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濯足)은 전통적인 선비들의 피서법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더워도 선비가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드는 경망한 짓은 할 수 없으니 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탁족(濯足)에는 철학적인 의미도 있다.
중국 초(楚)나라 때의 충신 굴원(屈原)과 그 유파를 다룬 중국의 고전 「초사(楚辭)」 <어부편(漁父篇)>에는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던 굴원(屈原)에게 늙은 어부가 던진 말이다. 이로 인하여 발을 씻는다[濯足]는 것은 혼탁한 세상을 피하여 숨어사는 은일자(隱逸者)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 그림을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이름의 <고사탁족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있다.
같은 화재(畵材)에, 그려진 인물의 모습도 거의 비슷한데 그림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고려대학교 소장본이 은일하는 고사의 세상을 떠나 사는 듯한 모습이라면 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속세의 느낌이 물씬 난다. 배를 드러낸 인물의 자세와 옷차림, 시중드는 동자, 거기다 그림에 채색까지 더하여 고즈넉하기 보다는 어딘가 세상 한가운데 있는 인물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선비가 나귀타고 다리를 건너는 그림은 대개 ‘시상(詩想)은 파교 위 나귀의 등 위에 있다(詩思在灞橋驢子背上)’는 옛 글귀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김명국, 정선, 김홍도를 비롯하여 많은 화가들이 그렸다.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것이 함윤덕의 것이다.
이 또한 전형적 소경인물화이다. 함윤덕(咸允德)은 윤두서의 <기졸(記拙)>에 "포치와 선염이 본래 도화서의 고수이다[布置開染 自是院中老手]."라는 짤막한 평만 남아 있을 뿐, 출신 배경이나 행적 등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다만 16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경윤과 함윤덕 중 누구의 그림이 앞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20여 년 전에 경남대가, 일제 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일본으로 가져갔던 조선시대 시서화 작품 일부를 돌려받은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이경윤의 그림으로 알려진 산수인물화 6점을 엮은 《낙파필희(駱坡筆戱)》라는 화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코밑수염을 비비며 시를 찾는다’는 뜻의 <연자멱시도(撚髭覓詩圖)>가 있다.
그림 오른쪽에 쓰인 글은 이경윤과 동시대의 문인이었던 오봉(五峰) 이호민(李好閔)의 찬시다.
“수염 비비며 시구를 찾아 고심하느라, 나귀 등에 몸이 구부려졌네. 버들바람 부는 것도 모르고, 다리 서편인지 동편인지도 잊었구나.(撚髭覓詩苦 驢背身穹落 柳風吹不覺 忘却橋西東)”
일반인이 보기에도 머리가 갸우뚱거려지는 이 그림은 결국 위작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경윤 사후에 원작(原作)을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소장본 《산수인물화첩》 역시 이경윤의 그림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호림미술관 소장본에 비하여 옷주름의 표현이 세련되지 않다는 것이다.
참고 및 인용 : 호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역대 서화가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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