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건축물

우리 옛 건축물 29 - 문화재 유감

從心所欲 2018. 9. 15. 15:09

일제의 고건축학자가 완전 해체한 뒤 재조립하면서 망가뜨려 놓은 석굴암을 우리 정부가 원형에 기초한 복원을

하겠다고 1962년에 정비 사업에 나선다. 1964년까지 3년 동안 공사를 해서 복원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습기가 차고 누수가 생겨 몇 년 뒤 재차 공사를 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1976년,

관광객의 출입을 막는다며 유리벽 설치를 해놓고는 지금까지도 그 상태이다. 

 

[유리벽 뒤의 석굴암]

 

석굴암은 본래 본존불 주위의 10대 제자상과 11면 관음상으로 둘러진 방을 한 바퀴 돌면서 참배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인데 유리벽으로 막아 놓았으니 그 의미도 사라져버렸다. 유리벽 안으로는 절에서 허락하는 때에

일정 금액 이상의 시주를 하면 스님과 같이 안에 들어가 기도를 할 수도 있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동해에서

해가 떠 석굴암 본존불을 비추면 본존불 이마에 박힌 보석에서 빛이 났다는 얘기는 이제 완전히 전설의

얘기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제가 주먹구구식으로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미처

 제자리를 찾지 못해 남겨놓았던 석재들이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국보 24호인

석굴암의 현재 모습이다.

 

[석굴암 미조립 석재들]

 

일제가 총독부건물을 지으면서 경복궁 한쪽에 옮겨 방치해놓았던 광화문을 1968년 정부가 야심차게 복원했다. 

저 변두리 어디 산속도 아닌 수도 서울 그것도 한 복판에 조선 궁궐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문화재의 복원은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된 일이었다. 3월에 착공해서 그 해 12월에 완공했고 준공식에는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런데 복원된 광화문에 사용된 나무라고는 새롭게 만들어진 한글 현판이 유일했다고 한다. 이걸 콘크리트로

지어놓고는 그 후로도 30년이 넘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인양 내버려뒀었다. 그 후 1975년에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도 콘크리트로 복원을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상태이다.

 

[1968년의 광화문복원 기념행사]

 

[1975년 영추문 복원 준공식]

 

[구한말 조선총독부청사 건설 당시의 광화문]

 

광화문은 2010년에 다시 복원되면서 현판도 새로 바꿔 달았다.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다. 1865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공사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썼던 글씨로

복원한 것이다. 복원 당시부터 현판이 깨지는 등 부실 논란과 글자 색깔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그 때마다

문화재청은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1902년의 유리건판사진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16년 유리

건판 사진을 근거로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떤 분이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소장 중인 1893년 9월 이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광화문 사진을 찾아 공개했다.

 

 

흐릿하기는 해도 한 눈에 광화문에 걸린 현판의 바탕은 어둡고 글씨는 밝은 색임을 알 수가 있다.

결국문화재청은 여론에 밀려 연구조사를 한 끝에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했다. 현판이 원래 검정색 바탕에 금박

글자라는 판단을 내놓고 내년까지 현판을 교체한다고 발표하였다.

 

 

궁궐 건물인지 아니면 사찰 건물,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의 사찰 건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경복궁 한쪽에 자리잡고는 경복궁을 내려다 보고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다. 1966년 착공해서 1972년

완공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가 93년부터 민속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건립 당시

한반도 전국 각지의 유명한 불교건축의 아름다운 부분을 가져와 조합하라는 윗 사람의 요구를 수용하여

지은 건물이다. 그 결과 이런 생뚱맞은 건물이 조선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 안에 버젓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당시 정부와 담당부처로 대변되는 우리 국가가 문화재를 대하는 수준이 이 정도였다.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라는 미륵사지 동탑 복원도 바로 그런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국보 15호이다.

 

 

그런데 건물이 뭔가 익숙하고 친근해 보이질 않는다. 흔히 보아오던 옛 건물들과는 어딘가 느낌이 달라 혹시조선시대가 아닌 고려시대 건물이라 그런가 하는 추측을 할 수도 있다. 정부가 1972년 극락전을 완전 해체하여

1975년 복원공사를 마쳤다. 그런데 건물 정면을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해 놓았다. 아래는 복원 전 원래의

극락전 모습이다.

