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19 - 소낭(笑囊)

從心所欲 2020. 5. 6. 18:14

「소낭(笑囊)」은 패설집이다. 18세기 중후반 즈음에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패설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에는 황교산옹(荒郊散翁)이라는 이의 발문이 있는데, 자신의 친구 적반자(寂濱子)가 여항의 속된 말들을 모아 책 한 권을 만들어 자신에게 주면서 그것을 비평하도록 하였다고 적었다. ‘소낭(笑囊)’은 웃음주머니라는 의미로 책에는 총 135편의 이야기가 한문으로 실려 있다. 책은 고려대 박물관 육당문고에 유일하게 한 권이 전한다.

아래는 「소낭(笑囊)」에 실린 이야기들 중 몇 편이다.

 

 

 

중매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농담도 잘했다. 그녀는 자신이 중매한 처녀의 집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신랑이 매우 아름답고 음률에 밝아요. 게다가 허리춤에 지니고 다니는 옥피리는 천하의 지극한 보배이기도 합니다. 신랑은 이를 매우 사랑하여 잠시도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는답니다. 혼행길에도 당연히 지니고 올 것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한번 보자고 청해보세요.”

중매인은 돌아와서 신랑에게도 말했다.

“신부 집에 가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반드시 옥피리를 보자고 할 것입니다. 옥피리란 성기를 말하는 것이랍니다. 당신이 만약 부끄러워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졸렬함을 비웃을 겁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혼례를 행한 다음날, 신랑이 장모와 친척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인사하자 장모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 옥피리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한번 그 빛남을 자랑해보게.”

사위는 마침내 바지를 벗더니 벌거벗고 서서 자신의 양물을 내보였다. 그러자 장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이고 무색(無色)해라, 무색해!”

그러자 신랑이 말했다.

“자주색이온데 어찌 색깔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한 선비가 이웃집 맹인의 아내를 꾀어 막 즐거움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맹인은 밖에서 들어오다가 집에 선비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선비는 소리 내어 맹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이웃에 있는 아낙을 꾀어 간통하고 있네. 자네는 나를 위하여 점을 치며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주게.”

그래서 맹인은 문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점을 치다가 한 괘를 얻고는 놀라 말했다.

“일이 매우 급하니 빨리 하십시오. 빨리! 그 남편이 막 문 앞에까지 왔다는 점괘입니다.”

 

 

 

옛날에 두 여자아이가 이웃에 살며 사이좋게 지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시집갈 때까지 마음속에 있는 자잘한 일까지도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중 한 여자가 먼저 시집을 갔는데, 어느 날 아직 시집가지 않은 여자가 물었다.

“시집가니까 어떤 즐거움이 있니?”

“세상의 지극한 즐거움이 모두 여기에 있더라.”

“왜?”

“화촉을 밝힌 방에 원앙 이불과 비취 베개를 펼쳐놓고 젊은 신랑과 더불어 웃으면서 장난을 치는데, 내 몸이 하늘을 올라가는지, 땅으로 꺼지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그 즐거움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아직 시집가지 못한 처녀가 이 말을 듣더니 갑자기 흥이 일어 먼저 시집간 여자의 코를 물어뜯었다. 코를 물어뜯긴 여자는 매우 화가 나서 시집가지 못한 처녀를 관가에 고소하였다.

관아에서 송사를 할 때 고을 원님이 코를 물어뜯긴 여자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이유로 코를 뜯겼느냐?”

“저년이 시집간 재미가 어떠하냐고 묻기에 쇤네는 여차여차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저년이 갑자기 흥이 일어 쇤네의 코를 물었습니다.”

시집가지 못한 처녀는 이 말을 듣자 또다시 흥이 발동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곧바로 곁에 있던 사령의 코를 물었다. 원님이 그것을 보더니 몹시 두려워 급히 문을 닫고 급창(及唱)에게 외쳤다.

“네 코는 쇠코냐? 어찌하여 피하지 않느냐?”

