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칠광도(七狂圖), 10현도(十賢圖)

從心所欲 2021. 2. 3. 07:55

1910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상실되자, 채용신은 익산의 금마에서 정읍 칠보로 향했다. 정읍 칠보는 1906년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켰던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는 곳이다.

채용신은 그곳에서 김직술(金直述)의 집에 머물렀다. 김직술은 최익현이 거병할 때 재정을 맡아 전라북도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던 인물이다.

 

무성서원은 원래 신라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을 모시던 사당과 인종 때 태인(泰仁)목사를 지낸 신잠(申潛)의 사당을 병합하여 숙종 22년인 1696년에 임금으로부터 ‘무성(武城)’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은 서원이다. 경기도 포천에서 지내던 최익현이 1906년 이곳까지 내려와 거병하게 된 것도 그가 최치원의 27대손이라는 인연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채용신은 이때에 무성서원이 있는 칠보면의 무성리 일대를 그렸다. 지금 <칠광도(七狂圖)>라고 전해지는 그림이다.

 

[채용신 <칠광도(七狂圖)>, 견본채색, 127.7 x 83.4cm, 송산사(松山祠)]

 

<칠광도(七狂圖)>의 그림 속 윗마을은 지금의 무성리 원촌이고. 아래쪽은 시산리 마을이다. 이 그림이 <칠광도(七狂圖)>로 불리는 이유는 그림 속에 7광(七狂)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무성서원과 함께 송정(松亭)이 그려져 있고 송정 앞쪽에 7명의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채용신 <칠광도(七狂圖)> 속 무성서원과 송정]

 

[채용신 <칠광도(七狂圖)> 속 송정과 칠광]

 

7광(七狂)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존호(尊號)가 낮추어진 것에 분개하여 낙향한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들이다. 김대립(金大立), 김응찬(金應贊), 김감(金勘), 안치중(安致中), 송민고(宋民古), 이상향(李想嚮), 이탁(李卓)의 7인으로, 송정에 모여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지내면서 자신들을 7광(七狂)이라고 불렀다 한다.

 

또한 이 송정(松亭)에 모인 인물들에는 10현(十賢)이라 불리는 인물들도 있었다. 7광(七狂) 중 김응찬, 김감, 안치중, 송민고, 이탁(李卓) 5인에다 김관(金灌), 김렴(金濂), 김급(金汲), 김우직(金友直), 양몽우(梁夢寓)라는 5인을 추가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채용신은 이들의 그림도 그렸다. <송정 10현도(松亭 十賢圖)>이다.

 

[채용신, <송정 10현도(松亭 十賢圖)>, 견본채색, 119 x 83.4cm, 송산사]

 

이 <송정 10현도(松亭 十賢圖)>는 10현 중의 한 사람인 송민고(宋民古 1592~?)가 그렸던 그림을 채용신이 모사한 것이라 한다.

 

<칠광도(七狂圖)>와 <송정 10현도(松亭 十賢圖)>는 현재 송정 뒤편에 있는 송정영당(松亭影堂)에 걸려 있다는 설도 있고, 인근의 또 다른 사당인 송산사(松山祠)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참고 및 인용 : 문화재청, 전북도민일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우리 옛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재관 소당화첩(小塘畵帖)  (0) 2021.02.09
이재관 월계탁금도(越溪濯錦圖)  (0) 2021.02.08
이재관 선인도(仙人圖)  (0) 2021.01.29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  (0) 2021.01.27
팔도미인도  (0) 202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