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전(傳) 안견 소상팔경도

從心所欲 2020. 11. 9. 16:25

황하(黄河)가 중국 북방문화의 상징이라면 남방문화의 중심에는 양자강(揚子江)으로도 불리는 장강(長江)과 동정호(洞庭湖)가 있다. 특히 동정호 주변은 옛날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의 뛰어난 경치는 이미 당(唐)나라 때부터 시로 많이 읊어져 왔었다.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韩愈), 백거이(白居易) 등이 중국의 ‘강남 3대 명루(江南三大名楼)’로 꼽히는 악주부(岳州府)의 부성(府城) 서쪽 문 누각인 악양루(岳陽樓)를 찾아 무수한 시와 글을 남겼다.

 

소상(瀟湘)은 동정호 남쪽에 있는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지역이다. 이곳의 8경(八景)을 글로 남긴 것은 송(宋)나라 때의 학자이자 관리였던 심괄(沈括)의 글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한다. 그가 꼽은 소상팔경(瀟湘八景)은 평사낙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산시청풍(山市淸風), 강천모설(江天暮雪), 동정추월(洞庭秋月),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煙寺晩鍾), 어촌석조(漁村夕照)였다. 또한 이를 그림으로 처음 그린 것 역시 심괄과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송나라의 문인화가 송적(宋迪)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송적보다 한 세기 앞선 900년대에 역시 송나라의 화가인 이성(李成)이 이미 소상팔경을 그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화제(畵題)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된 이래 소상팔경은 아름다운 경치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본 일은 없기에 상상 속의 이상적 산수로 존재하면서 그림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소재가 되어 수많은 시가 지어졌고 판소리 단가(短歌)까지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관동8경이니 송도8경이니 하면서 8경을 꼽게 된 것도 모두 소상팔경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에서는 종종 실경산수도 있었겠지만 조선에서 그려진 소상팔경도는 관념산수화일 수밖에 없었다.

 

‘전(傳) 안견 소상팔경도’는 원래 앞에 소개한 ‘사시팔경도’와 함께 같은 첩에 있던 그림인데 지금은 첩을 두 개로 나누었다고 한다. ‘전(傳) 안견 사시팔경도’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반면 ‘전(傳) 안견 소상팔경도’는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산시청람(山市晴嵐)>, 16세기 전반, 견본수묵, 35.4 x 31.1cm, 국립중앙박물관]

 

산시(山市)는 산골 마을이고 청람(晴嵐)은 멀리 보이는 산의 푸르스름한 기운이나 화창한 날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뜻한다. ‘산시청람’만 아침나절의 풍경이고 다른 일곱 그림들은 모두 저녁이나 밤의 경치이다. 조선 초기와 중기의 소상팔경도에서는 ‘산시청람’이 늘 첫 번째로 그려지고, ‘강천모설(江村暮雪)’은 여덟 번째로 불변의 자리였다. 그러나 다른 그림들은 그리는 이에 따라 임의로 순서를 바꾸어 그렸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연사모종(煙寺暮鐘)>, 16세기 전반, 견본수묵, 35.4 x 31.1cm, 국립중앙박물관]

 

‘안개 낀 절의 저녁 종소리’라는 구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중국의 소상팔경은 대개 사계절 보다는 늦가을과 겨울의 적막한 어촌경관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려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의 요소가 가미되면서, ‘산시청람’과 ‘연사모정’은 대개 춘경(春景)으로 그려졌다. 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도 앞의 ‘전(傳) 안견 사시팔경도’와 마찬가지로 홀수 번째의 오른쪽 그림은 오른쪽에, 짝수 번째의 왼쪽 그림은 왼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소상야우(瀟湘夜雨)>]

 

‘소상에 내리는 밤비’.

일반적으로 <소상야우(瀟湘夜雨)>는 ‘동정추월(洞庭秋月)’과 짝을 맞춰 다섯 번째 순서로 그려지는데, 이 첩에서는 세 번째로 그려졌다. 소상팔경도에서 오직 ‘소상야우’와 ‘동정추월’에만 구체적 지명이 등장한다. 통상 ‘소상야우’에는 대나무 숲이 많이 그려진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그렇지 않다. 소상야우에서 말하는 '밤 비'는 다소곳이 내리는 보슬비가 아닌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가리키는 듯, 늘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원포귀범(遠浦歸帆)>]

 

‘먼 포구에서 돌아오는 돛단배.’

통상적으로는 세 번째 그려지는 ‘어촌석조(漁村夕照)’와 짝을 맞춰 그려진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평사낙안(平沙落雁)>]

 

‘동정추월’이나 ‘평사낙안’은 모두 가을을 나타내지만 평사낙안은 대개 늦가을이나 이른 겨울을 상징하여, 겨울의 눈 덮인 장면인 마지막의 ‘강천모설’ 바로 앞인 일곱 번째에 배정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첩에서는 다섯 번째이다.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평평한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원경으로 작게 상징적으로만 그려졌다. 그러나 뒤에 가면 기러기를 앞쪽에 크게 그리는 경우도 생겨났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동정추월(洞庭秋月)>]

 

깃발이 휘날리는 악양루, 무리지은 산 위에 뜬 둥근 달, 넓은 호수와 악양루를 향하여 오고 있는 배 등이 대체적인 ‘동정추월’의 화면적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달이 안 보인다. 대신 오른쪽 전부를 마음으로 보아야하는 동정호수로 가득 채웠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어촌석조(漁村夕照)>]

 

'해너미로 붉게 물든 어촌'

물가에 쳐 놓은 그물을 손질하거나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함께 저녁노을이 드리워진 어촌의

풍경이 묘사된다.

 

[전(傳) 안견(安堅)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中 <강천모설(江天暮雪)>]

 

'저녁 무렵 강과 산야에 내리는 눈.'

강천모설(江天暮雪)은 초기에는 강에 내리는 저녁 눈이 주제가 되었지만 뒤로 가면서는 눈으로 뒤덮이고 꽁꽁

얼어붙은 산천을 그리는 쪽으로 변해갔다.

 

조선의 소상팔경도는 조선의 그림 흐름을 따라 초기에는 이 화첩과 같은 안견파 화풍으로 그려졌고, 중기에는

절파계(浙派系) 화풍으로 바뀌었다가, 후기 이후에는 남종화풍으로 그려졌으며 19세기에 들어서면 민화로도

많이 그려졌다.

 

 

 

 

참고 및 인용 : 겸재 정선(1676 ~ 1759)의 소상팔경도(안휘준), 소상팔경(瀟湘八景), 전통경관 텍스트로서의 의미와 결속구조(노재현, 2009.4, 한국조경학회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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