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옛날이야기 36 - 각수록(覺睡錄) 2

從心所欲 2020. 9. 2. 07:20

☞음낭무입처(陰囊無入處)

호서 지방의 선비 아무개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두 딸이 모두 시집갈 나이가 되자, 선비는 정(鄭) 아무개와 정(丁) 아무개 집에서 사위를 맞이하여 같은 날에 초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이웃에는 박도령이란 자가 있었는데, 얼굴이 잘 생기고 글도 잘 했다. 그는 항상 두 딸을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두 딸은 전혀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다.

초례일이 되자 예식을 행하는 것을 보려고 박도령도 왔다. 두 딸은 곱게 화장을 하고 화려하게 옷을 입고 두 신랑을 맞이하여 말했다.

“지아비는 여자의 근본이옵니다. 만약 지아비가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아내 된 자는 종신토록 고생을 할 것입니다. 제가 아직 초례를 치르기 전에 먼저 장부의 재능을 시험해보고자 하오니, 장부께서는 모름지기 갖고 계신 재능으로 가사 한 소절을 지어주십시오. 그러면 첩이 그 우열을 판별해보겠습니다.”

두 신랑은 곧바로 응답하였다.

“좋소!”

정(鄭) 신랑이 먼저 대구를 지었다.

“畵雙龍於針身兮 바늘 몸통에 쌍룡을 그릴진저.

恨眼鼻之難摸 눈과 코를 본뜨기 어려움이 한스럽구나!“

정(丁) 신랑도 이어서 말했다.

“挾泰山而超海兮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을진저.

奈崑崙之礙脚 곤륜산이 방해가 되는 것은 어찌할까!“

▶畵雙龍於針身兮 :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나라의 이백(李白)이 어렸을 때 공부를 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가에서 절굿공이를 가는 노파를 보고 그 연유를 묻자, 노파가 가는 바늘[細針]‘을 만든다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그 말에 분발하여 마침내 되돌아가 공부를 마쳤다는 ’마저작침(磨杵作針)‘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즉 자신은 절굿공이로 바늘을 만들뿐만 아니라, 그 바늘의 표면에 용 두 마리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 이백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挾泰山而超海兮 : 「맹자」에 양혜왕이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를 묻자, 맹자는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하여 나뭇가지 꺾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즉, 자신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자 박도령이 웃으면서 두 신랑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내 양물이 네 음문에 들어가니, 불알은 들어갈 곳이 없어라’라고 왜 말하지 않소?”

두 딸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양물이 음문에 들어오는 것, 이것이 부부의 시작이라 할 것입니다. 태산을 끼고 바다를 건넌다든지, 바늘 몸통에 쌍룡을 그리는 것은 모두 사람이 능히 할 바가 아닙니다.”

마침내 두 신랑을 물리치고, 두 딸은 모두 박도령에게 시집을 갔다.

 

 

☞해협양인(蟹挾兩人)

촌아낙이 밭에 들밥을 내가다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콩밭 두둑에 앉아 오줌을 누고 있었다. 때마침 게가 그 아래 엎드려 있다가 다리를 펴서 촌아낙의 음문을 깨물었다. 촌아낙은 놀라 오른손으로는 들밥이 든 광주리를 부여잡고, 왼손으로는 음문을 더듬으며 게를 잡았다. 그러나 게는 더 세게 깨물며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촌아낙은 그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노승(老僧)이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촌아낙은 급히 그를 불렀다.

“바라건대 대사님 이쪽으로 와보세요.”

노승은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요망한 계집이 감히 대낮 큰길가에서 음란한 마음을 품고 나를 밭으로 끌어들이는데, 내가 어찌 즐겨 따르겠느냐?”

“아닙니다. 내가 지금 아파 죽을 지경이니 바라건대 대사님은 나를 좀 구해주시오.”

노승은 비로소 그쪽으로 향해 가며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촌아낙이 대답하였다.

“바라건대 내 음문을 보아주세요.”

노승은 또다시 화를 내며 말했다.

“예를 아는 장부가 어찌 감히 부인의 음문을 본단 말이냐?”

