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병풍

병풍 30 -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從心所欲 2021. 1. 9. 12:00

글자의 의미와 관계있는 고사(古事)의 내용을 한자 획 속에 그려 넣어 서체를 구성한 그림을 문자도(文字圖)라고 한다.

 

[<문자도 8폭 병풍> 中 효(孝), 삼성미술관리움]

 

위 글자의 굵은 획 속에는 그림과 함께 글자가 들어있다. 빨간 원 안에 검은색으로 대순경우역산(大舜耕于歷山), 왕상구빙출리(王祥扣氷出鯉), 맹종읍죽(孟宗泣竹), 내자롱추친측(萊子弄雛親側) 등의 글자가 보인다. 이 말들은 모두 ‘효(孝)’와 관련된 고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대순경우역산(大舜耕于歷山)’은 아버지와 계모가 수도 없이 자신을 죽이려했는데도 끝까지 효를 다한 중국의 전설적 5제(五帝)의 하나인 순(舜)임금에 관한 고사다. 순임금이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을 때 그의 효성에 감동한 코끼리가 와서 밭을 갈아주고 새들이 날아와 김을 매주었다 내용이다.

‘왕상구빙출리(王祥扣氷出鯉)’는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종증조부로 삼국시대 위(魏)와 서진(西晉)사람인 왕상(王祥)이 계모가 한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여 강으로 가 얼음을 깨고, 물로 뛰어 들어가려는 순간 잉어 두 마리가 뛰어 올라왔다는 고사다.

‘맹종읍죽(孟宗泣竹)’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 사람 맹종(孟宗)이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竹筍)을 먹고 싶어 했지만 아직 죽순이 나오지 않아 구할 수 없게 되자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자 땅 속에서 죽순이 솟아나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다는 고사다.

‘내자롱추친측(萊子弄雛親側)’은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현인이었던 노내자(老萊子)가 70세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장난을 하면서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 주었다는 고사다.

위 고사에 나오는 순임금, 왕상, 맹종, 노내자는 모두 중국에서 꼽는 뛰어난 효자 24명을 가리키는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드는 인물들이다.

 

이렇듯 한문 글자 획에 그 뜻을 나타내는 그림을 함께 조합한 것을 문자도라 하는데, 글자 한 자로서 그치지 않고 여러 글자를 갖춘 글귀들이 동원되었다. ‘수복강령 부귀다남(壽福康寧 富貴多男)’이나 ‘효자충신 인의예지(孝子忠臣 仁義禮智)’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귀가 ‘효제충신 예의염치(孝悌忠信 禮儀廉恥)’였다.

이 구절은 주자(朱子)의 제자인 유자징(劉子澄)이 유교사회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도덕규범을 가려 뽑아서 엮은

「소학(小學)」에 나오는 것이다.

 

‘孝’는 설명이 필요 없는 유교 도덕규범의 기초가 되는 부모에 대한 공경이고, ‘悌’는 형제간의 우애, ‘忠’은 임금과 국가에 대한 충성, ‘信’은 사람 간의 믿음, ‘禮’는 사회를 지탱하는 예의, ‘義’는 올바름과 의로움, ‘廉’ 과 ‘恥’는 각각 청렴함과 부끄러움을 아는 덕목을 가리킨다. 즉, 이 여덟 자는 유교의 핵심 윤리를 요약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덟 글자를 옛 고사나 설화와 엮어 도안화한 것을 특별히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라 부른다.

 

효제문자도는 장식보다는 교육의 용도로 처음에 궁중에서 제작되었다가, 이후 양반가를 거쳐 서민층에게로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효제문자도는 크게 세 단계의 양식 변화를 보였다.

처음 도화서에서 그려질 때는 위의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문자도 8폭 병풍> 중 ‘효’와 같이 글자의 원형을 유지하며 글자 획 속에 각종 그림 장식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이 시기에는 주자가 직접 쓴 ‘효제충신예의염치’란 여덟 자의 필적에 의존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자도 8폭 병풍> 中 충(忠)과 신(信), 삼성미술관리움]

 

그러다 이후에는 원래 글자의 형태를 과감히 탈피하여 필획의 일부를 아예 그림으로 대체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즉 앞 단계에서 자획 내부에 표현되었던 소재들이 글자의 자획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즉 각 고사에 등장하는 잉어, 죽순, 새, 용 등의 상징물을 자획으로 활용함으로써 효제문자도가 보다 회화적으로 발전하였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八幅屛風)> 中 우측부터 4폭, 지본채색, 각 폭 97.8 x 32.3cm, 국립중앙박물관]

 

【산매자꽃 환히 피어 밝지 않은가,

지금 세상사람 중 형제만한 이가 또 있는가.

