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

조선(朝鮮)과 이조(李朝)

從心所欲 2018. 10. 23. 15:36

 

민족지(民族紙)라는 가면을 쓰고 곡필아세(曲筆阿世)를 일삼다가 그 정체가 드러나자 다시 또 조작과 선동을

무기삼아 부역언론으로 변신하더니 그 또한 마땅치 않은 세상이 오자 나라가 망해도 자신들은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오기로 ‘아무 말’이나 기사라고 쏟아내고 있는, 이름부터 일제의 잔재가 느껴지는 어느 일보의

주간지가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독도함을 망한 나라의 함정으로 만들다니…”

 

내용인즉, 10월 11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제관함식(관함식)에서 좌승함인 독도함에 현재의

태극기가 아닌 옛 대한제국의 태극기1를 게양함으로써 독도함을 망한 나라의 함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1919년 설립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제에 병합된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법통은 잇지 않는 것이다.”라고 그 근거를 내세웠다.

왜국 기자가 우리나라 망하길 바라서 쓴 기사인 줄 알았다.

글 쓴 자 의식의 천박함과 의도의 불순함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면서 분노 게이지가 급속도로 상승하는

것을 고(故) 오주석 선생이 남긴 ‘조선과 이조’라는 글을 옮기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독도함에 게양된 태극기. 사진 뉴시스] 

 

 

【조선의 멸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조선(朝鮮)’을 ‘이조(李朝)’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조시대니, 이조백자니, 이조회화니 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일제 때부터 이 말에 익숙해진 노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이조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분들은 이조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그것이

내포한 불순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학을 전공하는 일부 학자들에게 있다.

‘이조’라는 말은 옛 문헌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용어에는 뭔가 곡절이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버젓이 ‘이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흔히 ‘이조’는 ‘이씨 조선’의 준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조의 ‘조(朝)’는 조선을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다.

‘왕조(Dynasty)'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나라를 일컫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조선을 이조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면, 고려는 왜 ’왕조(王朝)‘라고 하지 않는지, 신라는 왜 박, 석, 김 세 성을 따라서

박조(朴朝)‘, 석조(昔朝), ’김조(金朝)‘라고 부르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은 이조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쓰도록 강요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이 빼앗은 것은 부덕했던 전주 이씨들의 정권일 뿐,

옛 조선 백성들은 오히려 그들 통치 아래서 더 잘 살고 있다는 억지가 숨겨져 있다.

 칠팔 년 전 나는 서화 자료를 찾느라고 『한산세고(韓山世稿)』라는 한산 이씨(李氏) 문중의 통합 문집을

뒤지고 있었다. 그 방대한 문집 가운데 첫 번째 책은 전체가 목차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 마지막 장에서 편집자

이세찬(李世燦)이라는 분이 쓴 짤막한 후기를 보았다.

 

"『한산세고』를 발간할 때 반드시 저들 일본인의 소위 인쇄 허가라는 것을 얻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저들은

무릇 일본과 관계된 것은 모두 저희 마음대로 고쳤다. ‘우리나라[本朝]’를 ‘이씨 왕조[李朝]’라 일컫고, ‘황명

(皇命)’은 ‘명국(明國)’이라 고치고, ‘왜적(倭賊)’은 ‘적인(敵人)’이라 부르게 하며, ‘성상(聖上)’은 그저

‘상(上)’이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그 밖에도 혹 한두 구절을 삭제하고 혹 글 전체를 빼어버렸으니 책의 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글의 의미가 중간에서 끊겨버렸다. 자손 된 이로서 마음에 크게 부끄러웠으나 이는 실로

시절의 형세가 그리한 것이다.

 부득이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부득이한 까닭은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아! 예로부터 한 나라가 망하고

새 나라가 들어설 때면 그 전 나라의 역사며 야사(野史)가 저절로 많아지게 마련이거늘, 어찌 사사로운 뜻으로

그것들을 모두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어찌 어린아이의 소견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가소로울 뿐이다.

나중에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또한 마땅히 그 시절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슬프고 상한 마음으로 크게

탄식할 것이다.

병자년(1936년) 청명 절기에 이세찬 삼가 쓰다."

 

이로써 이조라는 말이 간교한 식민지배자들이 고의로 만들어낸 어휘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한자말은 ‘본조(本朝)’였다. 그러나 이제 대일본제국이 ‘우리나라’가 되었으니 본조는

사용을 금하고 그 대신 조선을 가리킬 때는 ‘이조(李朝)‘, 즉 ’이씨네 나라‘라는 신조어를 쓰게 한 것이다.

물론 일본은 ’조선‘이라는 말 자체에도 지독한 경멸의 뜻을 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조센징, 조센삐2 같은

말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남이 내 이름을 나쁜 뜻으로 쓴다고 해서 멀쩡한 제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 조선‘, 이것은 실상 전 세계에 유례가 드물었던 도덕 국가, 문화

국가의 국호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오백 년을 계속한 나라다. 세계 어느 왕조도 수명이 길어야 대개 이백 년이었다. 철권통치의 구소련도

칠십 년을 못 넘겼는데, 임진 병자 두 차례 큰 전쟁을 치르고도 조선이 다시 삼백 년 가까이 지속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이 나라가 백성을 하늘로 생각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왕실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건물이 무엇인가?  백성을 위해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사직(社稷)이 중요하나 이것은 건축이 아니다. 선왕

(先王)들의 신주(神主)를 모신 종묘(宗廟)가 아닌가? 그러나 종묘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가장 권위적이고 화려하며 찬란하기 이를 데 없을 법한 저 종묘 건축이 얼마나 소박하고 검소하며 또 고요하고

진정한 위엄에 차 있는가를.......