“마음에 찔릴 것 없습니다. 뭔지 모를 어떤 것이 지금 내 음문을 깨물고 있는데, 그 아픔을 차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제발 대사님이 치료해주세요!”

노승이 머리를 숙이고 목을 길게 늘여 보았더니 과연 게가 촌아낙의 음문에 매달려 있었다. 노승은 그것을 잡으려고 얼굴을 아낙의 음문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러자 게는 또다른 다리 하나를 펴서 노승의 입술을 깨물었다.

노승이 놀라 급히 잡아 빼자, 촌아낙은 소리를 질렀다.

“아파요, 아파!”

그러면서 촌아낙도 다시 급하게 잡아당겼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노승이 소리를 질렀다.

“아파, 아프다고!”

노승과 촌아낙은 한 번은 앉았다 한 번은 엎드렸다 하며 서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자, 게는 깨물고 있는 것이 위태로울뿐더러 힘으로 능히 지탱할 수가 없어, 결국 두 다리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촌아낙과 노승은 겨우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있었다.

 

[최재순화백 <매화나무가 있는 풍경>]

 

☞습사부족(習事付足)

어떤 선비가 처제를 데리고 살았다. 처제의 나이가 비녀를 꽂을 만하고 머리는 길어 땅에 드리울 때가 되자, 얼굴은 부용(芙蓉)처럼 예뻐졌다.

▶비녀를 꽂을 만하고 : 『예기(禮記)』에 ‘여자 나이 십오 세가 되면 비녀를 꽂는다(十有五年而계笄)’라는 구절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열다섯 살을 뜻함.

 

선비가 그녀를 사모하다가 하루는 속여 말했다.

“처제도 오래지 않아 시집을 가겠지. 시집을 가면 반드시 부부가 잠자리를 같이해야 하는데, 잠자리를 같이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지. 처음에는 그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잠자리 방법을 미리 익혀두면 그 고통을 다소간 면할 수 있는데, 내가 그것을 가르쳐 줄게.”

그러고는 처제를 돌아눕게 하였다. 처녀는 아직 시집가지 않은 여자였기에 그것이 음란한 짓거리인 줄 알지 못했다. 그저 선비가 하는 말을 따를 뿐이었다. 선비는 마음대로 처제를 간음하였다.

이후, 처제는 시집을 가게 되었고, 부부간에 운우의 즐거움도 나누었다. 남편이 말했다.

“인생의 즐거움 가운데 이 짓보다 나은 것이 없구려!”

“만약 형부가 이 일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어찌 당신의 즐거움이 여기에까지 이르렀겠어요?”

남편은 괴이해하며 물었다.

“가르쳤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일이오?”

“형부는 내가 고초를 겪을까 걱정하여 나를 돌아눕게 하고는 이 일을 미리 연습시켰지요. 그래서 음문이 커졌던 것이에요.”

남편은 선비의 추악한 행위에 분개하며 즉시 그 일을 따지려다가 다시 생각했다.

‘따지는 일은 그의 아내를 간음하여 욕보이는 것만 못하지!’

이에 남편은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올라간 틈을 타서 그 집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처형이 나와 그를 맞이하는데, 이때 처형은 임신한 지 한 달이 지나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동서가 상경할 때 제게 ‘내가 아내의 뱃속에 아이를 만들었는데, 과저 볼 날이 매우 급하기에 단지 몸뚱이만 만들고 그 다리는 만들지 못했네. 바라건대 자네가 나를 대신하여 거기에 다리를 붙여주게.’라고 말씀하더군요. 저는 부득이 가르침을 받들어 행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무리 과거를 볼 날이 급했다 해도 어찌 자식을 만들면서 다리는 만들지 않았을까?”

이에 남편은 처형을 돌아눕게 하여 간음하고 돌아왔다.

이후, 처형은 아이를 낳았고, 선비도 서울에서 돌아왔다. 선비는 자식을 매우 사랑하였다. 그런 모습을 본 처형이 말했다.

“만약 그때 제부가 다리를 붙여주지 않았다면 반드시 다리 없는 자식을 낳았겠지요?”

