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진재 김윤겸 - 영남기행화첩 3

從心所欲 2020. 10. 18. 16:55

<월연(月淵)>은 화첩 중 유일하게 나무나 사람이 없는 그림으로,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정자 앞에 있는 계곡과 물길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월정은 ‘여덟 개 못과 여덟 개 정자’ (八潭八亭)’를 뜻하는 팔담팔정(八潭八亭)의 계곡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의 화림동 계곡에 있다. 화림동(花林洞)은 안의삼동 중에서도 화려한 자연의 미를 간직한 곳으로 예부터 정자 문화의 보고라 불렸으며 그 중에서도 농월정이 그 백미로 꼽혀왔다.

 

‘달을 희롱하며 즐긴다’는 뜻의 농월정(弄月亭) 앞 계곡에는 너른 반석이 펼쳐져 있어 ‘달빛이 비추는 바위’라는 뜻의 월연암(月淵岩)으로 불렸으니 월연(月淵)은 그 곳에 있는 물길이나 못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김윤겸 《영남기행화첩》 中 <월연(月淵)> 지본담채]

 

그러나 김윤겸의 <월연(月淵)>에는 농월정이 없다. 농월정은 1637년에 지어진 정자로 알려져 있으니 김윤겸이 이 그림을 그릴 때에 분명 있었을 터인데 그림에 넣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 현재의 농월정은 예전에 지어진 농월정이 2003년에 방화로 소실된 뒤 2015년에 복원된 것이다.

 

[농월정과 주변의 너럭바위]

 

[김윤겸 《영남기행화첩》 中 <사담(蛇潭)> 지본담채]

 

<사담(蛇潭)>은 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의 연화산(蓮花山)에 있는 계곡으로 추정되고는 있지만 어느 곳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물길이 뱀처럼 꾸불꾸불하여 사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김윤겸 《영남기행화첩》 中 <환아정(換鵝亭)> 지본담채]

 

환아정은 조선 초기인 1395년에 옛 산음현, 현 산청읍의 객사 서쪽에 건립되었던 정자다.

환아(換鵝)라는 정자 이름은 글씨와 거위를 바꿨다는 중국 왕희지의 고사를 인용하여 작명된 것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정자가 소실된 것을 이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1950년 3월 10일 화재로 불타버렸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書畵帖) 중 <환아정양노회도(換鵝亭養老會圖)>, 39×26.5cm. 1601년 산음현감으로 부임한 김대현(金大賢)이 환아정(換鵝亭)을 다시 짓고, 낙성(落成)하는 날에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대하여 양로연을 베풀었다. 참석자들에게 지팡이를 나눠주고 잔치에 참석한 노인들과 어울려 춤을 추었으며,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팡이, 쌀, 고기 등을 보내주었다. 당시 산음 옆 단성현(丹城縣)에 살고 있는 화공 오삼도(吳三濤)에게 연회도(宴老圖)를 그리게 하여 풍산 김씨 가문에 전해져 내려왔다. 화공의 기량은 뛰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윤겸 《영남기행화첩》 中 <하룡유담(下龍游潭)> 지본담채]

 

용유담은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송전리에 속해 있는데, 지리산의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곳 용유담에서 합류된다. 용유담은 지리산의 뱀사골, 백무동 계곡, 칠선계곡과 함께 엄천의 상류 지역에 위치해 있다. 흘러 들어온 많은 계곡물이 용유담에 이르러 폭포수와 같이 큰 소리를 내며 화강암의 암반을 지나 흘러가며 장방형의 평평한 호수를 이루게 되는데 <하룡유담>은 이 용유담의 아래지역이다.

 

[김윤겸 《영남기행화첩》 中 <극락암(極樂菴)> 지본담채, 27.0 x 21cm]

 

극락암은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백운산에 있었던 암자라고 한다. 하지만 1530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이미 ‘극락암은 백운산에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고 기록되었다고 하므로, 김윤겸이 극락암 건물을 실제로 보고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경치는 그대로 이되 건물은 예전에 극락암이 있었던 자리라는 말을 듣고 김윤겸이 상상으로 그려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다. 화폭의 한 쪽 부분 근경(近景)에 중요 경물(景物)을 배치하고 원경(遠景)은 안개속에 잠긴 듯 희미하게 그려내면서 넓고도 깊은 조망을 열어주는 전형적 변각구도(邊角構圖)의 그림이다.

 

 

 

참고 및 인용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