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풍속화가, 풍속화, 풍속 9

從心所欲 2018. 12. 8. 19:03

 

김홍도의 풍속화하면 <무동> <씨름>과 같은 그림들이 먼저 떠오른다. 모두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그림들이다. 《단원풍속도첩》에는 이외에도 <서당>, <활쏘기>, <우물가>, <빨래터>, <타작>, <그림감상>, <나무하기와 윷놀이> 등 모두 25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단원의 풍속화는 거의 대부분 이《단원풍속도첩》에 있는 그림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단원의 풍속화는 이것이 전부인 것으로 오해되기 쉬우나 기실 병풍 그림으로 남긴 풍속화들이 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산수풍속도병」,「행려풍속도병」,「풍속도병」과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계풍속도병」이다. 각각 8첩으로 되어있는 병풍형태의 작품들이다.

「행려풍속도병」은 1778년 김홍도가 34세 때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지방의 풍속을 담았는데, 그림의 각 폭마다 표암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화제를 달았다. 「풍속도병」은 51세인 1795년 작품이고 「산수풍속도병」은 제작연도를 알 수 없다. 「사계풍속도병」 역시 제작 연도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행려풍속도병」과 세 개의 그림이 겹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의 작품으로 짐작할만하다. 이런 풍속도병의 그림들이 자주 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변색과 훼손으로 인하여 사진으로는 그림을 제대로 전할 수도, 감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김홍도 「행려풍속도병」中 <과교경객(過橋驚客)> , 90.9 x 42.7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 왼쪽 상단에 강세황은 “다리 아래 물새는 당나귀 발굽소리에 놀라고 당나귀는 날아오르는 물새 소리에 놀라네. 사람은 당나귀가 놀라는 것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 가히 입신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평을 했는데 사진으로 전하는 그림으로는 이런 찬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사계풍속도병」은 단원의 풍속화 병풍 작품 가운데 가장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병풍은 프랑스인인 루이 마랭(Louis Marin)이 1901년 조선을 방문했을 때 구입해간 것으로 그 후손이 1961년에 유럽의 최대 동양박물관인 기메미술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계절의 장면을 2첩씩 담고 있다하여 「사계풍속도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행려풍속도병」과 화풍은 유사하지만 적극적으로 채색이 이루어진 점이 다르다. 이 풍속도병을 2004년에 원광대학교 문화재복원수복연구소에서 모사 작업을 했다. 원본을 바탕으로 컴퓨터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배경은 은은하게 남겨둔 채 인물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한 탓인지 인물만 도드라지게 보이는 경향이 있고, 특히 흰색이 유난히 강조되어 보인다. 현대 화가가 옛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나마 이런 수고 덕분에 「사계풍속도병」의 원래 모습을 가늠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된 것은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다.

 

[김홍도「사계풍속도병」中 <노상송사(路上訟事)>, 견본담채, 100.0×49.0㎝, 파리 기메미술관]

 

[원광대 모사본 <노상송사>]

 

이 그림은 「행려풍속도병」에도 같은 그림이 있는데 강세황은 이렇게 화제를 달았다. “물품을 맡은 자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사또의 행색은 초라하지 않다. 시골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아전이 판결문을 쓰는데 술 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느라 오판이나 없을는지.” 이 그림은 <취중송사(醉中訟事)>

로도 불린다. 송사한 두 사람이 엎드려 옥신각신하고 있고 바로 그 위에 서리가 땅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적고

있는데, 술 꽤나 들이켠 몰골이다. 사또 가마 옆에 기생이 동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들놀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송사를 만난 듯하다. 시골원님 행차에 10명도 넘는 인원이 따라나섰으니 당시 원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만하다. 「행려풍속도병」에 있는 그림에는 길 가던 아낙이 사또 행차에 비석 뒤에서 엎드려 있는 모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홍도「사계풍속도병」中 <기방쟁웅(妓房爭雄>>]

 

[원광대 모사본 <기방쟁웅>]

 

흔치 않은 단원의 기방 그림이다. 그림으로 보아 이 기방에는 기생이 둘인 듯 하다. 서울의 기생은 기부들이 관리하고, 지방 기생들은 기생어미가 관리했다고 한다. 대문 밖으로 내다보는 노파는 기생어미 노릇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가? 앞의 두 남자는 일행으로 보이는데 왼쪽 사내가 오른쪽 사내의 멱살을 쥐고 있다. 무언가 할 얘기가 많은 듯한 일행에게 그만 가자고 윽박지르는 모습이고, 그 옆에는 기생이 포교의 허리끈을 잡고 애교를 부리는 듯 한데 그것을 듣고 있는 포교의 표정으로 봐서는 기생이 무언가 사정을 하는 기색이다. 어떤 연유로 앞의 두 남자를 잡아가려는 것을 선처해달라고 사정이라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집안에는 또 다른 기생과 손님들이 있다. 두 사람은 방에 들어앉아 있고 밖에도 두 명의 손님이 있다. 역시나 여기도 술상은 없다.

