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27 - 구운몽도(九雲夢圖)

從心所欲 2020. 12. 30. 11:08

숙종 13년인 1687년 5월 1일, 조사석(趙師錫)이란 인물이 우의정(右議政)에 제수되었다. 《숙종실록》에 이 기사를 쓴 사관은 이 일을 두고 “온 세상이 모두 궁중 깊은 곳의 후원에 의한 것으로 여겼었다”라고 적었다. ‘궁중 깊은 곳’이라는 것은 당시 숙종의 총애를 받던 후궁인 귀인(貴人) 장옥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즉, 조사석이 장옥정 덕분에 우의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의정에 임명된 조사석도 이런 말이 돌고 있음을 알고 부끄럽게 여겨 7번이나 거듭하여 사직하는 차자와 상소를 숙종에게 올리고는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숙종은 7월 25일 우의정을 다른 인물로 교체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근 두 달이 지난 9월 11일, 당시 경연청(經筵廳) 정2품 지경연사(知經筵事)로 있던 김만중(金萬重)이 경연 자리에서 이 일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며 숙종에게 “전하께서는 반성하시면서 더욱 수신(修身)하고 제가(齊家)하는 도리를 닦으소서."라고 충고했다. 이는 장옥정의 베개머리 송사 때문에 숙종이 조사석을 우의정에 임명했다는 것이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것이니 왕을 능멸하는 말이었다. 당연히 김만중의 말에 왕은 분노했다. 이 일로 김만중은 평안북도 선천(宣川)으로 유배되었다.

 

「구운몽(九雲夢)」이란 소설은 이때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운몽(九雲夢)’의 ‘구(九)’는 소설 속 주인공인 성진과 팔선녀를 가리키고, ‘운(雲)’은 인간의 삶을 나타났다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하는데, 어느 것이 먼저 쓰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설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중국 당나라 때 인도에서 온 육관대사(六觀大師)가 형산 연화봉에 절을 짓고 불법을 전하고 있던 중, 제자인 성진(性眞)을 동정용왕(洞庭龍王)에게 심부름을 보냈는데, 성진이 돌다리에서 팔선녀(八仙女)를 만나 서로 희롱하였다.

이 일로 성진은 선학(禪學) 길이 막혀 결국 인간 세상에 유배되어 양소유(楊少游)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이후 어린 나이에 등과(登科)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재상이 되는 과정에서 팔선녀의 후신인 여인들과 차례로 만나 왕의 부마(駙馬)가 되고 여덟 여인을 모두 처첩으로 삼으면서, 인간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그러다 만년에 인생무상을 느껴 여덟 부인들과 함께 불문(佛門)에 귀의하려 한다.

실제와 같은 이런 꿈을 꾸다가 돌다리 위에서 잠이 깬 성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육관 대사의 가르침을 받는다. 팔선녀가 찾아와 대사에게 제자로 받아 주기를 청한다. 이후 육관대사는 인도로 돌아가고 성진은 연화봉에서 불법을 전한 뒤 팔선녀와 함께 극락세계로 간다.

 

‘현실 - 꿈 - 현실'로 이어지는 환몽(幻夢)구조의 이 소설은 왕으로부터 일반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모두에게 애호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적 인기를 배경으로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는데, 그것이 구운몽도(九雲夢圖)이다.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처럼 중국소설을 도해한 것은 있어도 조선의 소설이 그림으로 그려진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구운몽도는 회화사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한다. 춘향전, 별주부전, 심청전 등도 그림으로 그려졌다고는 하지만, 현재 전하는 작품의 수로 보면 구운몽도가 압도적이다.

 

[<구운몽도(九雲夢圖)>, 편화, 지본채색, 각 72.6 x 40.3cm, 국립중앙박물관. 상단에 소설의 내용을 쓰고, 하단에 그림을 그렸다.]

 

현재 전하는 <구운몽도>는 거의 병풍 형태이다. 그러나 이들 <구운몽도> 병풍들은 이야기 전개와 그림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고, 어떤 내용을 그렸는지 특정할 수 없는 그림도 종종 있으며. 소설의 내용과 차이가 있는 그림도 다수 있다. 또한 소설과 관계없는 다른 그림들과 혼합된 그림의 병풍도 적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구운몽도>병풍은 소설 구운몽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목적보다는 구운몽의 도불교(道佛敎)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장식의 용도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운몽도>병풍에 그려지는 그림들은 대략 다음의 소재들이다.

1. 성진과 팔선녀가 돌다리에서 만나다. <구운몽도>의 대표적 장면이다.

2. 성진이 풍도 지옥(風途地獄)으로 끌려가다.

3. 성진이 인간 세상에 양소유로 태어나다.

4. 진채봉을 만나다.

5. 낙양 기생 계섬월을 첩으로 맞다.

6. 여장을 하고 정경패에게 구애하다.

7. 선녀로 변장한 가춘운에게 속다.

8. 계섬월이 남장한 기생 적경홍을 만나다.

9. 퉁소를 불어 난양 공주의 학을 부르다.

10. 자객 심요연을 첩으로 맞다.

11. 용왕의 딸 백능파를 위해 남해 태자와 싸우다.

12. 칠보시로 두 공주의 재주를 시험하다.

13. 두 공주와 결혼하다.

14. 낙유원에서 기예를 겨루다.

15. 육관대사가 찾아오다.

16. 잠에서 깨어나다.

 

[<구운몽도 8폭 병풍(九雲夢圖八幅屛風)>, 지본채색 비단장황, 136.5 x 391cm,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1폭, 화폭 65.5 x 36cm,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2폭, 화폭 65.5 x 36cm,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3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4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5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6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7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8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九雲夢圖八幅屛風)>, 지본채색, 160 x 356.5cm,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1,2폭, 화폭 90.5 x 33.5cm,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3,4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5,6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8폭 병풍> 中 7,8폭, 국립민속박물관]

 

 

[<구운몽도 10폭 병풍(九雲夢圖十幅屛風)>, 지본채색, 108.5 x 388cm, 국립민속박물관]

 

주로 서민층이 향유한 그림이라 <구운몽도>는 대부분이 민화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8첩 또는 10첩의 병풍 형태로 되어 있다.

 

 

 

참고 및 인용 :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