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39 - 거면록(祛眠錄)

從心所欲 2020. 9. 5. 11:33

‘잠을 쫓아내는 글’이라는「거면록(祛眠錄)」은 20세기 전후에 이야기를 수집하여 엮은 것으로 추정되는 패설집이다. 전하는 「거면록」은 총 2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마지막 것은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것이 있어 원본이 아닌 필사본일 가능성이 높다.

「거면록」은 수록된 이야기 대부분이 소설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로 인하여 문학적으로는 패설의 소설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가치를 갖는 책이라 한다.

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총 3편으로 그 중 두 편은 다른 패설집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이고 <환옥우(環屋隅)> 는 기존에 널리 퍼져있던 이야기라 한다.

 

 

☞벽승양물(劈僧陽物)

 

한 선비가 집이 가난한데 말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까닭에 오랫동안 바깥에서 지냈다.

▶말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 : 원문은 설경(舌耕)인데, ‘혀로 경작한다’는 뜻이 재미있다.

 

그의 아내는 이웃에 사는 상인이 소금을 팔며 사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집으로 돌아오기를 권유하였다.

“남자가 오랫동안 가정을 돌보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며 많은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집으로 돌아오셔서 이웃에 사는 상인과 함께 소금 장수를 하시지요.”

선비는 그날로 집에 돌아와 소금 석 되를 짊어지고 상인을 따라 장사에 나섰다.

상인이 크게.

“소금 사시오!”

라고 외치면, 선비는 그 뒤를 이어서,

“나도!”

라고 따라 외쳤다.

이러한 까닭에 반나절 동안 상인은 지고 온 소금의 거의 다 팔았지만, 선비는 한 줌도 팔지 못했다. 그래서 선비가 말했다.

“우리가 함께 다니면 둘 다 이롭지 않으니 각자 다니는 것만 못하네. 나는 어느 곳으로 가야 소금을 팔 수 있겠나?”

그러자 상인은 자기가 어제 가서 소금을 팔았던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으로나 가보시오.”

선비는 그의 말만 믿고, 가서 종일토록 큰 소리로 “소금 사려”를 외치고 다녔다. 하지만 소금을 사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날도 조금 저물고 말았다.

선비가 소금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은 좁고 수풀은 우거진 곳에 촛불이 밝게 비치는 초가가 보였다. 선비가 문틈으로 엿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누워 잠을 자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방 한 귀퉁이에는 음식을 마련해놓고 보자기로 덮어놓았다. 선비는 몰래 그 집으로 들어가 차려놓은 음식을 모두 먹어버렸다.

이때 홀연 문밖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선비가 급히 촛불을 끄고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어떤 중이 승복을 벗고 바랑을 집 한 귀퉁이에 내려놓고는 곧바로 방으로 들어오려 했다. 그러자 선비는 거짓으로 여자의 목소리를 내어 은근히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계시므로 함께 자는 게 불가하옵니다.”

그러자 중이 말했다.

“그렇다면 입이나 한번 맞추고 가면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좋습니다.”

선비는 이에 바지춤을 풀고 엉덩이를 창틈에다 바싹 붙였다. 중은 밖에서 그곳에 입을 대더니 이내 말했다.

“냄새가 좋지 않구나.”

“어찌 냄새가 좋지 않다고 하십니까? 내 입은 매우 깨끗하기만 한데...”

그렇게 말하고 선비는 다시 말했다.

“당신의 양물이 보고 싶으니 모름지기 창틈으로 그것을 내밀어주십시오.”

중은 발기한 양물을 창틈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선비는 그것을 세게 잡고, 지니고 있던 칼을 꺼내 양물을 쪼개버렸다. 이에 중은 크게 한 소리를 지르고는 승복과 바랑도 모두 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

선비는 다시 촛불을 켜고 그 중이 버리고 간 승복과 바랑을 거두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인이 비로소 잠에서 깨어 바라보니 어떠한 장부가 방 안에 앉아 있는데,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일어서며 자세히 살펴보니 주변에는 중이 입던 옷과 바랑이 놓여 있었다. 여인은 이에 정신을 진정치 못하고 그저 벌벌 떨기만 했다.

