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4

從心所欲 2020. 11. 7. 12:30

정수영의 화폭은 포천에서 한강 남쪽의 관악산 주변으로 옮겨간다.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0번째 그림]

 

<금천위동취향정(衿川衛東翠香亭)>. 금천 관아 동쪽에 있는 취향정(翠香亭)의 정취를 그렸다. 금천현(衿川縣)은 조선시대 양천과 과천 사이에 위치했던 고을로,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 일대에 읍치(邑治)가 있었다. 취향정은 관악산과 검지산의 산줄기에 있는 정자였다고만 전해진다.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1번째와 22번 그림 오른쪽 부분]

 

<책방동장외(冊房東墻外)>. ‘책방 동쪽 담장 밖 풍경’을 그린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책방(冊房) 이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앞 취향정 그림 중간에 그려진 담장과 이 그림 하단의 담장이 같은 모양이라 여기서 말하는 책방이 취향정과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같은 장소로 본다면 앞 그림은 담장 안 풍경에 초점을 둔 그림이고, 이 그림은 담장 밖 풍경에 초점을 둔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앞에 펼쳐진 산은 검지산(黔芝山)이라 한다. 검지산(黔芝山)은 관악산의 한 봉우리로 과거 조선시대에 금천현(衿川縣)의 진산(鎭山)이었다.

그림 위에는 ‘검지산의 뻗어나간 모양이 별 볼품없이 죽 늘어서서 명산인 관악산과는 다르다’고 적은 것은 후대에 다른 사람이 적은 글로 보인다.

 

[광여도 속의 금천현, 빨간 원 안이 검지산,  고려대학교 도서관 자료 가공 ]

 

<모정재현동북변십리지(茅亭在顯東北邊十里地)>.

‘모정(茅亭)은 마을 동북 가장자리 십리 땅에 있다’고 적었다.

그 옆에 ‘일간정(一間亭)이라 불리는 이곳은 자하동(紫霞洞)의 가장 좋은 곳’이라는 글은 강세황의 3남인 강관(姜倌)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하(紫霞)는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진 화가이자 서예가였던 신위(申緯)를 가리킨다. 자하동은 지금의 금천구 시흥동과 안양시에 걸쳐 있는 관악산(冠岳山) 남동쪽 기슭의 경승지로, 신위는 이 일대가 원래 자신의 집 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간정도 신위가 별장으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2번 그림의 나머지 부분과 23번째 그림]

 

망월암(望月庵)은 현재의 도봉산 아래 망월사를 가리킨다. 1800년에 신명현(申命顯)이 도봉산을 유람하고 나서 지은 기문 <유도봉기(遊道峯記)>에도 망월암으로 기록되어 있어 망월사로 불리게 된 것은 그 후의 일로 보인다.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4번째 그림]

 

망월암 그림의 나머지 부분과 옥천암(玉泉庵)이다.

신라 문무왕 때인 673년에 의상(義湘)이 만장봉(萬丈峰)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한다. 1398년 조선의 태조가 천축사(天竺寺)라는 사액(寺額)을 내린 후로 천축사라 불리지만 정수영은 옛 이름을 썼다. 대웅전을 정면으로 그렸고 배경의 봉우리는 만장봉(萬丈峰)이다.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5번째 그림]

 

앞 사진 왼쪽부터 계속 연결된 그림이다.

삭녕우화정재현동사리(朔寧羽化亭在縣東四里).

삭녕(朔寧)은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지역의 옛 지명이다. 우화정(羽化亭)은 현재는 북한 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중면 대사리에 있던 정자이었으나, 6·25전쟁 중에 파괴되었다.

영조 18년인 1742년, 겸재 정선이 경기도관찰사 홍경보(洪景輔)와 더불어 10월 보름날 뱃놀이를 하고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다. 정선의 그림이 화의(畵意)가 많이 반영된 반면, 정수영은 가능한 보이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연강(漣江) : 임진강의 옛 이름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으나 겸재 정선이 쓰기 이전에는 그 기록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연천(漣川)에 있는 강’이라는 의미로 정선이 처음 썼다는 것인데, 정선이 큰 고민없이 기존에 부르던 이름인 연천(漣川)의 천(川) 대신 강(江)으로 글자만 바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겸재 정선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中 <우화등선(羽化登船)>, 1742년, 견본수묵, 35.5 x 96.6 cm, 개인소장]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中 26번째 그림]

 

<토산삼성대재현동이리(兎山三聖臺在縣東二里)>.

삼성대(三聖臺) 역시 지금은 북한 지역인 황해북도 토산군 월성리 임진강 기슭에 있는 바위절벽이다. 절벽에는 "만동강(萬東江)"이라 새겨져 있으며 그 옆에 "삼성대"라 쓴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한다. 만동강은 토산읍의 동쪽에 있는 만 가지 경치를 다 볼 수 있는 강이라는 뜻으로서 예성강을 달리 부르는 말이고, "삼성대"는 글자 그대로 세 성인이 놀던 터라는 뜻이다. 세 선인은 단군, 환인, 환웅을 가리킨다.

 

이것이 《한임강명승도권》의 끝이다.

《한임강명승도권》은 그림 자체보다는 조선 후기 선비가 남긴 그림 여행일기라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및 인용 : 船遊와 遊山으로 본 정수영의 《한임강유람도권》고찰(한상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 조선향토대백과, 2008. 평화문제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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