선비는 괴히 여기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당신이 한 일도 알지 못하나요?”

“알지 못하겠소.”

“당신이 상경한 뒤에 제부가 와서는 ‘당신이 상경할 때 제부에게 당신이 과거를 보러 간다고 하면서, 바야흐로 아이를 만들어주었는데 다리를 붙이지 못했으니 제부에게 대신 다리를 붙여주라 하였다!’고 말했다면서 나를 간음하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온전한 신체를 가진 아이를 낳을 수 있었어요. 저는 이 때문에 매우 즐겁답니다.”

선비는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 이 무례한 놈을 반드시 죽이리라!”

그리고는 큰 도끼를 지니고 동서의 집으로 급히 와서, 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어전(御前)의 청룡기냐? 진두(陳頭)의 대장기냐? 다리를 붙인다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의 동서도 나와 성난 눈으로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해동(海東)의 푸른 매[蒼鷹]냐? 새상(塞上)의 흰 매[白鷹]냐? 일을 익힌다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러자 선비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피차 같은 것일세.”

마침내 두 사람은 처음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새상(塞上) : 국경의 변방 지역

 

 

☞부이접형(附耳接型)

가죽신을 아주 잘 만드는 갖바치가 있었다. 그가 가죽을 제작하고, 실을 뽑아내고, 꿰매고 자르고, 칠하고 정리한 후, 규격화된 틀에 맞춰 주름진 것은 빳빳하게 펴고, 울퉁불퉁한 것은 반듯하게 하면 추한 것도 아름답게 변했다.

그의 이웃에는 비녀를 꽂을 만큼 나이가 찬 처녀가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마마 자국이 가득하여 모양새가 몹시 추악하였다. 처녀가 마침 갖바치의 집에 왔다가 그 기술을 보고 부러워하며 물었다.

“추악한 가죽신도 저 틀에 맞추고 나면 변하여 저렇게 고운 신발이 되네요. 그런데 어째서 추악한 얼굴을 고치는 틀은 없나요?”

“있지. 모양은 송이버섯 같은데, 여자에 한번 붙이면 추악한 모습도 아름다운 용모로 변한단다. 너도 시험해볼래?”“그게 어디 있는데요?”

“내가 가지고 있지.”

그리고는 자신의 양물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처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시험해볼래요.”

이에 갖바치는 처녀를 돌아눕게 하고는 간음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처녀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얼굴이 고와질 게다.”

처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내내 거울을 마주하여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괴이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제 갖바치 아저씨가 나를 틀에 맞추고는 ‘내일 아침이 되기도 전에 얼굴이 고와질 게다’라고 했거든요. 얼마나 고와졌나 보려고 한참 동안이나 거울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지만 옛 모습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하네요.”

아버지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자 처녀는 자신의 음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갖바치 아저씨가 송이버섯처럼 생긴 물건을 가지고와서 여기에다 맞추었다니까요!”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추악한 놈이 내 딸을 더럽혔구나. 내 반드시 그놈의 처를 간음하고 말리라.”

처녀의 아버지는 갖바치가 없는 틈을 엿보아 그의 집을 찾아갔다. 때마침 갖바치의 부인은 임신한 상태였다. 처녀의 아버지는 갖바치의 아내에게 말했다.

“자네가 임신했다는 말은 들었네.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귀가 붙어 있지 않기에 귀를 붙여주러 특별히 내가 왔네.”

“임신은 했지요. 그러나 귀가 붙어 있는지 붙어 있지 않은지를 당신이 어떻게 아세요?”

“갖바치의 아내는 두 명의 지아비를 두지 않으면 반드시 귀가 없는 아이를 낳는다네. 이것은 갖바치가 비록 아이의 몸뚱이는 잘 만들지만, 귀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일세. 나는 자네가 두 지아비를 두지 않았음을 아네. 그러한 이유로 그 뱃속에 있는 아이 역시 반드시 귀가 없음을 안 것이네.”

“귀가 없는 자식을 낳느니 차라리 두 번째 지아비를 두어 온전한 아이를 낳는 것이 낫지요.”

