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진재 김윤겸 - 산수화

從心所欲 2020. 10. 23. 19:11

조선시대에 금강산을 그린 그림은 많지만, 지리산을 그린 그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김윤겸이 지리산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윤겸필지리전면도(金允謙筆智異全面圖)이다.

 

[김윤겸필지리전면도(金允謙筆智異全面圖), 지본담채, 33.2 x 38.2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은 이렇다.

 

【김윤겸(字 克讓, 號 眞宰)는 사대부 화가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서자로,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다. 그는 금강산, 한양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명승을 여행하면서 점차 진경산수화에 몰두하였는데, 정선과 그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갖추었다. 주로 바다, 바위와 물이 있는 계곡을 소재로 하고, 경물을 대담하게 생략하는 근대적 화면 구성이 그의 진경산수화의 특징이다. 이 그림은 왼쪽 윗부분에 ‘금대암에서 마주 본 지리산 전경’이라고 적혀 있어서 지리산 제일의 수행처인 금대암에서 조망한 지리산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상을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여 첩첩이 이어지는 지리산의 산봉우리를 시원스럽고 독특한 구도로 담아냈다. 산봉우리의 윤곽선은 엷은 먹선으로 그렸으며, 그 안을 엷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산봉우리들 간의 사이는 그대로 남겨두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게 하였는데, 봉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형성하는 효과를 냈다. 수묵과 담채의 산뜻한 표현과 산주름에 붓질을 중복하여 입체감을 가미한 표현으로 수채화를 연상하게 한다.】

 

금대암은 해인사(海印寺)의 말사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읍에 있는 암자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행호조사(行乎祖師)가 656년에 창건하였으나 6․25때 소실되었다. 금대암은 지리산의 북쪽인 금대산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림은 북쪽에서 남쪽의 지리산을 바라보고 그린 것이다.

 

[김윤겸 <백악산도(白岳山)>, 지본수묵, 28.6 x 51.9cm, 1763년,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과 청와대 뒤쪽에 자리한 백악산(白岳山)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옛 한양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조선의 한양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이다. 백악산은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北岳)이라 칭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등으로도 불렸다.

겸재 정선이 그린 백악산은 백악만 조명했지만 김윤겸은 백악산의 양쪽에 날개를 달아 산맥처럼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그렸다. 그로 인해 생긴 위쪽의 넓은 여백은 글씨로 채워 조형미를 이루었다.

 

[김윤겸 <동산계정도(東山溪亭圖)>, 1748년, 모시에 담채, 165.7 x 69.9 cm, 간송미술관]

 

전하는 김윤겸의 진경산수화 가운데 연대가 밝혀진 가장 빠른 작품이다. ‘무진(戊辰) 추(秋)’라는 관지를 통하여 김윤겸이 37세 때인 1748년 가을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제에 쓰여진 ‘신평천(申平川)’을 근거로, 1703년에 영의정에 오르고 평천군(平川君)에 봉하여진 신완(申琓, 1646 ~ 1707)이란 인물이 우이동계곡에 정자를 짓고 지내는 모습을 그린 것이며 먼 산의 오른쪽의 귀가 달린 것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인수봉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화제에 사람이름을 불러다 썼다는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신평천의 동쪽 산 계곡에 있는 정자‘ 풍경을 그렸다는 쪽에 가까울 듯싶다. 다만 신평천이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신평천이라는 하천은 경북 의성, 전남 순천과 고성, 전북 김제에 있다.

 

[김윤겸 <진주담(眞珠潭)> 선면수묵, 24.8 × 32.1cm, 국립중앙박물관]

 

진주담은 만폭동 팔담의 백미로 알려진 곳이다. 좌우 암벽사이로 흐르는 폭포를 묘사하고 좌측에 몇 개의 수목과 그 아래 폭포를 감상하는 인물을 그렸는데 그 뒤로 만물상과 금강산의 모습이 보인다. 관지의 ‘병윤사(丙閏寫)’는 병자년(丙子年) 윤월(閏月)’로 해석되어 1756년 윤 6월에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겸 <묘길상(妙吉祥)> 1768년, 지본담채, 27.7 x 38.8cm, 국립중앙박물관]

 

<묘길상>은 <장안사> 그림과 같이 진재봉래도권(眞宰逢萊圖卷)이라는 표지가 붙은 화첩에 실려 있다. 그림에 ‘무자(戊子) 동(冬)’이라는 간기가 있어 1768년 즉, 김윤겸이 58세 때의 겨울에 그렸음을 알 수가 있다.

 

[김윤겸 <송파환도(松坡喚渡)>, 선면 지본담채, 26.0 x 60.0cm, 국립중앙박물관]

 

지금의 석촌동 지역에 있던 송파진(松坡津)을 그린 그림이다. 송파진은 광주, 이천으로 가는 대로의 길목에 있는 나루로 삼전도의 동쪽에 위치한다. 강북의 말을 탄 선비가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부른 뒤 기다리는 모습이다. 나루 뒤로 능선을 따라 소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산은 남한산이다.

 

[『금오계첩(金吾契帖)』中 김윤겸 <천우각(泉雨閣)> 1768년, 33 x 21.6cm, 경기도박물관]

 

금오(金吾)는 의금부(義禁府)의 별칭으로, 금오계첩(金吾契帖)은 의금부 관원들의 계회(契會)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첩이라는 의미다.

남산 산줄기에서 북쪽 사면인 도성(都城)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와 계곡을 예전에는 청학동천(靑鶴洞天)이라고 했는데, 이곳에 있던 ‘천우각(泉雨閣)’에서 열린 계회를 김윤겸이 그리고 당시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조윤형이 글씨를 써 『금오계첩』을 만들었다. 『금오계첩』은 김윤겸의 그림이 들어있는 계첩 말고도 여러 다른 계첩이 전하는데 그만큼 의금부 관원들의 계회가 잦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김윤겸의 <천우각>이 실려있는 『금오계첩(金吾契帖)』, 경기도박물관]

 

김윤겸은 천우각 주변 실경을 간략한 필치로 경물의 특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켜 가볍게 담채(淡彩)로 처리하였고, 인물들은 주변경치를 감상하고 있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으로 그려 자연에 심취하여 시서화음(詩書畵飮)을 즐기는 흥취를 나타냈다. 나무에 불긋한 기운이 색칠되어 있는 것은 계절이 가을임을 표현한 것이다.

 

[김윤겸 <청파(靑坡)>, 지본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청파(靑坡)>는 지금의 용산 일대를 그린 그림이다.

 

[김윤겸 ,필운대(弼雲臺)> 지본담채,  27.7 x 38.8 cm,  1770년,  개인소장]

 

[김윤겸 <산하복거(山下卜居)> 견본수묵, 24.3 x 18cm, 간송미술관]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