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이재관 월계탁금도(越溪濯錦圖)

從心所欲 2021. 2. 8. 11:47

 

[이재관 <월계탁금(越溪濯錦)>, 지본담채, 128.5 x 62.5cm, 개인]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의 작품인 이 <월계탁금(越溪濯錦)>은 2015년 서울옥션경매에서 2억 6500만원에 낙찰된 그림이다.

 

중국의 고대 사대미인(四大美人) 가운데 하나인 월(越)나라의 서시(西施)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서시의 원래 이름은 시이광(施夷光)이다. 그녀가 살던 마을은 시(施)씨 씨족 마을로 2개의 촌락이 동서로 분리되어 있어, 미모가 뛰어난 그녀를 가리킬 때 ‘서촌(西村)에 사는 시(施)씨’ 라는 의미에서 그녀를 서시(西施)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무꾼이었고 어머니는 빨래를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서시도 늘 시내에 나가 빨래를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사를 주제로 한 이 그림에는 《이재관필 선인도(李在寬筆仙人圖)》에서와 같이 조희룡과 강진의 제시가 들어있다. 농담의 조화로 그림의 구성을 구분 지으면서, 꼭 필요한 필선만 사용하되 과하지 않은 맑은 담채를 얹어 생동감을 부각시켰다는 평이다.

 

같은 소재를 그린 <월녀탁금(越女濯錦)>이란 이름의 그림이 전하고 있는데 현재 숙명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는 달리 제발이 없고, 근대 한국화가인 월전(月田) 장우성이 배관했다는 글만 적혀있다.

 

[이재관 <월녀탁금(越女濯錦)>, 지본담채, 129 x 63cm, 개인]

 

이재관의 집안은 원래 무반가문(武班家門)이었으나 4대조 이래 벼슬하지 못하여 중인으로 몰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데다 집안이 가난하여 그림을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스승 없이 중국 화보를 보고 혼자 배운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 보인다. 맑고 부드러우며 은근하고 고상하다. 그의 그림에는 속기(俗氣)가 없다는 평도 있다.

 

[이재관 <오수도(午睡圖)>, 지본담채, 122 x 56cm, 삼성미술관 리움]

 

화제로 쓰인 글은 ‘새소리 위아래로 오르내릴 때 낮잠이 막 깊이 든다.(禽聲上下 午睡初足)’ 이다. 이 글귀 자체로도 그림의 풍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글귀를 따온

중국 남송(南宋)때의 나대경(羅大經)이라는 학자의 ‘산거(山居)’라는 글을 조금 더 읽으면 그 느낌이 훨씬 풍성해진다. ‘산거(山居)’는 나대경이 시문(詩文)에 대한 논평과 이상적인 문인생활을 다룬 『학림옥로(鶴林玉露)』라는 책에 들어있는 글이다.

 

【唐子西詩云  당자의 서시에 이르기를

 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고 하였다.

 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내 집은 깊은 산 중이라.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蒼蘚盈堦 落花滿徑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 산길에 가득하다.

 門無剝啄 松影參差  문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소나무 그림자 들쑥날쑥한데

 禽聲上下 午睡初足  새소리 위아래로 오르내릴 때 낮잠이 막 깊이 든다.

 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돌아 흐르는 샘물 긷고 솔가지 주어와 쓴 차를 끓여 마신다.

 (후략)】

 

오래된 소나무와 차를 다리는 동자, 그리고 두 마리 학이 어우러져 고요하고 한가로운 가운데 책 더미에 기대어 오수를 즐기는 처사는 속진(俗塵)을 모두 떨쳐낸 모습이다.

이재관은 이 그림에 ‘붓 아래 한 점의 티끌도 없다’는 뜻의 ‘필하무일점진(筆下無一點塵)’이라는 주문방인을 자신의 호 밑에 찍었다.

 

[이재관, <전다도(煎茶圖)>, 지본담채, 122 × 56cm, 개인소장]

 

"弄筆窗間 再烹苦茗

창가에 앉아 글씨를 쓰고 다시 쓴 차를 달여 한 잔 마신다."

 

이 글귀도 모두 나대경의 ‘산거(山居)’에 들어있는 구절을 따서 조합한 것이다. 원래는 <오수도(午睡圖)>와 같이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시나 옅은 설채(設彩)로 은은하고도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 넓은 여백 덕분에 산뜻하기까지 하다.

 

[이재관, <삼인해후도(三人邂逅圖)>, 지본담채, 113.4 x 52.8cm, 개인소장]

 

큰 바위 아래 죽장을 집고 선 선비와 그 곁에 가래를 집고 있는 농부, 챙이 큰 방갓을 쓴 노인이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제발은 ‘밭둑의 노인과 냇가의 벗을 만나 뽕나무와 삼베 농사를 묻고 벼농사를 얘기하네(邂逅園翁溪友 問桑麻說秔稻)’로 역시 ‘산거(山居)’의 한 구절이다.

 

짙은 먹선을 먼저 그어 놓고 담묵으로 가지나 이파리를 그린 것은 단원 김홍도의 화풍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평도 있다. 서울옥션에 경매 추정가 1억 ~ 2억 5천만원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참고 및 인용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우리 옛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협의 풍속화  (0) 2021.02.11
이재관 소당화첩(小塘畵帖)  (0) 2021.02.09
칠광도(七狂圖), 10현도(十賢圖)  (0) 2021.02.03
이재관 선인도(仙人圖)  (0) 2021.01.29
곡운구곡도(谷雲九曲圖)  (0) 2021.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