마침내 갖바치의 아내가 돌아누웠다. 처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간음하고 돌아왔다.

갖바치가 돌아오자, 그의 부인은 지난 사연을 말했다. 그러자 갖바치는 화를 내며 몽둥이를 집어 들고 달려와서는 처녀의 아버지를 꾸짖었다.

“네가 감히 귀를 붙인다는 말로 남의 아내를 간음하니, 이 무슨 짓이냐?”

처녀의 아버지도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감히 틀에 맞춘다는 말로 내 딸을 더럽혔으니, 그것은 무슨 짓이냐?”

그러자 갖바치는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과실이 있으니 차라리 용허하는 것만 못하겠소.”

그러면서 갖바치는 돌아갔다.

 

 

☞반남무안(潘南務安)

서른 살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한 추녀가 있었다. 추녀는 봄날 햇빛을 받으면서 광주리를 끼고 교외로 나갔다. 그리고는 얼굴까지 치마를 뒤집어쓰고 음문을 드러낸 채 누웠다. 지나가는 사람이 마음껏 자신을 간음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반나절이 지나도록 돌아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해가 서쪽으로 점점 기울어갈 무렵이었다. 꼬불꼬불하고 엉클어진 수염을 가진 더벅머리 노총각이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직 음문의 맛을 보지 못했는데, 이는 하늘이 내려주신 은혜로다.”

그리고는 달려들어 추녀를 간음하고 몸을 돌려 달아나버렸다. 추녀는 그를 붙잡아 함께 살려고 쫓아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추녀는 이로 인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쌍둥이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아비의 성을 알 수가 없었다. 추녀는 결국 관아에 가서 ‘성(姓)을 내려주십사’ 애걸하였다.

“첩이 어느 밭에서 한 장부를 만나 서로 교합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부는 자신의 성도 말해주지 않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자식은 낳았지만 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사또께서는 제 자식들에게 성을 내려주십시오.”

태수가 아전에게 그 밭을 살펴보게 하니, 밭에 부여된 세금이 열여덟 복(卜)이었다.

▶복(卜) : 고려와 조선 시대에, 수확량을 기준으로 토지의 등급을 매기고 면적을 측량하여 그 결과에 따라 조세의 액수를 정하던 결부법(結負法) 제도에서 계량의 기본단위는 파(把), 속(束), 부(負), 결(結)이었다. 곡식 단 한 줌을 1파, 10파를 1속, 10속을 1부, 100부를 1결이라 하였는데 부(負)를 복(卜)이라고도 하였다. 파(把), 속(束), 부(負) 또는 복(卜), 결(結)은 우리말 줌, 뭇, 짐, 멱의 한자표시이다.

 

이에 사또가 말했다.

“열여덟 복[十八卜]을 합하면 박(朴)자가 되니, 성은 박씨로 하는 것이 옳겠구나. 성을 정했으니, 부득이 본향도 내려주어야겠구나.”

그리고는 추녀에게 물었다.

“네가 그 장부와 교합할 때의 정경이 어떠했느냐?”

“처음에는 음문이 발랑발랑【우리말에 스스로 뛰는 것을 발랑발랑(潘南潘南)이라 한다】하더니 나중에는 무안【우리말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는 것을 무안(無顔)이라 한다】하더군요.”

태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처음에 태어난 아이는 반남 박씨로 하고, 나중에 태어난 아이는 무안 박씨로 삼는 것이 옳겠구나.”

반남(潘南) 박씨와 무안(務安) 박씨는 사실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최재순 <겨울>, 70 x 130cm]

 

☞구열양물(口劣陽物)

영남 선비와 서울 선비가 함께 길을 가게 되었는데, 서울 선비가 영남 선비를 헐뜯으며 말했다.

“영남 사람들은 모두 더럽고 무례하여 이른바 사대부란 자들조차 서울의 평민만 못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들으니 영남 풍속에는 비록 사대부라 하더라도 상중(喪中)에 들어 최복(衰服)을 입고 있으면서 부부가 한방에서 지낸다 하더군요. 예(禮)에서 벗어남이 어찌 이처럼 심하단 말이오?”