 

종묘 앞 월대(月臺) 그 너른 마당을 덮은 박석을 보라. 그저 돌까뀌로 툭툭 쳤을 뿐 흔한 물갈이조차 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심지어 네모 반듯하게 다듬지도 않았다. 이것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등 조선의 어느 궁궐 정전

 가 보아도 마찬가지다. 삼정승 육판서 노인들이 서서 조회를 보는 엄숙한 공간을 이토록 우툴두툴한 채

남겨둔 이유는 나라에 판석 몇 개 다듬을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도층부터 솔선하여 검소함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조선에는 거대 건축이 없다. 대신 크나큰 정신이 있다. 유네스코가 종묘를 ‘세계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는 건물이 굉장해서가 아니었다. 거기 깃들인 인문 정신을 높이 샀던 것이다.

 

서울 사대문(四大門)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정문(肅靖門)이다.

여기엔 위정자가 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정치를 펼칠 것을 요구한, 조상들의 차원 높은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인(仁)을 일으키고’ ‘예(禮)를 높이며’ ‘의(義)를 두텁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을 보라! 품새는 장중하지만 결코 위압적이지 않다. ‘엄숙하고 고요하다’는 뜻을 가진 북대문에는 북쪽을

상징하는 ‘지(智)’라는 글자가 없다. 그것은 씨앗이 흙 속에 묻혀 겨울을 나는 것처럼 지성은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닌 까닭에 글자를 숨긴 것이다. 조선을 이끌어간 정신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곧 변함없이 떳떳한

다섯 가지 덕(五德)으로 요약된다. ‘믿을 신(信)’은 중앙에 해당한다, 그래서 한양 한복판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우고 큰 종을 매달았다. 백성을 ‘믿음’으로 대한다는 뜻을 담아서 말이다.

 

조선은 성리학 국가로서 ‘민위천(民爲天)’ 곧 ‘백성이 하늘이라’고 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펼쳤으므로

세계사에서 드문 519년의 장수를 누렸다. 그 조선은 우리의 조국이었다. 할아버지, 증조, 고조할아버지는

물론, 거슬러 올라 17대 위로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떳떳한 이름이 바로 조선이다. 동학농민군도 정조

(正祖)때의 정치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 나라를 뒤엎자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을 대할 낯이

없게 하는 저 ‘이조’라는 말을 절대로 쓰면 안 된다. 그리고 일본일들에게 지금도 일상 회화와 대부분 일본

서적에서 쓰고 있는 ‘이조’라는 단어, 저들의 잘못된 언어 관행을 하루 빨리 고치라고 강력한 외교적 항의를

펼쳐야 한다. 만의 하나 저들이 내정 간섭이라고 우긴다면, 우리도 예로부터 그들에게 써온 왜국(倭國),

왜인(倭人)이라는 말을 사용할 뿐이다.

 

‘이조’는 왕조 말 세도정치로 지도층이 도덕성을 잃고 관리가 부패하고 급기야 힘으로 남에게 나라를 빼앗긴

 들씌워졌던 모욕적인 이름이다. 모든 나라는 언제고 멸망한다. 그러나 조선은 주체성과 문화정치로 빛났던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국호였다. 이 나라를 집에 비유하면 그것은 오히려 너무 정직하게 잘 지었던 든든한

돌집이었다. 그래서 무너지는 과정이 너무나 더디었고 그만큼 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라! 3·1운동과 6·10만세 운동이 언제 일어났는가? 고종과 순종이 사망한 해가 아니었던가? 조선은 망하자

곧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선인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조선의 건축과 도자기며 목공에,

그리고 그림과 글씨를 보라. 그 음악을 들어보라. 어질고 너그럽고 단아하며 굳세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다.】

 

[스미스소니안 박물관 소장 일명 '쥬이' 태극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명 '데니' 태극기]

 

 

독도함에 달린 태극기를 망한 나라의 국기로 보는 기레기는 어느 나라 자손이냐?

글 쓴 기레기 조상은 열도에서 넘어왔는가?

일제강점기에 친일하던 너희 신문사 이름은 부끄럽지 않고 이 태극기가 부끄럽더냐?

 

 

 

  1. 일명 ‘데니 태극기’로 알려진 대한제국 시대의 태극기이다. 구한말 고종이 미국 출신의 외교고문 O. N. 데니(O. N. Denny, 1838 ~ 1900)에게 1890년경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이 태극기는 데니의 친척들이 대대로 보관해오다 후손들이 가족들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하여 1981년 6월 23일 한국에 기증했다. 데니 태극기는 2008년 8월 12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38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 262 x 182.5cm로 현존하는 태극기로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있는 ‘쥬이(Jouy) 태극기’다. 1883년 미국공사의 일행으로 조선을 방문한 스미소니언박물관 연구원이던 쥬이가 입수해 1884년 미국으로 가져간 것이다. 현행 태극기를 대한민국 국기로 정식 공포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이다. [본문으로]
  2. 조센삐 : 일본군 위안소에서 조선 여자들을 부르던 단어. 조센삐에 대한 어원의 해석은 영어의 매음부[prostitute]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서 ‘삐’라 부른 것이다. 일본군 장병들은 자신들의 성욕을 동물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상대를 비하해서 이렇게 불렀다. 일본군은 또 위안부를 '야계(野鷄)'라고도 불렀다. 이것은 병사와 위안부의 행위가 닭이 교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