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정선 사공도시품첩 7

從心所欲 2021. 3. 5. 07:02

사공도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의 스물두 번째 시품은 ‘표일(飄逸)’이다. ‘성품이나 기상이 뛰어나게 훌륭함’을 가리키거나 ‘세상일을 마음에 두지 않는 탈속(脫俗)’을 의미한다.

 

落落欲往 : 어울리지 않고 가려고 하여

矯矯不群 : 교교하게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緱山之鶴 : 구산(緱山)의 학이요

華頂之雲 : 화산 봉우리의 구름이로다.

高人惠中 : 세상을 떠나 사는 고사(高士)의 마음에는

令色絪縕 : 상서로운 기색이 가득하도다

鄕風蓬葉 : 바람을 나부끼는 쑥 잎

泛彼無垠 : 저 멀리 떠서 자취도 없도다.

如不可執 : 잡을 수 없을 것도 같고

如將有聞 : 장차 소식이 있을 것도 같도다.

識者已傾 : 아는 자는 기다릴 것이고,

期之愈分 : 얻고자 하면 점점 더 나뉠 뿐이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표일(飄逸)> 첩에서 열아홉 번째 그림,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표일(飄逸)>, 정선 그림과 이광사 글씨ㅣ행서]

 

화평은 “정취는 툭 트여 넓고, 붓놀림은 간결하고 굳세다.(昭曠之趣 簡勁之筆“고 하였다.

스물세 번째 시품은 ‘광달(曠達)’이다. ‘도량이 넓고 크다’, ‘대범하고 의젓하다’의 뜻이다.

 

生者百歲 : 인생살이 백년

相去幾何 : 그 차이 얼마나 되랴.

歡樂苦短 : 환락(歡樂)은 아주 짧고

憂愁實多 : 우수(憂愁)는 실로 많도다.

何如尊酒 : 술통의 술 들고

日往煙蘿 : 날마다 안개 낀 덩굴 찾음이 어떠한가.

花覆茆簷 : 초가집 처마를 꽃이 덮고

疏雨相過 : 성긴 비가 지나간다.

倒酒旣盡 : 술잔 기울여 다 마시고는

杖藜行歌 : 지팡이 짚고 걸으며 노래한다

孰不有古 : 누구라서 옛사람 되지 않으랴.

南山峨峨 : 남산만은 변함없이 우뚝하도다.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광달(曠達)> ⑫,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광달(曠達)>, 정선 그림과 이광사 글씨ㅣ예서]

 

화평은 “이 같은 경관이 세상에 혹시 있을 것이지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如此景世或有之 而吾未之見也)”이다.

마지막 시품은 ‘유동(流動)’인데 ‘물 흐르듯 계속 움직임’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님’이다.

 

若納水輨 : 물 퍼 올리는 물수레 같기도 하고

如轉丸珠 : 구르는 둥근 구슬 같기도 하다.

夫豈可道 :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假體遺愚 : 형체를 빌려 말함도 어리석도다.

荒荒坤軸 : 지축(地軸)은 황막하고

悠悠天機 : 천기(天機)는 아득하도다.

載要其端 : 그 단서만 찾으면

載同其符 : 그 부합됨은 같을 것이로다.

超超神明 : 신명(神明)은 초연하고 초연하여

返返冥無 : 깊은 무(無)의 세계로 돌아가도다.

來往千載 : 천년을 두고 오고감은

是之謂乎 : 이를 두고 이른 것인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유동(流動)> 첩의 마지막 그림, 27.8 ×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 중 <유동(流動)>, 정선 그림과 이광사 글씨ㅣ초서]

 

화평은 “붓의 기세가 짙으면서도 살찌지 않고, 경물의 위치가 정돈되어 섞이지 않았고, 뜻을 씀이 깊어 솜씨를 자랑하지 않았다. 이 폭이 마땅히 제일의 자리를 차지해야 할 것이다. (筆勢濃而不肥, 位置整而不雜, 用意深而不巧. 此幅當處第一)“ 라고 하여, 이 그림을 첩의 그림 가운데 제일로 꼽았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기사년(1749년) 동짓달 하순에 74세 늙은이 겸재(己巳子月下院 七十四年翁謙齋)’라고 적혀있다. 또한 이광사도 ‘유동(流動)’ 시품을 초서로 쓴 말미에 신미년(1751년) 윤 5월에 경기도 광주의 견일정(見一亭)에서 썼다는 관지를 남겼다.

 

74세의 겸재라면 붓놀림의 굳건한 기력이 젊은 날에 비해 다소 떨어졌을지는 몰라도 그림의 경지로서는 남의 핀잔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공도는 시의 풍격을 24품으로 나누었지만 그 원칙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각각의 시품도 추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첩에 있는 정선의 그림들은 「이십사시품」의 내용과 취지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여 수준 높게 형상화했다는 것이 후세의 평가이다. 74세 정선의 그림 곳곳에 야멸친 화평을 남겨놓은 인물이 누구인지 계속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십사시품」을 쓴 사공도(司空圖)는 말년에 선인(先人)의 별장이 있던 산서성(山西省)의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서 명승(名僧), 고사(高士)와 어울려 시가를 읊으며 지냈다.

67세 때인 903년, 그는 무너지고 이지러진 옛 정자를 복원한 뒤 정자 이름을 휴휴정(休休亭)이라 바꾸고 그 내력을 이렇게 적었다.

 

【휴(休)란 쉰다는 뜻이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휴란 미를 갖추고 존재하는 것으로, 재주를 헤아려보니 첫 번째로 쉬어야하고, 분수를 헤아려보니 두 번째로 쉬어야 하고 귀가 어두우니 세 번째로 쉬어야 한다.

또한 젊어서 게을렀고, 어른이 되어서는 따라 다녔고, 늙어서는 세상 물정에 어두우니,

이 세 가지가 모두 세상을 구제함에 쓰임이 아니할세, 그러하니 쉬어야 마땅함이라.

(休, 休也, 美也. 旣休而具美存焉. 蓋量其才一宜休, 揣其分二宜休, 耄且瞶三宜.

又少而惰 長而率 老而迂. 時三者皆非濟時之用. 又宜休也.)】

 

 

 

참고 : 사공도시품첩과 18세기 회화비평(유승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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