선비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네 품행이 아름답지 못함을 아노라. 너는 어느 집 아낙이냐? 지아비를 잃은 집이더냐? 내일은 내 마땅히 관아에 알리고, 또한 네 집과 친족들에게도 알려 죄를 묻겠노라.”

그 여인은 계속 번거로이 사죄하며 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르신께서 만약 제 친족에게 알린다면 저는 마땅히 쫓겨날 것이며, 저를 죽인다 할지라도 여지가 없게 됩니다. 어르신께서 그것만은 참아주신다면 저 또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백여 석이나 되는 가장문권(家庄文券)을 주며 애걸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여인의 간청에 못 이기는 척하며 그 문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가장문권(家庄文券) : 개인 소유의 논밭에 대한 문권

 

며칠이 지나, 선비는 그 중이 있는 곳을 알아보고자 승복과 바랑을 가지고 가까운 산에 있는 사찰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랫도리에 병이 든 중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는 깊은 협곡 작은 암자에 갔을 때였다. 한 중이 문밖으로 나오더니 손님 맞기를 거부하며 말했다.

“손님께서 어디서 오신지는 알 수 없으나, 저희 사부님께서 바야흐로 병이 들어 계시기에 손님을 맞을 수 없답니다.”

“네 사부의 병이 무엇이더냐?”

“모르겠사옵니다.”

“너는 속히 들어가서 네 사부에게 말하거라. 내가 의원이라고.”

중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나와 말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선비가 따라 들어가니 중의 얼굴색은 창백하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선비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가 아프십니까?”

“양물에 종기가 하나 났는데, 이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보여주시지요.”

중이 바지춤을 말아 내리고 그것을 보였는데, 칼에 베인 상처가 분명했다. 이를 본 선비가 말했다.

“그날 밤에 크게 쪼개놓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작게 쪼개진 줄은 몰랐네.”

그러고는 가지고 간 중의 옷과 바랑을 내놓으면서 말했다.

“이게 누구의 행장인가?”

중은 깜짝 놀라 얼굴빛을 잃고 땅에 엎드려 죄를 빌었다. 선비가 꾸짖으며 말했다.

“너는 자비란 명목으로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으면서 감히 여염집 아낙을 간음하였으니, 네 죄는 마땅히 죽음이라. 네 죄를 엄히 다스려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밖에 없도다.”

이윽고 선비가 일어서자, 중은 선비를 붙들며 말했다.

“바라옵건데 양반님은 날 살려주십시오. 그러면 내 마땅히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오십 석이나 되는 토지 문권을 꺼내 선비에게 주었다. 선비는 처음에는 그를 꾸짖었으나 나중에는 그 문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마침내 선비는 가난함이 바뀌어 도리어 부자가 되었다.

이웃에 사는 상인은 선비가 소금 석 되를 팔아 부자가 된 것으로 알고 와서 그 연유를 물었다.

“양반께서는 어떤 수단이 있기에 소금 석 되를 팔아 이처럼 부자가 되시었소? 나는 장사를 한 지 십 년이 되었지만 한 푼도 모은 것이 없으니, 바라건대 그 방법을 가르쳐주시오.”

“중의 양물을 쪼개놓으면 부자가 될 것일세.”

“양반께서 저를 속이심이 심하십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자네를 속이겠나? 이것이 방법일세.”

상인은 그 말을 믿고 이에 작은 칼을 매우 예리하게 만들고는 뒷산에 있는 절로 올라갔다. 상인은 산 아래에서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때마침 산에 거주하는 중이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상인은 이에 그 중을 불렀다.

“긴히 볼 일이 있으니 와보시오.”

중이 오자, 상인은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중의 양물을 쪼개놓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더군. 그러니 나도 네 양물을 쪼개놓을 것이다. 제발 부탁하자.”

그러자 중은 화가 나서 그를 때려눕혔다. 상인은 중에게 얻어맞고 돌아와 선비를 원망하였다. 이에 선비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수단이 사리에 어둡고 졸렬했기에 이처럼 낭패를 본 것이네. 나를 탓하지는 말게.”

 

[최재순 <감나무가 있는 풍경>,  75 x 162cm]

 

☞오천제수복(誤穿弟嫂服)

어떤 형제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방이 두 개뿐이어서, 안방에서는 두 부인네가 잠을 자고, 바깥채에서는 형제가 침구를 맞대고 잠을 잤다. 때문에 부부가 함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는 형수가 그의 남편에게 말했다.

