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신윤복의 또 다른 풍속화첩일까?

從心所欲 2021. 3. 8. 12:39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에 그냥 「풍속도첩(風俗圖帖)」으로만 이름을 올린 화첩이 있다. 작가는 ‘전(傳) 신윤복(申潤福)’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를 신윤복의 작품이라고 확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전체 일곱 면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화첩의 그림들은 남녀 간의 야릇한 관계를 암시하는 그림들이 다수 있다. 그림에 낙관도 없고 필치가 꼭 신윤복의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중에는 그림에 담아낸 춘의(春意)나 몇몇 인물묘사를 보면 꼭 신윤복이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익히 보던 신윤복의 그림들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이 화첩이 신윤복의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옛그림을 대하는 심정으로 보고 즐기면 될 것 같다.

 

화첩의 첫 그림은 화조도이다. 화첩의 다른 그림들은 모두 풍속화인데 이 그림만 그렇다. 서로 다른 그림의 크기 등을 종합하면 이 화첩은 화가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수집가가 자신이 모아 놓은 그림들을 묶어놓은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첩의 그림 제목 중 ‘아가씨’가 들어간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붙인 것이고 나머지는 글을 쓰는 편의를 위하여 임의로 붙인 것이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화조도, 국립중앙박물관]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자리 짜기, 25.1 x 37.3cm, 국립중앙박물관]

 

속곳을 걷어 올려 허벅지까지 드러낸 여자가 가랑이를 벌리고 앉은 모습을 한참을 궁리한 끝에 여인이 자리 짜는 재료를 자신의 무릎에 비벼 말아 끈을 만들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리 짜는 여인의 모습에서 춘의를 찾아낸 화가의 발상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밭 메다가, 25.1 x 37.3cm,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옛 그림에서 이렇게 건장해 보이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남자의 모습이 70년대 북한 선전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의 포즈처럼 역동적이다. 건장한 남자의 팔에 손목을 잡힌 여인의 모습 또한 건강하면서도 야릇하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서생과 아가씨, 25.1 x 37.3cm, 국립중앙박물관]

 

이웃집 처녀가 평소 사모하는 이웃집 서생을 엿보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을 보면 첩의 그림들이 더욱 신윤복의 것처럼 느껴진다. 남자인 서생의 모습은 얄상하게 그린데 반하여 처녀의 얼굴은 넙다대하니 좀 못나 보인다.

화가의 여인 그리는 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화가는 얼굴이 못난 처녀가 이웃집의 잘생긴 서생을 사모하는 모습을 그리려 했을 것이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영감님과 아가씨, 19.7 x 23cm, 국립중앙박물관]

 

어떤 중년 선비가 방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중에 방 앞을 지나가는 처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흘깃 본 그 자태가 어찌나 곱게 느꼈던지 선비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체면 불구하고 상체를 방 바깥으로 한껏 내밀어 뒷모습을 쳐다보는데, 그만 넋이 빠져 들고 있던 담뱃대마저 떨구었다. 이런 춘의를 생각해낼 수 있는 감성과 그것을 그릴 용기와 또 그려낼 실력을 갖춘 화가가 조선 후기에 신윤복 말고 누가 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속에 무지기치마를 입은 처녀의 치마를 여민

모양도 신윤복 그림에서 흔히 보던 필치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양반과 남사당패, 국립중앙박물관]

 

사당패로 보이는 왼쪽 두 남녀가 담뱃대를 물고 있는 양반을 보고 있다. 양반의 시선 또한 두 남녀를 향하고 있는데 두 남자의 표정이 모두 심상치가 않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도는 이 분위기가 무엇 때문이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그림 인물들의 얼굴 모습은 「혜원전신첩」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많이 닮아 보인다.

 

[전(傳) 신윤복(申潤福) 풍속도첩 中 밭일하는 여인들, 19.7 x 23cm, 국립중앙박물관]

 

이 그림에는 여자들만 등장하고 남자는 없다. 앞의 그림들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만 이 그림에는 유독 입 부분에 누가 일부러 덧칠을 해놓아 여인들의 표정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음란마귀가 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밭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조차도 화가는 나름 춘의를 갖고 그린 그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화가는 왠지 신윤복일 것만 같다.

 

 

 

참고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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