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김홍도 삼공불환도

從心所欲 2021. 1. 10. 15:46

안거낙업(安居樂業).

“편안하게 거하면서 하는 일을 즐긴다.”는 이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일의 고단한 세상사에 지친 모든 이들이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망일 것이다.

이 말은 노자가 「도덕경(道德經)」에서 국가의 이상적인 형태를 가리킨 ‘음식을 달게 먹고, 입은 옷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 풍속을 즐거워한다.(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자」에도 ‘그 풍속을 즐거워하고,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긴다(樂其俗, 安其居)’는 구절이 있고, 《한서》 화식열전(貨殖列傳)에도 "각자가 그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그 일을 즐거워한다(各安其居而樂其業)"는 구절이 있다.

지금처럼 복잡다단한 세상이 아니었을 2,500년 전부터도 이미 이렇게 사는 것을 이상적 사회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뒤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거처하는 곳에는 좋은 논밭과 넓은 집이 있고, 산을 등지고 냇물이 옆에 흐르고. 도랑과 연못이 둘러 있다. 대나무와 수목이 두루 펼쳐져 있고, 타작마당과 채소밭이 집 앞에 있으며 과수원은 집 뒤에 있다. 배와 수레가 걷거나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대신하고, 심부름하는 이가 있어 육신이 쉴 수 있다. 부모를 봉양함에는 진미 음식을 드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몸을 힘들게 하는 수고도 없다. 좋은 벗들이 모이면 술과 안주를 차려 즐기고, 기쁠 때나 길한 날에는 염소와 돼지를 삶아 바친다.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잉어를 낚고 높이 나는 기러기를 주살로 잡는다. 안방에서 정신을 평안히 하고 노자의 현묘한 도를 생각하며, 조화된 정기를 호흡하여 지인(至人)과 같아지기를 구한다. 통달한 사람과 도를 논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고금의 인물을 평해본다. 남풍(南風)의 전아한 가락을 연주하고 미묘한 청상곡(淸商曲)도 연주한다. 온 세상을 초월한 위에서 거닐며 놀고 하늘과 땅 사이를 곁눈질하며, 책임질 일을 맡지 않아 기약된 목숨을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하늘을 넘어 우주 밖으로도 나갈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제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부러워하겠는가?】

 

후한(後漢) 시대의 중장통(仲長統)이 지었다는 낙지론(樂志論)이라는 글이다. 누구라서 이런 삶을 마다하겠는가?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요즘도 많은 이들이 시골에서의 목가적인 삶을 동경한다. 조선시대에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한 선비나 오랜 관직 생활에 지친 사대부들 역시 자연에 묻혀 은거(隱居)하는 삶을 꿈꾸었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그러한 바람과 정서를 담은 그림이다.

삼공불환(三公不換)은 당시의 가장 높은 벼슬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공(三公) 벼슬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꾸지 않겠다는 것은 전원에서의 안락한 삶이다. 남송(南宋)의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대복고(戴復古)가 지은 조대(釣臺)라는 시의 ‘모든 일은 낚싯대 하나로 마음 비우게 되나니, 삼공의 자리를 이 강산과 바꾸지 않으리[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金弘道 筆 三公不換圖)>, 8폭 병풍, 견본수묵담채, 133 x 418㎝, 삼성미술관 리움, 보물 제2000호]

 

원래는 8첩 병풍으로 꾸며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족자로 표구된 상태라 한다. 그림 왼쪽 상단에 적힌 발문에 의하면 이 그림은 1801년 순조임금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하여 유후(留後)라는 호를 쓰고 한씨(韓氏) 성을 가진 인물이 만든 4점의 계병(禊屛) 중 하나였다.

 

【신유년 겨울 12월에 임금의 병환인 수두가 나아서 온 나라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유후 한공이 계병을 만들어 휘하의 벼슬아치에게 나누어주니 대개 전에 없던 경사를 기념한 것이다. 한공과 나는 ‘신우치수도(神禹治水圖)’를 얻었고, 총제관은 ‘화훼영모도’를 얻었으며, 주판은 ‘삼공불환도’로 하기를 원하니 각자 그 좋아하는 것을 얻었다. 그림이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드디어 중장씨(仲長氏)가 지은 「낙지론」을 화제로 썼는데, 그 말이 그림에 부합되는 것을 골랐다. 장차 그 좋아하는바가 이루어지고 중장씨의 논한 내용과 단원의 그림에 나타난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간재(艮齋) 홍의영(洪儀泳)이 단원이 그린 삼공불환도에 제를 쓰다.】

▶신유년 : 1801년

 

발문을 쓴 홍의영은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의 조카이다. 발문 앞에는 중장통(仲長統)의 낙지론(樂志論)을 적었다.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中  1-2폭,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中  3-4폭, 삼성미술관 리움]

 

절벽처럼 보이는 산자락 아래의 넓은 집에는 사대부가의 여러 가지 정경이 묘사되어 있다. 안채에는 베를 짜고 물레를 돌리는 아낙이 보이고, 손님을 맞아 환담하는 사랑채로 술상을 들고 가는 아낙 옆으로는 학이 노닌다. 누군가는 평상에 누워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는데 그 뒤편 마당에는 사슴들이 뛰논다. 집안 한 구석에서는 그네를 타는 이도 있고, 마당에 풀어놓은 닭과 개의 모습이 한가롭고 연못에는 오리가 떠다닌다. 홀로 누각에 올라 앉아 눈앞의 경치를 감상하는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지 모르는 인물까지 그저 여유롭고 평온하기만 하다.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中 5-6폭,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 필 삼공불환도> 中 7-8, 삼성미술관 리움]

 

담 너머 집 밖의 너른 논밭에는 농부의 손길이 바쁜데 한쪽에는 물에 낚시를 드리운 한가로운 손길도 있다. 멀리는 돛대만 삐죽하게 보이는 바닷가의 풍경이 어스름한 안개 속에 잠겨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한 전원의 일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이것을 세상의 가장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지금이라 그런지 그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참고 및 인용 : 국가문화유산포탈, 고서화 제발 해설집(임재완 역주, 2006, 삼성미술관 Leeum 고미술 학예연구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