“아우네 부부가 오랫동안 잠자리를 갖지 못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마땅히 동서를 바깥채에 보내 함께 자게 합시다. 그러니 당신은 이웃집에 가서 자고 오시지요.”

형은 허락하고 나가 이웃집에서 놀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형은 그의 아내와 한 약속을 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아우는 그의 아내와 함께 누워 있다가 형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형을 불렀다. 그러자 형이 말했다.

“나는 여기에 누울 것이니, 너는 잔말 말거라. 잠자리를 바꾸어 자자꾸나.”

아우는 또다시 형에게 말했다.

“안사람이 이 방에 있습니다.”

형은 이에 급히 일어나 앉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내와의 약속을 잊어버렸구나.”

그리고는 아우에게 일러 말했다.

“너는 큰 소리를 내지 말거라. 제수가 깰까 두렵구나.”

그리고는 급히 옷을 입고 문밖으로 나와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아우는 그의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어찌 이다지 곤하게 자오? 방금 형님이 오셨다가 당신이 있는 까닭에 다시 이웃집으로 가시었소.”

그 아내는 매우 겸연쩍어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일어나서 옷을 찾았다. 그러나 다만 남자 바지가 있을 뿐이고, 자신의 속곳은 아득히 간 곳이 없었다. 이에 놀라 남편에게 물었다.

“저기에 남자 바지는 있으나 내 속곳의 행방은 알 수 없으니, 혹 아주버님께서 바꿔 입고 나가신 것이 아닐까요?”

아우가 보니 그것은 과연 형의 바지였다. 그래서 그 바지를 싸 가지고 이웃집으로 가 문밖에서 형을 불렀다.

형은 괴로워하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왔느냐? 나는 여기에서 잘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제수씨와 함께 잠을 자거라.”

“그게 아닙니다. 형님의 바지는 여기에 있는데, 안사람의 속곳은 간 곳이 없으니 형님께서 혹시 바지를 바꿔 입지 않으셨는지요?”

형이 갑자기 그것을 깨달으며 말했다.

“네 말에 틀림이 없을 게다. 아까 올 때 바지 아래가 트여 있어서 바람이 매섭도록 차갑게 들어오더니 지금에야 여자의 속속이었음을 알겠구나.”

그리고는 옷을 벗어 아우에게 주었다.

 

 

☞환옥우(環屋隅)

경상도 상주에 김씨 성을 가진 장사치가 있었다. 그는 아들이 넷이나 되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다른 방을 줄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부부와 네 아들은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잤다.

네 아들들은 점차 자라면서 근심 또한 생겨났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에 가까이 가면 반드시 자식이 생겨나고, 동생이 생겨 부담이 느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서로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네 명의 형제는 밤마다 감독하며 그것을 막았다.

어느 날, 장사치가 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십여 일 만에 돌아왔다. 부부간의 사랑하는 마음도 간절하였다.

한밤중이 되자, 부부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틈을 타서 잠자리를 갖고자 했다. 그러나 남편은 동쪽에 있고, 아내는 서쪽에 있었으며 중간에는 네 아이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또 방이 어두워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에 부부는 서로를 찾아 나섰다. 서로 부르고 서로 대답하기를 반복했지만 둘은 만나지 못했다. 남편이 남쪽에 있으면 아내는 북쪽에 가 있고, 남편이 동쪽에 있으면 아내는 서쪽에 가 있었다. 이렇게 방 네 귀퉁이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이내 벽에 붙어 무릎으로 기며 주변을 돌다가 잘못하여 셋째 놈의 다리를 밟고 말았다. 그러자 셋째 놈이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아파요.”

둘째 놈이 이어서 말했다.

“너는 말을 마라. 너는 아버님이 어머님을 찾아 벽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아느냐?”

큰놈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잠을 자지 않고 아버님이 벽을 몇 번 돌았는지를 세고 있느냐? 지금 도는 것이 다섯 바퀴째라는 것을 누가 모르느냐?”

부모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잤다.

 

[최재순화백 <섬이야기>,  43 x 107cm]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