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건축물

산사(山寺) 1 - 삼문(三門)

從心所欲 2019. 3. 29. 19:09

 

명산은 물론이고 웬만한 산치고 절 없는 산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산에는 절들이 많다. 그래서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산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절 구경을 하게 된다. 허다 못해 수학여행 길에라도 한번은 보게 된다.

그럼에도 절에 대한 특별한 기억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 남들 뒤따라 생각 없이 쫓아다닌 절 구경이라 그렇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

 

격식을 갖춘 산사(山寺)들은 대개 삼문(三門)을 갖추고 있다. 불교에서 삼문은 법공(法空), 열반(涅槃)으로

들어가는 3가지 해탈문(解脫門)을 가리키는데, 즉 공문(空門), 무상문(無相門), 무작문(無作門)을 이른다.

그래서 사찰의 본당을 열반이라 비유하여 거기에 이르는 3단계의 누문(樓門)을 세운 것이다. 이때의 삼문은

산문(山門)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사찰에 세 개의 문을 둬서 진입을 길게 유도하는 방법은 고려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문 중에서 가장 앞에 있는 문이 일주문(一柱門)으로, 사찰 건물의 기본 배치에 있어서 사찰 경내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지나는 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은 기둥이 하나인 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둥이 일렬로 서 있다는 의미다.

기둥 넷을 세워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대신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이다.

대개의 일주문 기둥은 두 개이지만 부산의 범어사 일주문 같은 경우는 4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웠다.

일주문은 물리적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다. 불교의 우주관으로는 일심(一心)1을 뜻한다고 한다. 신성한 가람2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는 별칭 없이 일주문이라고 부르지만 부산 범어사 일주문은 조계문(曹溪門)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다.

 

[범어사 일주문(조계문), 신기승 사진]

 

절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일주문에서는 절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울진 불영사처럼

일주문에서 사찰 본전에 이르는 길이 거의 20분 거리가 될 정도로 먼 경우도 있다. 마음이 급하거나 걷기에

약한 사람들은 이 먼 거리가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산사가 주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일주문에서 경내까지 이르는 길의 거리는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부처의 세계로 가는 마음을 가다듬는데

필요한 만큼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한다면 이 길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불영사는 이 길에다 ‘명상의 길’

이라는 현대적 감각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불영사 명상의 길]

 

영주 부석사에서 일주문을 지나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다 보면 왼 쪽에 돌기둥 두 개가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간지주(幢竿支柱)라는 것이다.

 

[부석사 당간지주]

 

불화를 그린 깃발을 거는 장대를 당(幢)이라고 하고 가로로 연결되어 당을 지지해주는 장치를 간(竿)이라

하여,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들이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당을 세우기 위하여 사찰 앞에 설치되었던 건조물이면서, 한편으로는 사찰이라는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석사의 당간지주는 부석사의 창건과 함께 7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2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위쪽 절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가 후에 현 위치로 옮겨졌다.

보물 제255호이다.

조선시대에는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처럼 거대한 규모의 당간이나 지주가 조성되지는 않았다. 작은 규모로

높이도 낮추어 지주에 목조 당간을 세웠는데, 조선시대에 중창한 사찰들에는 그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천왕문(天王門)이 삼문 중 두 번째 문이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자들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고대 인도의 신이었던 그들은 불교에 채택되면서부터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護法

天王)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절에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건립하는 이유는 절을 외호(外護)한다는

뜻도 있지만,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수호신들에 의해서 도량 내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려는 데도 뜻이 있다. 또한,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공주 마곡사 천왕문]

 

[부석사 천왕문 내부의 사천왕상, 문화유산채널 사진]

 

이 천왕문에 이르기 전에 따로 금강문(金剛門)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천왕문의 입구 문에 금강역사

(金剛力士)의 모습을 그리거나 따로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여 금강문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중창하는 사찰에서는 대부분 금강문을 따로 세우고 있다. 금강역사상은 불법을 훼방하려는 세상의 사악한

세력을 경계하고, 사찰로 들어오는 모든 잡신과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승불교의 《오분율

(五分律)》에 따르면 부처가 있는 곳에는 항상 5백의 금강신이 있어 좌우에서 부처를 호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찰에서는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서 금강역사상을 안치하는 것이다.

