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이재관 선인도(仙人圖)

從心所欲 2021. 1. 29. 12:52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 ~ 1849)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여항문인이자 화가이다. 그림을 정식으로 사숙한 적은 없고 중국의 화보를 임모하며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창경궁영건도감에 방외화사로 발탁되기도 하고, 훼손된 태조 어진의 모사를 위한 영정모사도감에 차출되기도 할 만큼 당대에 솜씨를 인정받았다.

추사 김정희의 문인으로 『호산외사(壺山外史)』를 남긴 조희룡은 "일본인들이 동래왜관으로부터 이재관의 그림, 특히 새나 짐승 그림을 사들이기를 빠뜨린 해가 없었다."고 했다. 이재관은 산수화와 산수인물화를 주로 그렸고 초상화, 화조화, 어해도 등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그렸다고는 하나 전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이재관은 조희룡과 평생의 지기였다. 이재관이 그린 대부분의 작품에 조희룡이 제발을 썼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두터웠다. 이재관은 강세황(姜世晃)의 증손자인 강진(姜溍), 김홍도의 아들인 김양기(金良驥), 신위(申緯)의 아들인 신명준(申命準)과도 교유가 있었다.

 

이재관이 그린 산수화는 대부분 인물과 함께 그린 소경인물산수화로서 고사(故事)와 시문(詩文)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그의 필묵법은 남종문인화풍을 토대로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도 소경인물산수화이다. 그림에는 조희룡과 강진이 함께 제발을 썼다.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파초하선인도(芭蕉下仙人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화제는 '파초엽상게제시(芭蕉葉上揭題詩)'로 고향 마을에 파초(芭蕉) 만여 그루를 심어 파초 잎으로 종이를 대신해 글씨를 연습했다는 중국 당대(唐代)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회소(懷素)를 소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왼쪽 상단의 제발은 강진(姜溍)이 쓴 것이다.

 

【芭蕉葉上揭題詩 파초 잎 위에 시를 쓰다

 

展破焦葉 부스러진 파초 잎을 펼쳐놓고

拈敗筆寫率爾詩 몽땅 붓을 잡고 내키는 대로 시를 지으니

卽閒中一消遺法也 이것이 바로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는 방법이라.

而其貌態手勢坐形 그의 얼굴 모습, 손의 형세, 앉은 모양과

與蠻奴用力磨墨 하인이 힘을 다해 먹을 갈고 있는 것을

看作大事業 큰일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亦作此人用筆神到處 역시 이 사람의 붓놀림이 신묘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화제로 쓰인 ‘백안간타세상인(白眼看他世上人)‘은 당나라의 시인이자 남종문인화의 창시자로 평가를 받는 왕유(王維)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이다. 왕유가 노상(盧象)이라는 인물과 함께 최흥종의 숲속 정자에 들렸을 때의 풍경을 읊은 ‘여노원외상과최처사흥종임정(與盧員外象過崔處士興宗林亭)’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최흥종은 왕유의 손아래 처남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거문고와 시와 술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綠樹重陰蓋四鄰 푸른 나무 짙은 그늘, 사방을 둘렀고

靑苔日厚自無塵 햇살 아래 맑은 이끼는 스스로 먼지 하나 없네.

科頭箕踞長松下 소나무 아래 갓을 벗고 다리 뻗어 편히 앉아

白眼看他世上人 세상 사람들 우습게 여기며 사는구나.】

 

이 그림의 제발은 조희룡이 썼는데, 그림을 그린 이재관을 화신(畵神)이라고 극찬했다.

 

【松是癯骨 石是頑骨 人是傲骨 然後方帶得抱膝長嘯 眼冷一世之意 小塘 其眞畵神者乎 使我作此 松老石怪 人詭而耳 此寫形者也

소나무는 골격이 여위였고, 돌은 무디고, 사람은 대쪽 같은 성격이라. 이와 같이 된 연후에야 비로소 무릎을 안고 긴 휘파람불며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뜻을 가질 수 있다. 소당은 참으로 화신(畵神)이 아니겠는가. 나에게 그리라고 한다면 소나무는 늙고, 돌은 괴석이요, 사람은 기이하였을 것이니 이는 겉만 그린 때문이다.】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미인사서도(美人寫書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미인사서도(美人寫書圖)>는 당나라의 기생이자 여류시인이었던 설도(薛濤)를 소재로 한 것이다. 관리 집안의 딸이었으나 집안이 패가하여 기녀가 되었다. 설도가 살던 곳의 지방관이 그녀를 주석에 불러 시를 짓게 하고는 그 솜씨를 칭찬하여 여교서(女校書)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만년에 좋은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의 백화담(白花潭)으로 옮겨가 살면서 그녀가 직접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만든 종이에 시를 써서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그 종이에 대한 평판이 높아 ‘설도전(薛濤箋)’ 또는 ‘완화전(浣花箋)’이라 불리며 유명해졌다.

