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3 - 수령의 소임은 백성의 소망에 부응하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從心所欲 2021. 3. 11. 06:19

[김홍도필풍속도병풍(金弘道筆風俗圖屛風) 일명 김홍도필 행려풍속도 8폭 中 5, 1795년, 지본담채, 병풍 각 폭 : 142 x 38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3조 사조(辭朝) 5.

임금을 하직하고 궐문을 나서게 되면 개연(慨然)히 백성들의 소망에 부응하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마음속에 다짐해야 한다.

(辭陛出門 慨然以酬民望報 君恩 設于乃心)

▶사조(辭朝) : 관직에 새로 임명된 관원이 부임하기에 앞서 임금에게 사은숙배하고 하직하는 일.

 

임금을 하직하는 날에는 수령칠사(守令七事)를 임금 앞에서 외거나 혹은 승정원(承政院)에서 강론하기 마련이니,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전폐(殿陛)에서 오르내리는 절차와 연석(筵席)에서 엎드리고 일어나는 태도를 마땅히 아는 자에게 익숙히 들어 두어야만 거의 실수가 없을 것이다.

▶전폐(殿陛) : 전각(殿閣)의 섬돌. 궁전의 계단

▶연석(筵席) :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묻고 대답하면서 경전(經典)을 강론(講論)하거나 시사(時事)를 의논하는 자리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우왕(禑王) 원년에 교서(敎書)를 내려 수령의 고적(考績)을 다섯 가지 일로써 하니, 전야(田野)가 넓어지고, 호구(戶口)가 늘고, 부역(賦役)이 고르게 되고, 소송이 간편하고, 도적이 종식되는 것 등이었다. - 이보다 앞서 현종 9년(1018)에 주부(州府)의 지방 관원이 봉행해야 할 6조를 정했는데, 1. 백성의 질고(疾苦)를 살피고 2. 수령의 능부(能否)를 살피고 3. 도적과 간활(奸猾)의 무리를 살피고 4. 백성들이 금법을 범했는가 살피고 5. 백성의 효제염결(孝悌廉潔)한 자를 살피고 6. 향리(鄕吏)의 전곡(錢穀) 손실을 살피는 일 등이 있었다. -

 

창왕(昌王)이 즉위하자, 조준(趙浚)이 글을 올려, 전야의 확장, 호구의 증식, 소송의 간편, 부역의 균평, 학교의 진흥 등 다섯 가지 일로써 주군을 순찰하여 지방관을 내치고 승급시키는 기본을 삼자고 청하였다.

본조(本朝)의 《경국대전》에는 더 보태어 일곱 가지 일로써 하니, 농상(農桑)의 번성, 호구의 증식, 학교의 진흥, 군정(軍政)의 정비, 부역의 균평, 소송의 간편, 간활의 종식 등이다.

▶고적(考績) : 관원의 근무 성적 평가

▶효제염결(孝悌廉潔) :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友愛), 청렴(淸廉)하고 결백(潔白)함

▶농상(農桑) : 농사와 누에치는 것. 근대 이전의 농업 일반을 가리키는 의미.

간악(奸惡)하고 교활(狡猾)함

▶간활(奸猾) : 간악(奸惡)하고 교활(狡猾)함

 

《당서(唐書)》 〈순리열전(循吏列傳)〉의 서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치민(治民)의 근본이 자사(刺史)보다 중한 것이 없는 까닭에 자사는 대궐에서 임명을 받는데, 그날에 편전(便殿)에 들어가 임금을 알현하면 임금이 옷을 주어 떠나보낸다.”

