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31 -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從心所欲 2021. 1. 30. 08:41

궁궐에서 사용된 물품 가운데 그 권위를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이 일월오봉도병(日月五峯圖屛)이다. 일월오봉도 병풍은 바로 왕을 뜻하는 상징물이었다. 일월오봉도 병풍은 왕이 있는 곳에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반드시 어좌(御座) 뒤에 일월오봉도가 배설되었다. 또한 왕이 서거했을 때 신주를 모셔 두는 혼전(魂殿),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공간에도 일월오봉도를 배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궁중에서 제작된 모든 의식의 그림에는 왕의 모습 대신 비어있는 어좌(御座) 뒤의 이 일월오봉도 병풍을 통하여 왕이 참석했음을 나타냈다.

 

[무신년진찬도병(戊申年進饌圖屛) 中 부분]

 

일월오봉도병은 궁중에서 훈련된 화원들이 그린 최고 수준의 그림이다. 짙은 채색과 정교한 필선으로 소재 구성의 엄격한 좌우대칭을 통하여 화려하면서도 높은 품격이 돋보이도록 제작된 그림이다.

일월오봉도에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소나무, 물이 일정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다섯 봉우리 중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크게 화면의 중심이 되고, 그 양 옆에 솟은 두 봉우리 사이에 달과 해가 위치하며, 해와 달 아래 골짜기에서 폭포가 떨어져 산 아래의 물과 연결된다. 화면의 옆에 대칭적으로 솟은 자그마한 둔덕 위에는 역시 두 그루의 소나무가 대칭을 이루며 솟아있다.

이 구도는 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구성에 따라 누가 그리든 한결 같아야 하는 것이다.

 

[<일월오봉도병풍(日月五峯圖屛風)>, 견본채색, 병풍 169.5 x 364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20]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구구하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이 해와 달은 음양(陰陽)을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는 오행(五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천지만물과 우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미로 연결된다. 그런가 하면 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며, 오봉(五峰)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성스럽다는 전설상의 중국 곤륜산(崑崙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오악(五嶽)이라는 이름을 붙여 우리나라나 중국의 다섯 산을 거론하기도 한다. 또한 해와 달을 비롯하여 산, 소나무, 물 등은 하늘, 땅, 생물계의 영구한 생명력을 표방한 것으로 자손만대(子孫萬代)까지 번창하라는 기원(祈願)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런 해석과 결을 달리하는 해석도 있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천보(天保)’라는 편명(篇名)의 내용을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천보(天保)’는 하늘이 구여(九如)를 보전함 같이 임금이 장수(長壽)하기를 기원하고 축복하는 시이다. 시에 여(如)자가 아홉 번 나와 이를 ‘천보구여(天保九如)’라고도 한다.

 

【天保定爾 以莫不興 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以莫不增…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栢之茂 無不爾或承.

하늘이 당신을 안정시키사 모두가 흥성하네. 산과도 같고 언덕과도 같으며, 산등성이와도 같고 구릉과도 같으며, 시냇물이 막 흘러나오듯 불어나지 않는 것이 없네...달이 차오르 듯하며, 해가 떠오르는 듯하며, 남산이 불변하는 것과도 같아서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송백이 무성하듯 당신의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네.】

 

이 시에 나오는 사물들이 모두 일월오병도에 그려졌다는 것이다.

어느 해석이 애초 일월오봉도를 그린 뜻에 맞는지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모든 해석을 다 아우른 것일 수도 있다.

 

다 같아 보이는 일월오봉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의 차이들이 있다. 기본 구도는 같아도 세부 묘사와 경물의 위치는 조금씩 다르다.

 

[<일월오봉도병풍(日月五峯圖屛風)>, 견본채색, 병풍 169.5 x 364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11]

 

[<일월오봉도병풍(日月五峯圖屛風)>, 견본채색, 병풍 192.6 x 386.4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12]

 

[<일월오봉도병풍(日月五峯圖屛風)>, 견본채색, 병풍 169.6 x 448.2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17]

 

위 병풍은 산 표면의 질감이 섬세하게 표현된 점과 정중앙의 산봉우리와 양 옆의 산봉우리 사이에 물줄기를 배치한 점이 다른 일월오봉도와 다르다.

일월오봉도에서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위치가 조금씩 다른데, 정중앙과 양쪽 끝의 중간에 위치한 산봉우리에서 물이 흘러내리는 것도 있고, 중간 산봉우리와 양쪽 끝 산봉우리 사이에 물줄기를 표현한 것도 있다.

 

[<일월오봉도삽병(日月五峯圖揷屛)>, 견본채색, 삽병 190 x 150cm,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ㅣ 창덕6422]

 

[<일월오봉도삽병(日月五峯圖揷屛)> 중 그림 부분, 화면 149 x 126.7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22]

 

이 일월오봉도는 한 폭에 대형으로 그려 액자 형태의 나무틀을 두르고 별도의 받침대에 끼워 세우는 삽병(揷屛)이다. 이러한 삽병 형태의 일월오봉도는 어진 제작이나 봉안에 사용되었던 것이다.

 

일월오봉도가 창호로 제작된 경우도 있다. 아래 <일월오봉도창호(日月五峰圖窓戶)>는 벽장문으로 제작된 것이라 한다. 미서기형 문짝 네 개가 한 조를 이루어 하나의 일월오봉도를 이루는데, 왕과 관련된 실내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운데에 배치된 두 짝의 창호가 만나는 부분에 각각 하나씩 손잡이용 가죽 끈이 부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월오봉도창호(日月五峰圖窓戶)>, 견본채색, 창호 전체 147.8 x 232.6cm,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 ㅣ 창덕6448]

 

 

 

참고 및 인용 : 국립고궁박물관, 한국고전용어사전(200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그림(박은순, 2008,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