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과거시험에는 답안지를 작성하는데 쓰는 문체와 요령이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박지원도 친구들과
어울려 과거시험의 글쓰기를 익혔다고 했다. 박지원의 처남인 이재성이 고금의 과체(科體)1를 모아
「소단적치(騷壇赤幟)」2란 책을 지었는데 박지원이 이 책의 서문을 썼다.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이란
글로, 인(引)은 서문(序文)의 의미다.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兵法)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敵國)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운(韻)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照應)3이란 봉화를 올리는
것이요, 비유란 기습 공격하는 기병(騎兵)이요, 억양반복(抑揚反復)4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破堤)5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란 반백의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이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무릇 장평(長平)의 병졸은 그 용맹이 옛적과 다르지 않고 활과 창의 예리함이 전날과 변함이 없었지만,
염파(廉頗)가 거느리면 승리할 수 있고 조괄(趙括)이 거느리면 자멸하기에 족하였다6. 그러므로 용병 잘하는
자에게는 버릴 병졸이 없고, 글을 잘 짓는 자에게는 따로 가려 쓸 글자가 없다. 진실로 좋은 장수를 만나면 호미
자루나 창자루를 들어도 굳세고 사나운 병졸이 되고, 헝겊을 찢어 장대 끝에 매달더라도 사뭇 정채(精彩)7를
띤 깃발이 된다. 만약 이치에 맞다면, 집에서 늘 쓰는 말도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고 동요나 속담도
『이아(爾雅)』8에 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이 능숙하지 못한 것은 글자의 탓이 아니다.
대저 자구(字句)가 우아한지 속된지나 평하고 편장(篇章)9의 우열이나 논하는 자들은 모두 변통의
임기응변과 승리의 임시방편을 모르는 자들이다. 비유하자면 용맹스럽지 못한 장수가 마음에 미리 정해 놓은
계책이 없는 것과 같아서, 갑자기 어떤 제목에 부딪히면 우뚝하기가 마치 견고한 성을 마주한 것과 같으니,
눈앞의 붓과 먹이 산 위의 초목을 보고 먼저 기가 질려 버리고 가슴속에 기억하고 외우던 것이 이미 모래 속의
원학(猿鶴)이 되어 버린다10. 그러므로 글 짓는 자는 그 걱정이 항상 스스로 갈 길을 잃고 요령을 얻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후략)
박지원은 옛글의 글자나 따다 쓰고 옛 문장을 흉내 내어 글 짓는 행태를 비판하며 글을 짓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문체가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의 정리된 생각이라는 점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박지원의 생각은 「연암집」과
「과정록」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 문장을 논하실 때면 늘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문장에 고문(古文)과 금문(今文)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문장이 한유와 구양수의 글을 모방하고
반고와 사마천의 글을 본떴다고 해서 우쭐하고 으스대면서 지금 사람을 하찮게 볼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道)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또한 아버지는 우리나라 선비들이 과문(科文)의 낡은 관습에 골몰하여 진부한 말들을 늘어놓거나 남의 글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순수하고 질박한 글을 짓는 체하여 문풍(文風)이 날마다 거칠고 부잡스럽게
변해가는 것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과정록」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논자(論者)들은 반드시 ‘법고(法古)11’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옛것을 흉내 내고 본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으로 예악(禮樂)을 제정할 수 있고12, 양화(陽貨)가 공자와 얼굴이 닮았다 해서13 만세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법고’를 해서 되겠는가.그렇다면 ‘창신(刱新)’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괴벽하고 허황되게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세 발[丈]되는 장대14가 국가 재정에 중요한 도량형기보다
낫고, 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15을 종묘 제사에서 부를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창신’을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면 문장 짓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아! 소위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다.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典雅)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다. 「연암집」 초정집서(草亭集序)16
옛글을 모방하여 글을 짓기를 마치 거울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같다[似]’고 하겠는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반대로 되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물이 형체를 비추듯이 하면 ‘같다’고 하겠는가?
뿌리와 가지가 거꾸로 보이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한다면 ‘같다’고
하겠는가? 한낮이 되면 난쟁이가 되고 석양이 들면 키다리가 되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림이 형체를
묘사하듯이 한다면 ‘같다’고 하겠는가? 걸어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소리가 없는데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옛글과 끝내 같을 수 없단 말인가?그런데 어찌 구태여 같은 것을 구하려 드는가? 닮은 것을 구하려 드는 것은 그 자체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천하에서 이른바 같은 것을 말할 때 ‘꼭 닮았다[혹초(酷肖)]’라 일컫고, 분별하기 어려운
것을 말할 때 ‘진짜에 아주 가깝다[핍진(逼眞)]’라고 일컫는다. 무릇 ‘진(眞)’이라 말하거나 ‘초(肖)’라고
말할 때에는 그 속에 ‘가(假)’ 와 ‘이(異)’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하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언어가 달라도 통역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고,
한자의 자체(字體)가 달라도 모두 문장을 지을 수 있다. 왜냐하면 외형은 서로 다르지만 내심은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마음이 닮은 것(心似)’은 내면의 의도라 할 것이요, ‘외형이 닮은 것
(形似)’은 피상적인 겉모습이라 하겠다.
이씨의 자제인 낙서(洛瑞)17는 나이가 16세18로 나를 따라 글을 배운 지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심령(心靈)이 일찍 트이고 혜식(慧識)이 구슬과 같았다. 일찍이 「녹천관집(綠天館集)」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질문하기를,
“아, 제가 글을 지은 지가 겨우 몇 해밖에 되지 않았으나 남들의 노여움을 산 적이 많았습니다. 한 마디라도
조금 새롭다던가 한 글자라도 기이한 것이 나오면 그때마다 사람들은 ‘옛글에도 이런 것이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발끈 화를 내며 ‘어찌 감히 그런 글을 짓느냐!’고 나무랍니다. 아, 옛글에
이런 것이 있었다면 제가 어찌 다시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판정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세 번 절한 다음 꿇어앉아 말하였다.