 

[하동 쌍계사 금강문]

 

삼문의 마지막 문은 둘이 아닌 절대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不二門)이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며, 이 문을 통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건물을 지나면 부처님을 모신 본전(本殿)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수미산3 정상에 오르면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忉利天)이 있고 도리천 위에

불이문이 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현실세계인 사바세계를 다스리는 천왕으로 중생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그 위에 있는 불이문(不二門)은 중생이 극락에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이미 마음이 ‘둘이

아닌(不二)’ 경지에 다다라 있으면 이것이 곧 해탈의 경지이기 때문에 불이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영암 월출산 도갑사 해탈문]

 

[양산 통도사 불이문]

 

누각 밑을 통과하는 형태의 해탈문도 있다. 2층 누각을 지어 아래층의 기둥 사이를 길로 만들어 문의 형태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입하는 쪽에서 보면 문이 되지만 통과한 뒤 뒤를 돌아다보면 누각의 형태로

나타난다. 부석사의 안양문(安養門)이 대표적인 경우다.

 

[부석사 안양문]

 

안양(安養)은 극락정토의 다른 이름으로 부석사에서는 이 안양문이 불이문의 역할을 한다. 범종각(梵鐘閣)을

지나 주불전(主佛殿)인 무량수전으로 가려면 안양문 현판이 걸린 2층 누각의 1층 기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계단을 오르다보면 무량수전이 눈앞에 나타난다. 계단을 빠져나와 뒤돌아

보면 2층의 누각은 위층만 보이고 현판은 안양루(安養樓)로 바뀌어 있다.

 

[부석사 안양문 1층 계단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보는 안양루, 김민주 사진]

 

우리나라 산사의 이러한 삼문(三門)의 가람배치는 수미산을 형상화한 배치이다. 일주문(一柱門)은 천상계를

넘어선 불지(佛地)를 향해 나아가는 자의 일심(一心)을 상징하고, 사천왕문은 수미산 중턱까지 올라왔음을

의미하며,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는 것은 수미산 꼭대기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처는 그 위에 있다고

하여 법당 안의 불단을 수미단(須彌壇)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범종각(梵鐘閣)을 사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에 세우거나 불이문 옆에 건립하는 까닭도 불전사물(佛殿四物)4

울려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한 모든 중생에게 불음(佛音)을 전하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부석사에도 천왕문과

안양문 사이에 범종각이 있다. 부석사의 범종각은 안양문처럼 1층 누각 기둥사이로 지나게 되어있는데 계단을

오르면서 고개를 들면 앞에 안양문과 무량수전이 바로 바라다 보인다.

 

[부석사 범종각]

 

[범종각 누각 밑 기둥과 통로]

 

[범종각 계단에서 본 안양문과 무량수전]

 

 

참조 :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2007, 김왕직), 시공 불교사전(곽철환, 2003, 시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 일심(一心): 불교에서 만유의 실체라고 보는 참 마음(眞如)으로 이 말에는 '절대(진리)'라는 의미와 '오직 마음뿐'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본문으로]
  2. 가람(伽藍) : 승려들이 사는 사찰 등의 건축물을 가리키는 말로 그 어원은 상가람마(Sa○-ghā-rā-ma)인데, 이것을 한역(漢譯)하여 승가람마(僧伽藍摩)라 하였고, 줄여서 가람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
  3.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나온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산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승신주(勝身洲)·섬부주(贍部洲)·우화주(牛貨洲)·구로주(俱盧洲)의 4대 주가 동남서북에 있고, 그것을 둘러싼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있다. 이 수미산의 하계(下界)에는 지옥이 있고, 수미산의 가장 낮은 곳에는 인간계가 있다. 또한 수미산의 정상은 정입방체로 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 선견천(善見天)이 있고 주위의 사방에는 32개의 궁전이 있으므로 삼십삼천(三十三天)이라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수미산의 남쪽 칠금산(七金山)과 대철위산(大鐵圍山)의 짠물 바다에 있는 염부제(閻浮提)라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
  4. 불전사물佛殿四物): 범종, 운판, 목어, 법고의 4가지 불구(佛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