 

[복원전 봉정사 극락전]

 

정면 전체가 띠살청판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앞에 쪽마루까지 있던 건물이다. 그걸 전부 떼어버리고 벽을 만든

다음, 가운데에 판문을 달고 양쪽에 세로살창을 하나씩 달아놓았다. 복원된 건물의 정면형태는 중국풍이라고

한다. 건물의 단청도 중국풍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고도 여전히 봉정사 극락전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당시 이 복원공사 실무를 담당했던 전직 문화재위원은 나중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자 “띠살창 등은 고려시대

건축 요소가 아닌 것으로 조사돼 제거한 것이며, 당시 전문가도 별로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해결책이었다”고 답했다.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후기에 건축되어 조선 500년을 거친 건물이다. 그 과정에서 

건물 외관에 어떤 변화가 생겨 원래의 모습에서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도 역사다. 고증이 가능하여

고려시대 원래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만 고증이 불가능했다면 고증이 가능한 시기

까지의 모습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래야 후세의 연구에라도 도움이 될 것인데 그걸 20세기의

감각으로 제멋대로  재창조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문화재위원까지 하면서

다른 문화재 관리와 복원에 감놔라 대추놔라 했을 생각을 하면 더 끔찍하다.

 

이런 사례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지난 일을 들춰내 누구를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리체계와 수준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후진적이고 열악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위의 전 문화재위원 말마따나 자료도 없고 전문가도 없던 시절이다. 그러니 드러나지 않은 시행

착오는 또 얼마나 더 많았겠는가? 

 

전에 금단청을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기능보유자인 홍머시기라는 분의 병풍작품을

소개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분이 불 탄 숭례문의 단청 복구과정에서 천연안료 대신, 사용이 금지된 화학

안료와 화학접착제를 사용하여 수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고 그로 인해 단청 재시공에 따른 비용 수십억 원의

손해를 발생시켜 몇 년 전 가족, 제자 들과 함께 사기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형사입건 되었다. 이 홍머시기라는

분은 단청 공사 때 전통기법으로 한 경험과 능력이 없었음에도 숭례문 복구공사를 전통기법과 전통재료만을

사용해 단청공사를 할 수 있다고 문화재청을 속여 공사의 단청장으로 선임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중요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 광화문 복원 총책임자였던 신모라는 양반은 광화문 복원용 금강송을 빼돌렸다가 검찰에

기소되었고, 광화문 복원공사 업체로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은 문화재청 공무원들도 구속되었다.

이런 사실보다 더 경악할 일은 위의 신 모라는 대목장이 쓴 책에 있는 글이다.

 

“............당시 이 절의 신축을 제안 받았을 무렵 한창 진행 중인 경복궁 동궁지역 복원공사와 구인사 조사전,

창덕궁 외행각 공사까지 겹쳐 더 이상 일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어 번 정중히 거절했지만 수개월 뒤

문화재관리국 정xx국장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결국 공사를 맡게 되었다.......”

 

이 양반이 문화재관리국 정모 국장을 엿을 먹이려는 건지 아니면 자기 자랑하느라 정신을 못 차려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개인이 경북 영주에 절을 짓는 일에 자신이 참여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힌 것이다. 문화재

복원공사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 당사자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

뜯어말려야 할 직책에 있는 공무원이 오히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간곡한 부탁까지 해가면서 사람을

빼돌렸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홍머시기와 신모 대목장, 문화재 정모 국장 같은 사람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이들이 여전히 막후에서 우리나라 문화재 관리와 복원에 깊이 관여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로 이런 일들이 적폐다.

 

문화재청장이 새로 임명되었다. 30년간 문화부 기자를 했다고 하는데 적폐에 눈감고 30년 동안 문화계

인사들과 친분 쌓으며 기레기 생활을 했는지 아니면 취임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하며

기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당발 덕분에 자리나 차지하고 있다 물러나는 인사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