“네 말이 매우 올바르구나. 가히 끊어진 학문을 일으킬 만하다. 창힐(倉頡)19이 한자를 만들 때 어떤
옛것에서 모방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고, 안연(顔淵)20이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유독 저서가 없었다.
만약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창힐이 글자를 만들 때를 생각하고, 안연이 표현하지 못한 취지를 저술한다면
글이 비로소 올바르게 될 것이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남들에게 노여움을 받으면 공경한 태도로 ‘널리
배우지 못하여 옛글을 상고해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사과하거라. 그래도 힐문이 그치지 않고 노여움이
풀리지 않거든, 조심스런 태도로 ‘은고(殷誥)와 주아(周雅)21는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 당시에
유행하던 문장이요, 승상(丞相) 이사(李斯)22와 우군 왕희지23의 글씨는 진(秦)나라와 진(晉)나라에서
유행하던 속필(俗筆)이었습니다.’라고 대답하거라.” 「연암집」 녹천관집서(綠天館集序)
- 과거시험에 쓰이던 문체(文體) [본문으로]
- 소단(騷壇)은 원래 문인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문단(文壇)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문예를 겨루는 과거시험장을 가리킨다. 적치(赤幟)는 ‘붉은 색의 깃발’이다. 이는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조(趙)나라와 싸울 때 조나라 성의 깃발을 뽑고 거기에 한나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세우는 계략을 써서 조나라의 사기를 꺾어 승리한 고사(古事)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소단적치’ 는 ‘과거시험장에서의 승리의 깃발’이란 뜻으로 요즘으로 치면 '과거 완전정복' 정도의 미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 글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게 대응함 [본문으로]
- 문장의 기세를 억제하기도 하고 고조하기도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 [본문으로]
- 과거답안지의 첫머리에서 시제(試題)의 의미를 먼저 설파하는 것 [본문으로]
- 장평은 전국시대 때인 B.C.260년, 조(趙)나라 군사 40만이 진(秦)나라 장수 백기에게 몰살당한 곳으로, 조나라 명장 염파가 군대를 이끌 때는 진나라와 싸워 이겼으나, 진나라의 반간계에 속아 염파 대신 조괄을 장수로 내세운 결과 대패하고 군사들은 모두 생매장 당했다. [본문으로]
- 정묘하고 아름다운 빛깔 또는 생기가 넘치는 활발한 기상 [본문으로]
- 문자의 뜻을 고증하고 설명하는 사전적인 성격을 지닌 유교 경전 [본문으로]
- 문장(文章) [본문으로]
- 중국의 신선방약(神仙方藥)과 불로장수의 비법을 서술한 도교서적인 갈홍(葛洪, 283 ∼ 343)의 포박자(抱朴子)에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남쪽으로 정벌을 떠났는데 전군이 몰살하여 군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소인은 벌레와 모래가 되었다.’고 한 구절을 들어 비유한 것 [본문으로]
- 엣 것을 본받음 [본문으로]
- 왕망은 한나라 평제(平帝)를 시해하고 신(新)나라를 세웠다. 이때 유흠이란 인물이 왕망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비부(秘府)에 소장되어 있던 ‘주관’을 개찬(改竄)하고 ‘주례’로 이름을 바꾼 뒤 ‘드디어 비부를 열고 유자들을 모아 예와 악을 제작했으며, 주례를 발굴하여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예를 본받았음을 밝히셨다’고 예찬한 일을 비유 [본문으로]
- 양화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정경(正卿)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으로 노나라 국정을 전단했던 인물로 공자와 얼굴이 닮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 진(秦)나라 때 상앙(商鞅)이 국가개혁을 위한 신법(新法)을 시행하면서 성의 남문에다 세 길쯤 되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누구든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금 50냥을 상으로 준다”는 방을 붙이고 그것을 옮긴 자에게 실제로 상금을 주어 새로 반포하는 법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얻고자 했던 일. [본문으로]
- 사기 영행열전(佞幸列傳)에 따르면. 이연년은 한나라 무제(武帝)가 총애한 이 부인(李夫人)의 오빠로 노래를 매우 잘했으며 신성(新聲) 즉, 변화하는 새로운 운율도 만들었다. 무제의 사랑을 받으면서 교만, 방자하다가 이부인이 죽은 뒤 무제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본문으로]
- 박제가의 초기 문집인 ‘초정집(草亭集)’에 부친 서문 [본문으로]
- 이서구(李書九, 1754 ~ 1825)의 자(字) [본문으로]
- 이서구가 1754년생이므로 이 글을 지은 때는 1769년으로 추정된다 [본문으로]
- 전설 속 황제의 사관으로 한자를 창조, 발명하여 ‘조자성인(造字聖人)’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사황(史皇)이라고도 불린다 [본문으로]
- 흔히 안회(顔回)라고 불리는 인물로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현인(賢人)이자 공자가 가장 신임하였던 제자였다. 회(回)가 이름이고 연(淵)은 자(字)이다 [본문으로]
- 은고와 주아는 각각 서경(書經)과 시경(詩經)을 가리킴 [본문으로]
- 진시황의 중국통일을 도왔고 진나라의 문자를 통일하고, '분서(焚書)'를 건의하여 유가서들을 불태웠다. [본문으로]
-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꼽히는 서예가로,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내 사람들이 왕우군(王右軍)으로도 불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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