끼리는 부처를, 소경은 중생(重生)

가리킨다는 것으로 모든 중생들은 부처를 부분적으로 알 수 있고 모든 중생들에게는 부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이야기라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교회의 수많은 목사들이 모두 저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제일 잘 알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무슨 엉뚱한 속셈이 있어저 인지, 아니면 단순히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믿어지지 않는 소리들이다.

누가 하나님을 그렇게 잘 알 수 있는가? 크기로 말하면 감히 코끼리 따위와는 비교할  없이 광대하시고신묘함으로

말하면 알파고가 떼로 나서도 그 형상조차 그리지 못할 하나님을,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서로 앞을 다투어 자신이

더 하나님을 잘 안다고 나서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말하자면 밤낮으로 얼굴을 맞대며 몇 십 년을 사는 배우자의 마음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수준이 아닌가!

 

목사의 직분을 경홀히 여기고 권위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목사들이 평신도들에 비해 성경에 대하여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많은 기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오래 할지라도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결코 소경이 코끼리를 만져보는 수준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만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남이 모르는 특별한

비밀을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알려주고 목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사랑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경들이 코끼리의

일부 부위를 손으로 만져보고 난 뒤 자신이 코끼리를 제일 잘 안다며 코끼리는 돌이다!”, “아니다. 절굿공이다!”,  

널빤지다!”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예전에 성경을 처음 완독하면서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명쾌한 답을 얻을만한 구체적 설명은 전혀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겠구나!’ 하고 짐작을 할 수 있는 내용뿐이다. 짐작은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짐작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자신의 짐작은 틀림없고 자신의 짐작만 옳다고 우기는 것은 오히려

무지거나 교만의 소치다. 물론 다른 이에 비해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성찰과 지식을 갖고 있는 목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 차이가 얼마나 될까?

위의 고사(古事)에서 설혹 어느 소경이 다른 소경보다 코끼리의 더 많은 부위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절굿공이이며

돌이고 항아리다 라고 했다고 해서 코끼리를 더 올바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에도 후에도 없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다는 솔로몬왕도 전도서 8 16~17절에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여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알아보려 온갖 노력을 했었지만, 결과가 말해주듯 그 누구도 명쾌하고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저마다 자신만이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꿰차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목사의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는 대신에 다른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어 성도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목사의 직분은 하나님과의 친분을 과시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 하시고 몸소 실천하셨던 것처럼 선한 목자(牧者)가 되는 것이다. 권위로 양들을 꼼짝 못하게 얽어매는 일이 아니라 풍성한 꼴을 먹여 푸른 초장에서 쉬게 하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양들을 지켜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일인 것이다.

 

성경적 표현에 의하면 목자는 양을 치는 양치기다.

양치기가 거짓말을 자주 하면 양치기 소년’ 밖에 더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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