서거정(徐居正)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살피건대, 성상(聖上)께서 백관의 간택을 신중히 하시되 수령의 선발을 더욱 중히 여기사 그 선발에는 반드시 의정부와 전조(銓曹)가 함께 천거하도록 하여 문리(文理)와 이치(吏治)에 통하는 자를 품계와 국량(局量)을 살피어 임명하시고, 이를 보낼 때에는 반드시 내전에 들라 하여 따뜻하고 자상하게 타이르시며, 다섯 가지 일로써 힘쓰게 하고, 십고(十考)에 다 상(上)을 맞는 사람은 반드시 등급을 뛰어서 중용(重用)하시니, 내직의 관리에게는 이러한 예가 없음은 수령을 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살피건대, 서사가(徐四佳)는 세조 때의 사람인데, 오히려 다섯 가지 일로써 말하였으니, 수령칠사는 대개 성종(成宗) 이후에 개정된 바일 것이다.

▶자사(刺史) : 중국의 지방 관리

▶편전(便殿) :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면서 정사(政事)를 보는 궁전.

▶서거정(徐居正) : 세종에서 성종까지 6대의 왕을 섬긴 문신이자 문장가(1420 ~ 1488).

▶전조(銓曹) : 문무관(文武官)을 전형(銓衡)하는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통칭. 수령의 인사는 이조의 소관이다.

▶이치(吏治) : 백성을 다스리는 실무.

▶십고(十考) : 관원의 근무 성적을 해마다 두 번씩, 경관(京官)은 각 관아의 장관이, 지방관은 감사가 상ㆍ중ㆍ하 세 등급으로 매기는데 10고(十考)는 벼슬아치의 근무 성적을 임기 5년 동안에 열 번 고과(考課)하는 일.

▶서사가(徐四佳) : 서거정의 호가 ‘사가정(四佳亭)’이었다.

 

우연릉(于延陵)이 건주(建州)의 자사(刺史)로 임명받고 들어가 임금에게 하직하자, 임금이,

“건주가 서울에서 얼마나 먼가?”

하고 물으매,

“8천리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임금은,

“경이 거기에 도착하여 정사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짐(朕)이 모두 다 알 수 있으니, 그곳이 멀다고 생각지 말라. 이 섬돌 앞이 바로 만 리다.”

하였다.

 

《자균암만필(紫筠菴漫筆)》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곡산 도호부사(谷山都護府使)가 되어 - 가경(嘉慶) 정사년(1797) 7월 - 하직하는 날 들어가 희정당(熙政堂)에서 임금을 뵈오니, 임금이 이르기를 ‘옛 법률에 수령이 탐욕 불법하거나 나약하여 직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전관(銓官)에게 죄가 돌아간다. 그러므로 중비(中批)로써 임명된 자는 더욱 삼가고 두려워하니, 전관에게 죄를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중비로 임명했다가 여러 번 후회를 하고서도 또 경계치 아니하고 이름을 더 써 넣어 낙점(落點)했으니, - 이때 전조(銓曹)에서 세 번이나 다른 사람을 천거했으나 임금이 내 이름을 더 써 넣었다. - 이는 중비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가서 잘하여 나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내가 황공하여 진땀이 등에 배었는데, 지금에 이르도록 감히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자균암만필(紫筠菴漫筆)》 : 정약용의 저서로 여유당전서에 목록만 있는 <균암만필>로 추정되고 있다. <균암만필>은 1책 64장으로 구성되었다는 기록만 있고 책은 전하지 않는다.

▶전관(銓官) : 문무관(文武官)의 전형을 맡아보던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관리

▶중비(中批) : 규정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금의 특별지시로 관리를 임명하던 일

▶낙점(落點) : 관원을 선임(選任)할 때에 전조(銓曹)에서 올린 삼망(三望)의 후보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 위에 임금이 친히 점을 찍어 뽑는 일.

 

임금을 하직하고 대궐 문밖에 나와서는 곧 몸을 돌려 대궐을 향하고 마음을 세워 스스로 맹세하여 속으로 말하기를,

“임금께서 천사람 만 사람의 백성들을 오로지 나 소신(小臣)에게 맡기어 사랑해서 다스리게 하시니, 소신이 그 뜻을 공경히 받들지 아니하면 죽어도 죄가 남으리라.”

하고 몸을 돌이켜 말을 타야 할 것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