 

그림의 제발 중 조희룡의 ‘오래된 우물’ 구절이나, 강진의 ‘설교서전(薛校書牋)’이라는 구절은 모두 이 이야기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그림 오른쪽 중간의 글이 조희룡이 쓴 제발이고, 그 오른쪽 나무 위에 적힌 글이 강진의 것이다.

 

【桐陰繡閣獨唫詩 오동나무 그늘진 집에서 홀로 시를 읊으며

 玉指劈箋春腝時 따뜻한 봄날에 아리따운 손으로 종이를 자르네.

 古井盈盈千載水 오래된 우물은 천년을 마르지 않고 넘쳐

 至今猶道冷臙脂 지금도 여전히 차고 맛있다고 말한다네.】 (조희룡)

 

【中朝人恨夢刀遲 중국사람들은 관직생활 더딘 것을 안타깝게 여겼고

 薛校書牋天下知 설도의 종이는 온 천하가 알았다.

 繡榻日長桐影直 수놓은 탁자엔 해가 길어 오동나무 그림자 곧은데

 閑題元相十離詩 원진 재상에 보낼 십리시 한가로이 짓고 있네.】 (강진)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미인취생도(美人吹笙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미인취생도>는 춘추시대 진(秦) 목공의 딸이자, 음악에 능통했던 소사(蕭史)라는 인물의 아내인 농옥(弄玉)을 소재로 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옥을 가지고 잘 놀아 이름을 농옥(弄玉)이라 했다 한다.

설화에 가까운 그녀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농옥의 남편인 소사(蕭史)는 퉁소를 잘 불어 ‘봉명(鳳鳴)’이란 곡을 남겼고, 그 소리로 공작과 흰 학을 불러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농옥이 소사에게 연정을 품자 목공은 딸을 소사와 맺어 주었는데, 소사는 농옥에게 퉁소를 가르쳤고 몇 년 뒤 농옥은 퉁소로 봉황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다. 농옥과 소사 부부는 어느 날 각각 봉(鳳)과 용을 타고 부부가 함께 승천하여 신선의 세계로 갔다고 한다.

 

【鳳凰天上携夫婿 봉황이 하늘로 낭군을 데려가니

 織女空令烏鵲愁 직녀가 외로이 오작교에서 근심하네.

 滿地碧雲明月上 온 땅에 푸른 구름 가득하고 밝은 달떴을 때

 人間留與玉簫秋 세상에 머문 사람들은 옥피리로 가을을 알리네.】(조희룡)

 

【鶴背吹簫鳳背笙 학의 등에서 피리를 불고 봉황 등에서 생황을 부니

 仙家契活喜雙淸 비록 선계에서 멀지만 몸과 마음 모두 깨끗함이 기쁘다

 何如衣翟垂龍袞 어떻게 하면 꿩과 용 무늬 새긴 옷을 입어서

 却慰人間父母情 인간세상 부모의 마음 위로할 것인가.】(강진)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여협도(女俠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여협도(女俠圖)>가 누구를 소재로 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다만 당(唐), 송(宋) 때에 유행했던 영웅소설 속의 검술에 능한 여협객(女俠客)이 중국에서 <여협도>로 그려진 사실로 미루어 같은 부류의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의 글이 강진의 제발이다.

 

【霜鋩飛入碧雲頭 시퍼런 서슬이 파란 구름을 날아 꿰뚫고

 女俠山東第一流 여중호걸은 산동출신이 으뜸이라네.

 虎帳人眠深似海 호장(虎帳)속 사람들은 바다처럼 깊이 잠들고

 滿空星月鄴城秋 하늘에 별과 달이 가득하니 업성(鄴城)은 가을이라.】 (강진)

▶업성(鄴城) : 삼국시대 위(魏) 나라 수도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 中 <여선도(女仙圖)>, 지본담채, 139.4 x 66.7cm, 국립중앙박물관]

 

<여선도(女仙圖)>는 전장을 누볐던 수당(隋唐)대의 홍불(紅佛)이라는 협녀(俠女)를 소재로 한 것이라는 소개도 있지만, 그림과 제발로 봐서는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오른쪽 글이 조희룡의 제발이다.

 

【輕裝雲渺御長風 가벼운 옷차림 구름처럼 아득하게 바람을 누르고

 劍氣珠光爭日紅 검기(劍氣)가 햇살의 번득임을 다투네.

 高木綠蘿宿因在 높은 나무의 겨우살이는 거기 있어 오래 되고

 娥媚隻眼到英雄 한 쪽을 감은 아름다운 눈 영웅에게 미치네.】 (조희룡)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중국인물사전(한국인문고전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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