▶급창(及唱) : 조선 시대에, 군아(郡衙, 고을의 사무를 보는 관아)에 속하여 원의 명령을 받아 큰 소리로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사내종

 

 

 

☞한 선비가 부친의 근무지에 따라왔다. 그 고을에는 이름난 기생이 많았다. 젊은 선비는 계집에 대한 생각은 많았으나, 본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라 기생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감히 그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가르치듯 말했다.

“대장부가 어찌 이처럼 용렬(庸劣)하신가? 기생과 말을 붙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네. 처음에 기생을 보면 이름을 물어보게. 그 다음엔 나이를 묻고, 그 다음엔 부모가 살아 있는지를 묻고, 그 다음엔 춤추고 노래하라고 명하는 것일세. 그러한 후에 생각한 일을 하는 것이고...”

선비는 거듭 연습했지만, 그 내용을 잊어버릴까봐 걱정하였다.

이윽고 선비가 한 기생을 몰래 불렀다. 기생이 명령을 받아 도착하자 선비는 기생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기생이 막 대답하려는데, 선비는 답변을 듣기도 전에 잇따라 다시 물었다.

“네 나이는 몇이냐? 네 아비는 살아 있느냐? 네 어미는 성이 있느냐? 너는 노래해라. 너는 춤을 추어라. 너는 나와 함께 잠을 자려느냐?”

그러자 기생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선비는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용렬(庸劣)하다 : 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하다

 

 

 

☞촌 아낙이 그 고을 통인(通引)과 좌수(座首) 두 사람과 몰래 정분을 나누고 있었다. 일찍이 통인과 간통하고 있을 때 좌수가 아낙을 찾아왔다. 방문을 열기 전에 아낙은 급히 이불로 통인을 말아 이부자리 옆에 세워놓고 나서 좌수를 맞이하였다.

▶통인(通引) : 수령(守令)의 잔심부름을 하던 구실아치로 이속(吏屬)이나 관노비(官奴婢) 출신들이 담당했다.

▶좌수(座首) : 조선시대 지방 자치 기구인 향청(鄕廳 : 留鄕所 또는 鄕所)의 우두머리.

 

좌수와 또 간통을 할 즈음, 이번에는 아낙의 남편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막 문을 열려고 했다. 아낙은 급히 좌수에게 어깨를 들썩이며 문을 나가되, 큰 소리로 “그놈을 잡아 한 주먹에 때려죽이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라고 외치라고 가르쳐주었다. 좌수는 그 말대로 하며 나갔다. 남편은 방으로 들어오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좌수가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왔대?”

아내는 짐짓 놀란 척 두려운 표정을 짓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통인을 세워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속을 들여다보세요. 제가 아니었다면 저 통인은 이미 죽었을 거예요. 저 아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좌수는 저 아이를 죽을 듯이 쫓아 오드라구요. 좌수를 피해 우리 집까지 쫓겨온 아이가 가여워 내가 몰래 저 자리에 숨겨주었어요. 그런데 좌수가 쫓아와서는 제게도 캐묻더군요. 통인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저렇게 화를 내며 가네요.”

남편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

 

 

 

신분이 낮은 종놈들은 말끝마다 반드시 “좆같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습게 여기면서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자주 썼다. 말을 뱉을 때마다 반드시 이 말이 튀어나왔는데, 이내 말버릇이 되고 말았다.

그는 아들의 결혼식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아들을 데리고 신부 집에 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에 사람들은 그에게 한마디씩 충고했다.

“자네가 말버릇 때문에 사돈집에 가서 만약 한마디라도 한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네. 그러니 입을 꼭 다물고 있게나.”

“내 마땅히 그리하겠네.”

그가 신부집에 가서 동뢰연(同牢宴)을 보고 난 후 바깥채로 나오자, 신부의 아버지가 맞이하며 말했다.

“내 딸은 요행히 용모와 신체에 병폐가 없습니다만 사돈어른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그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부의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마음에 만족스럽지 못한 게 있으신지요?”

이 물음에는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신부는 아름답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또 말버릇이 튀어 나왔다.

