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버려야 얻는다.

從心所欲 2021. 2. 22. 08:04

산의 야생 열매들이 고르지 않고 크기도 작은 것은 돌봄을 받지 못해서이다. 그런 자연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과일들이 그런 열매를 맺게 되면 농사는 망친 것이다.

과일은 무작정 많이 열리는 것보다 열린 과일의 품질이 중요하다. 아무리 많이 열리더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이 역시 농사를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좋은 열매를 맺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 농부가 하는 일이다. 나무의 뿌리를 통하여 공급되는 영양분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무에 달린 열매가 많으면 분배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잘 받아먹어 튼실하게 자라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못 얻어먹어 자라다 말기도 하고 병이 드는 놈들도 있다. 그래서 농부는 나무에 달린 열매가 튼실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에 앞서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나무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너무 많은 열매가 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피자 한 판에 열 명이 달려드는 일이 없도록 막는 일이다. 그것이 가지치기다.

 

말로는 쉬어보이는 이 가지치기가 농부에게는 그 해의 농사를 가름하는 결정적 행사이자 갈등의 작업이다. 열매는 가지에 열린다. 그 가지를 자른다는 것은 그만큼 수확을 줄이는 일이다. 가지를 쳐주다보면 잘라낸 가지가 몇 트럭은 예사로 나온다.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잘라낸 가지만큼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이니 농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몇 톤의 과일을 미리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아깝지 않을 농부가 어디 있을까! 다수확과 튼실한 열매 사이에서 농부는 갈등한다. AI라도 동원해 가장 적절한 열매 수를 산출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농부가 자신의 짬밥으로 결정해야만 한다. 안 자르면 과실이 튼실하지 않을까 걱정이고 자르면 수확이 너무 적을까 걱정이다.

 

이 겨울에 농부는 추위 속에서도 일을 한다. 얼마나 잘라줘야 나무도 건강하고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 튼실할지를 고민하며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나무 가지를 받치고 있는 파이프들은 지난 해 농부의 욕심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가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일이 너무 많이 달려, 가지를 밑에서 받쳐준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가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나무 가지는 모두 하늘을 향하려는 천성을 갖고 있는데 걸린 열매들 무게 때문에 자꾸 땅으로 처지게 되니 나무는 그 가지를 위로 올리려고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나무는 나무대로 진을 빼고 걸린 열매도 튼실할 리가 없다. 그렇게 골병든 나무가 언제 다시 원기 회복할는지는 농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