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정선 사공도시품첩 6

從心所欲 2021. 3. 4. 04:22

사공도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열여덟 번째는 ‘실경(實境)’이다.

 

取語甚直 : 말을 선택함이 심히 직설적이고

計思匪深 : 생각을 따짐이 깊지 않도다.

忽逢幽人 : 숨어 사는 사람을 홀연히 만나니

如見道心 : 도심(道心)을 보는 것 같도다

淸澗之曲 : 맑은 골짝의 물굽이

碧松之陰 : 푸른 소나무 그늘.

一客荷樵 : 한 나그네 나뭇짐을 지고

一客聽琴 : 한 나그네는 거문고를 듣고 있다.

情性所至 : 성정(性情)은 이르는 곳에 있으나

妙不自尋 : 스스로 묘함을 찾지는 않는다.

遇之自天 : 하늘로부터 오는 것을 우연히 만나니

冷然希音 : 맑게 울리는 드문 소리로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실경(實境)> ⑦, 견본채색,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이 시품의 이광사 글씨는 유실되었다. 화평은 “화가가 우아한 묘미에 정성을 다하였다(曲盡畫家疎雅之妙)”라고 하여 정선은 모처럼 싫은 소리를 면했다.

 

열아홉 번째 시품은 ‘비개(悲慨)’로 ‘슬프게 개탄하다’의 뜻이다.

 

大風捲水 : 큰 바람이 물결 말아 올리고

林木爲摧 : 숲의 나무들이 꺾어진다.

意苦若死 :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 같으나

招憩不來 : 쉬어가라 불러도 오지 않는다.

百歲如流 : 인생 백년이 흐르는 물과 같고

富貴冷灰 : 부귀는 차가운 재가 되었다.

大道日往 : 대도(大道)는 날마다 쇠잔해지는데

若爲雄才 : 웅대한 재주가 있은들 무엇 하랴.

壯士拂劍 : 장사는 검을 닦으며

浩然彌哀 : 한없는 슬픔에 잠긴다.

蕭蕭落葉 : 우수수 낙엽지고

漏雨蒼苔 : 빗방울은 푸른 이끼위에 떨어진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비개(悲慨)> 첩에서 21번째 그림, 견본채색,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비개(悲慨)>, 정선 그림과 이광사 글씨ㅣ초서]

 

화평은 “형가전(荊軻傳)을 급히 천만 번 읽고 난 뒤에 이 그림을 보라(快讀荊軻傳千萬篇 然後試看此幅)”이다.

 

형가(荊軻)는 진(秦)나라가 침략한 연(燕)나라 땅을 되찾아 주거나 진왕(秦王, 뒤의 진시황)을 죽여 달라는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알현하는 자리에서 진왕을 죽이려 했다가 실패하여 목숨을 잃은 자객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스무 번째 시품인 ‘형용(形容)’은 사물의 형태를 설명하거나 본질을 그려내는 것이다.

 

絶佇靈素 : 잡념을 끊고 신령한 바탕을 기다리면

少回淸眞 : 짐짓 맑고 참된 모습으로 돌아간다.

如覓水影 : 물의 그림자를 찾는 듯 하고

如寫陽春 : 따뜻한 봄을 그려내는 듯하도다.

風雲變態 : 바람과 구름의 변화하는 모습

花草精神 : 꽃과 풀의 깨끗한 혼(魂)

海之波瀾 : 바다의 작은 물결과 큰 물결

山之嶙岣 : 산의 가파른 봉우리.

俱似大道 : 대도(大道)를 다 갖춘듯한데

妙契同塵 : 묘하게 속세(俗世)의 홍진(紅塵)과 섞인다.

離形得似 : 형태를 떠나 유사함을 얻는 것이

庶幾斯人 : 이 사람이 바라는 것과 가깝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형용(形容)> ③, 견본담채,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형용(形容)>, 정선 그림과 이광사 글씨ㅣ전서]

 

“혼탁하고 어지러운 바다 빛을 모두 숨김없이 그려냈다(混混海色, 輸寫殆盡)”고 화평을 달았다.

스물한 번째 시품은 ‘초예(超詣)’이다. 조예(造詣)가 깊은 것을 나타낸다.

 

匪神之靈 : 정신의 영험함이 아니고

匪幾之微 : 조짐의 정묘함도 아니다.

如將白雲 : 흰 구름을 거느린 듯이

淸風與歸 : 맑은 바람과 함께 돌아간다.

遠引若至 : 멀리 당겨 그곳에 이른 것 같으나

臨之己非 : 다가가보면 이미 그것이 아니도다.

少有道氣 : 어려서부터 도를 닦는 기상이 있어

終與俗違 : 끝내 세속과는 어긋나도다.

亂山喬木 : 어지러이 많은 산에 높이 솟은 나무

碧苔芳暉 : 푸른 이끼에 꽃다운 봄빛이로다.

誦之思之 : 그것을 외우고, 그것을 생각할수록

其聲愈稀 : 그 소리 더욱 희미해지도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초예(超詣)> ⑧, 견본담채,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이 시품의 이광사 글씨는 유실되었다.

화평은 “논과 들 사이의 성글고 가지조차 없는 늙은 나무를 볼 때마다 이 그림이 생각난다(余於田野之間 每見枯木疎而無枝 輒思此幅)”라고 하였다.

 

 

 

참고 : 사공도시품첩과 18세기 회화비평(유승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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