“좆같이!”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아연실색을 했다. 그는 너무 부끄러워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고자 데리고 온 종을 불러 말했다.

“우리 말을 끌고 오너라. 좆같이!”

그리고 주인에게 작별 인사도 했다.

“저는 갑니다. 좆같이!”

그걸 보고 사람들이 모두 웃더라.

▶동뢰연(同牢宴) :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가 서로 절을 하는 교배(交拜)의 예를 마치고 마주 앉아 술잔을 나누는 의례

 

 

☞어떤 사람이 처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 계집종 하나가 학질을 앓게 되어 장모가 몹시 걱정하였다. 그러자 사위가 말했다.

“이 병은 치료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장모가 그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자 사위가 대답했다.

“조용하고 외진 곳에서 치료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계집종을 뜰로 불러다가, 말뚝 네 개를 땅에 꽂은 다음 하늘을 향해 계집종을 눕히고 말뚝에 사지를 묶었다. 그리고 마음껏 그 계집종을 겁탈했다. 계집종은 부끄러워 죽고자 했는데, 그러는 동안 학질도 떨어졌다. 처가에서는 그 사연을 모르고, 그저 사위가 신비로운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후 장모도 학질을 앓게 되었다. 장모가 사위에게 부탁했다.

“자네가 지난번에 계집종의 병을 치료했으니 그 방도를 내게도 시험하게.”

“이것은 제가 알지 못하오니, 마땅히 장인어른께 물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중년에 아내를 잃은 한 선비가 있었다. 그 이웃에는 한 과부가 절개를 지키며 홀로 살았는데, 집이 매우 부유하였다. 이웃 사람이 선비를 위해 그 과부에게 매파를 보내 중매도 해봤지만, 과부는 전혀 따를 뜻이 없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선비는 이웃 사람과 공모하여 이른 새벽에 과부의 집으로 갔다. 선비는 문밖에 숨어 있고, 이웃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 과부를 불렀다.

“오늘 내가 밭을 갈아야 하니 소를 빌려주시겠소?”

과부는 아직 일어나지 않아 자던 방에서 대답하였다.

“우리 집도 오늘 밭을 갈아야 하니 빌려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은 곧바로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고 나와 문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는 내가 지금 끌고 갑니다. 밭을 갈고 나면 돌려드리리다.”

과부는 급히 옷을 추슬러 입고 문 밖으로 나와 이웃 사람을 쫓아갔다. 그사이 선비는 몰래 과부의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과부가 쫓아가서 소의 고삐를 빼앗으려 했지만, 이웃 사람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처럼 서로 다투는데,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모여들었다. 과부는 마침내 소를 빼앗아 돌아왔다. 그러나 이웃 사람은 과부의 집까지 따라오면서 욕을 하고 야유를 보냈다. 그것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왔는데, 그 수가 과부의 집 문 앞을 메울 지경이었다.

과부가 외양간에 소를 매고, 이웃 사람과 다투고 있을 때였다. 선비는 알몸에 이불만 두르고 앉아 창문을 열고 화를 내며 말했다.

“누가 억지로 농사짓는 남의 소를 빼앗아가려 한단 말이냐?”

이웃 사람은 놀라 선비를 올려다보고 황급히 절을 하며 말했다.

“소인은 생원님께서 계신 줄 전혀 몰랐습니다. 감히 이렇게 시끄럽게 하였사오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문밖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렸다.

“저 과부는 거짓으로 수절을 한다고 말했구먼!”

“아무개 생원과 간통을 하였구먼!”

그리고는 한껏 떠들며 돌아갔다.

과부는 선비가 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몰라 물었다.

“생원님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에 오셨는지요?”

선비는 웃으며 말했다.

“내 자네와 지난밤에 동침을 했는데, 자네는 어찌하여 모르시나?”

과부는 송사를 걸어 다투고자 했지만 이미 이웃 사람들이 모두 보았으니, 어떻게 그 애매함을 밝힐 수 있겠는가?

오랜 궁리 끝에 과부가 말했다.

“일이 이미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또한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선비와 함께 살았다.

 

 

 

참고 및 인용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