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들

문전작라(門前雀羅)

從心所欲 2016. 6. 12. 09:32

 

 

 

문 문(), 앞 전(), 참새 작(), 그물 라().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

문 앞에 참새를 잡는 그물을 쳐도 괜찮을 정도로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이 한적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방문객이 너무 많아 대문 앞이 마치 시장처럼 붐비는 현상을 가리키는 문전성시(門前成市)

반대되는 말로 문전작라나 문전성시는 모두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인심을 가리키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비유하는 말이다.

문전작라라는 말의 유래는 이렇다.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라는 충신이 있었다.

급암은 의협심이 강하고 성품이 대쪽 같아서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편이었다.

동료 대신들이 그 점을 나무라면, 급암은 이렇게 반박했다.

 

폐하께서 이 사람이나 공들 같은 신하를 두심은 올바른 보필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시고자 함인데, 누구나 듣기 좋은 말만 하여 성총(聖聰)이 흐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불충이 어디

있겠소? 그만한 지위에 있으면 설령 자기 한 몸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폐하를 욕되게 하진 말아야 할 것이오.”

 

그런 반면 정당시는 후덕하고 겸손하며 청렴한 인물이었다. 자기를 찾아온 손님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벼슬아치의 사명감으로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봉록과 하사품을 받으면 손님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이 두 사람은 너무 개성이 강한 탓에 같은 관료들 사이에서도 경계의 대상이었고, 그 바람에 벼슬살이가

순탄하지 못해 면직, 등용, 좌천을 거듭했다. 이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지만,

불우한 신세가 되면서 모두 발길을 뚝 끊어버려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에 급암과 정당시의 전기를 쓰고 나서 다음과 같은 말로 야박한 세태를 비판했다.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자라도 권세가 있으면 빈객이 열 배로 불어나지만, 권세를 잃으면 금방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할 나위 있겠는가! 하규(下邽)의 적공(翟公)만 하더라도 정위(廷尉 : 지금의

검찰총장격)가 되었을 때는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이 되고 나니까 모두들 발길을 끊는 바람에

집안이 너무나 고적해 마치 문 밖에 새그물을 쳐 놓아도 될 것(門外可設雀羅)같더라고 한탄했다.”

 

적공은 다시 복직하자 몰려오는 빈객들을 향하여 대문 밖에다 이런 시 한 수를 써 붙였다고 한다.

 

一死一生 卽知交情 (일사일생 즉지교정)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貧一富 卽知交態 (일빈일부 즉지교태)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貴一賤 卽見交情 (일귀일천 즉현교정)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이 나타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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