▶최복(衰服) : 부모(父母), 조부모(祖父母) 상(喪) 때에 상제가 겉에 입는 상복(喪服)

 

“집이 가난하여 다른 방이 없으니, 비록 상중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이 부부가 한방에서 지내는 겁니다. 그나저나 서울 사람들은 상중에도 가끔 고기를 먹는다죠?”

“늙고 병든 사람은 고기가 아니면 배가 부르지 않으니 간혹 먹는 사람도 있지요.”

“그렇다면 서울 사람들의 입은 영남 사람들의 양물만도 못하네요. 영남 사람들은 비록 부부가 한방에서 같이 지내더라도, 최복을 입고 있으면 절대로 합궁은 하지 않소. 또한 늙고 병들었다 하더라도 고기는 먹지 않소. 어찌 서울의 경망한 자들이 감히 헐뜯을 수가 있겠소?”

서울 선비는 부끄러워하며 응대하지 못했다.

 

 

☞후공소과(後孔小科)

영남에서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중에 앞길을 꿰뚫어 보는 점쟁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점을 쳤다.

“당신이 오늘 과천(果川) 김가네 집에서 자면서, 그 집 부인을 간음하면 반드시 이번 과거에 으뜸으로 오를 것이외다.”

점쟁이의 말을 들은 후, 그는 실제로 과천에 이르러 한 집에 들게 되었다. 집주인은 그 고을 아전 김 아무개였고, 그의 부인은 젊고 예뻤다.

그는 점쟁이의 점이 신통함을 알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집주인이 그의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은 당직이라 관아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구려. 그러니 당신이 손님을 잘 대접하시구려.”

그리고 집주인은 나가버렸다.

영남 선비는 밤이 깊기만을 기다렸다가 곧바로 여인이 자는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그 부인을 붙잡고 사정하였다. 부인이 처음에는 완강하게 뿌리쳤지만, 나중에는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말했다.

“앞 구멍은 주인이 있으니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뒷구멍은 주인이 없으니 허락하지요.”

“뒷구멍은 불미스런 곳이오. 나는 앞 구멍을 원하오.”

“그것은 불가합니다. 죽어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영남 선비는 어쩔 수 없이 뒷구멍으로 간음하였다. 그리고 그는 집주인이 알까 두려워 새벽에 문을 나섰다.

집주인은 일찍이 돌아와서 그의 아내에게 물었다.

“손님 접대는 잘하였소?”

부인은 분노를 삭이며 대답하였다.

“어젯밤에 그 사람이 음탕한 마음으로 나를 몹시 다급하게 위협하더군요. 나는 당신이 있는 까닭에 앞 구멍은 허락하지 않고 뒷구멍을 하락하겠다고 했지요. 그래도 그 사람은 듣지 않고 앞 구멍으로 간음하려고 하더군요. 나는 온 힘을 다해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불가함을 알았던지 마침내 뒷구멍으로 간음하고 나가버렸답니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몹시 한탄하며 말했다.

“과거보는 선비는 보통 사람처럼 대접할 수 없소. 그가 만약 대과(大科)에 오른다면 우리가 얻는 것 또한 반드시 많지 않겠소? 그의 성품을 어긋나게 하지 말고 그의 바람대로 따릅시다. 내가 쫓아가서 그를 데려올 것이니, 당신은 인색하게 굴지 말고 앞 구멍을 허락해주구려.”

집주인이 문을 나서서 멀리 바라보니, 영남 선비는 이미 남태령을 지나고 있었다.

“바라건대 나그네는 잠시 멈추시오!”

영남 선비는 집주인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내가 제 아내를 간음했으니 화가 나서 쫓아오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히 달아났다. 그러자 집주인은 혼자 말했다.

“저놈이 저렇게 경망한데 어찌 대과에 합격할 것을 기대하리오! 운이 좋으면 소과(小科)에나 붙겠구먼!”

영남 선비는 과연 소과에만 합격하였다.

 

 

 

번역본 출처 : 조선후기 성소화선집(김준형 옮김, 2010,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