들의 할미새 형제 어려움 급히 구하네.】

 

『시경』소아(小雅) 상체(常棣)에 나오는 이 구절로 인하여 ‘悌’자에는 산매자나 할미새 또는 집비둘기 등이 상징물로 그려진다. 위 병풍에는 다자(多子)를 상징하는 연꽃과 함께 할미새가 그려졌다.

‘忠’자에는 황하(黃河) 상류의 용문(龍門)을 오르는 잉어는 용으로 변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를 인용하여 용과 물고기가 그려졌다.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가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信’자에는 가릉빈가(迦陵頻伽)와 쪽지를 물고 있는 새가 그려졌다. 가릉빈가(迦陵頻伽)는 인두조신(人頭鳥身)의 신조(神鳥)로 극락조(極樂鳥)라고도 한다. 쪽지를 물고 있는 새는 동방삭이 한무제의 궁전에 파랑새가 날아들자 “이것은 요지(瑤池)의 서왕모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오.”라고 하였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즉, 파랑새가 물고 있는 편지는 서왕모가 온다는 언약이며,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파랑새 대신에 고니가 그려지기도 하고 가릉빈가는 사람 얼굴을 하지 않은 새로도 그려진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八幅屛風)> 中 5 ~ 8폭, 지본채색, 각 폭 97.8 x 32.3cm, 국립중앙박물관]

 

‘禮’자에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신귀(神龜)의 등에 적힌 낙서(洛書)를 얻어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는 고사의 상징으로 거북이가 그려졌다.

‘義’자에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나타내는 삼국지의 인물이나 중요한 의식에 사용되던 상서로운 새의 상징으로 꿩 한 쌍이 그려졌다.

‘廉`자에는 성군(聖君)의 덕치(德治)를 상징하면서 “굶주려도 좁쌀은 쪼지 않는다”는 봉황이 그려졌다. 봉황 대신 게가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군자가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한다.

’恥`자에는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고사를 뜻하는 ‘천추청절 수양매월(千秋淸節 首陽梅月)’이라는 구절을 따와 매화와 달이 그려지거나 두 사람의 위패 또는 위패를 모신 사당이 그려졌다.

 

[<문자도병풍(文字圖屛風)>, 지본채색, 각 폭 134.5 x 46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17464]

 

[<문자도 6폭 병풍(文字圖六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57 x 282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91590]

 

그림이 획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면서 효제문자도는 더욱 회화적으로 변모하여 산수화, 인물화, 책가도, 화조화 등 다양한 다른 소재들과 결합하게 된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41.8 x 380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627]

 

아랫단에 산수도를 그리고 상단에 문자와 화제(畫題)를 배치하고 글자 획 내부는 남색 바탕에 붉은색의 선 무늬와 꽃문양을 가득 채웠다.

 

[<문자도6폭병풍(文字圖六幅屛風)>, 면본채색, 병풍: 162.5 x 260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57946]

 

그림을 반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글자와 관련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묵서되어 있고, 하단은 책거리 그림이 차지했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담채, 병풍: 154 x 440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62751]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새, 나무, 집, 사당, 산 등을 그렸고, 중단에는 문자가, 하단에는 수면 위로 머리와 꼬리를 드러낸 물고기가 그려졌다. 문자 내부는 새 문양과 단청(丹靑)의 휘 문양으로 장식되고, 문자 획 일부도 새의 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37.5 x 340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75776]

 

이 병풍도 역시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 도안된 문자를 배치하고 화면 우측 상단과 중앙에 화제(畫題)를, 하단에는 산수화(山水畵)를 그려 넣었다.

효제문자도가 이렇게 변해가는 중에 제주도에서는 제주도만의 특징을 갖는 효제문자도가 제작되었다. 아래 제주도의 문자도병풍은 상단과 하단에 꽃문양대를 두고 가운데에 문자를 배치한 3단으로 구성하였는데 특히 문자가 특이하다. 글자 획 내부에는 물결무늬를 바탕으로 꽃문양과 구름문양을 군데군데 넣었으며, 자획의 끝부분을 새와 물고기의 형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제주도 효제문자도의 큰 특징이라 한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67.5 x 404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045]

 

[<문자도8폭병풍> 중 ‘孝’,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045]

 

[<문자도8폭병풍> 중 ‘忠’,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045]

 

[<문자도8폭병풍> 중 ‘廉’,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045]

 

[<문자도8폭병풍> 중 ‘恥’,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29045]

 

이런 변화는 일반 서민들의 자유로운 미감과 상상력이 반영된 것으로 효제문자도가 민화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효제문자도는 추상화되기도 하고 간략화 되기도 하면서 원래의 교육적 취지는 사라지고 장식적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17 x 322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93207]

 

[<문자도8폭병풍(文字圖 八幅屛風)>, 지본채색, 병풍: 116 x 292cm, 국립민속박물관 ㅣ 민속062762]

 

 

참고 및 인용 : 한국민속예술사전(국립민속박물관), 우리 규방 문화(허동화, 2006, 현암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고전용어사전(200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