당시의 기방은 술을 마시는 목적보다 기생의 기예를 즐기러 가는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물론 기생의 자태에 홀려 찾아가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기방의 매상은 술 팔아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생의 공연료다. 기생들은 손님 앞에서 노래나 악기 연주 같은 공연을 하고 그에 대한 사례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초까지도 기생이 명월관이나 국일관에 불려가는 것은 술시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연을 위해서였다. 기생이 손님 옆에서 술을 따르며 시중을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요정 문화에서 비롯된 그릇된 상상이다. 기방 대문 양쪽에 붙어있는 글귀가 흥미롭다. 오른쪽에는 ‘天下太平春’, 왼쪽은 ‘四方無一事’라고 쓰여 있다. ‘천하가 태평한 봄이고 세상은 별 일없이 잘 돌아간다’는 뜻이니, 마음 편히 즐기고 놀라는 프로모션 문구인 셈이다.

 

[김홍도「사계풍속도병」中 <가두매점(街頭買占)>]

 

[원광대 모사본 <가두매점>]

 

벅구1를 두드리는 두 사내와 어울려 한 여인이 신명나게 춤을 추는 중에 삿갓 쓴 여인이 부채를 들고 관객에게

돈을 걷고 있다. 사당패 몇 명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가두매점이라는

그림 제목이 뜬금없다. 사당패는 거사로 불리는 남자와 사당으로 불리는 여자로 구성된 조선시대의 남녀 혼성

공연패거리이다, 본래는 사찰 소속으로 민가를 돌며 사찰의 부적을 팔고 시주를 걷어 사찰의 경비를 충원하는

불교음악집단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찰에서 독립하여 전국을 유랑하며 공연하는 유랑예술집단으로

변모되었다 한다. 사당패는 노래와 춤 공연을 앞세우지만 여사당들이 매음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림으로는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뒤쪽 다리 위로 걸어가는 댕기머리의 여인은 보를 덮은 소반을 머리에 이고 가는 중이다.

떠꺼머리총각과 갓 쓴 어른 두 사람은 사당패 구경 대신 다리를 건너는 처녀를 훔쳐보고 있다.

 

[김홍도「사계풍속도병」中 <노상풍정(路上風情)> ]

 

[원광대 모사본 <노상풍정>]

 

[김홍도「사계풍속도병」中 <파안흥취(破鞍興趣)>]

 

[원광대 모사본 <파안픙취>]

 

<노상풍정(路上風情)>과 <파안흥취(破鞍興趣)>는「행려풍속도병」에도 있는 그림이다. 강세황은 두 그림에 각각 이렇게 화제를 달았다.

“소등에 올라탄 시골 노파를 나그네가 말고삐를 느슨히 하고 쳐다보는가. 순간적인 광경이 웃음을 자아내네.”

“헤진 안장에 여원 나귀 행색이 심히 초라해 보이네. 무슨 흥취가 있어 머리를 돌려 목화 따는 시골 아낙네를 바라보는가.”

두 그림 모두 길 가던 사내들이 남의 여자를 훔쳐보는 장면이다. 그러고 보면 단원은 훔쳐보는 장면을 여럿 그렸다. 《단원풍속도첩》에는 <노상과안(路上破顔)> 또는 <길 가는 여인 훔쳐보기>이란 그림이 있고 <빨래터>라는 그림도 있다.

 

[《단원풍속도첩》中 <길 가는 여인 훔쳐보기>, 지본담채, 28.1 x 23.9cm]

 

[《단원풍속도첩》中 <빨래터>, 지본담채, 28 X 23.9 cm]

 

혜원 또한 다르지 않다.

 

[신윤복「혜원전신첩」中 <계변가화(溪邊佳話)>]

 

[신윤복「혜원전신첩」中 <단오풍정(端午風情)>]

 

어쩌면 훔쳐보기는 남녀가 유별한 사회에서 남자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눈 호강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면 단원과 혜원은 평생 다시는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한국전통연희사전(2014. 민속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1. 벅구 : 법고(法鼓)에서 온 말로 법구 또는 소고(小鼓)라고 하는데 사당패들이 치는 소고를 벅구라 하였다. 지역에 따라서는 크기가 큰 것을 소고라 하고 작은 것을 벅구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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