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5 - 부임하는 행차는 간소하고 진중하게 하라.

從心所欲 2021. 3. 13. 05:20

[김홍도필풍속도병풍(金弘道筆風俗圖屛風) 일명 김홍도필 행려풍속도 8폭 中 7, 1795년, 지본담채, 병풍 각 폭 : 142 x 38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4조 계행(啓行) 1

부임하는 길에 있어서는 또한 정중하고 화평하며 간결하고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하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

(啓行在路 亦唯莊和簡默 似不能言者)

▶계행(啓行) : 부임하는 행차

 

행차는 반드시 일찍 출발하고 저녁에는 반드시 일찍 쉬도록 해야 한다. 말에 올라서 동이 트기 시작하고 말에서 내려 해가 미처 지지 않으면 좋다.

수리(首吏)를 불러서 이렇게 약속해야 할 것이다.

“하인(下人)이 밥을 먹었으면 곧 진지(進支) - 곧 존자(尊者)의 식사. - 를 올리고, 말에 올라서 동이 트기 시작하면 좋으니 알아서 거행하라.”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수령은 미리 약속도 없이 일찍 일어나 밥을 재촉하고 곧장 말에 오르니, 하인이 밥상을 받아 놓고도 먹지 못한 채 일어서는 경우가 많다.

말을 빨리 몰지 말라. 말을 빨리 달리면 내 성질이 경박하고 조급하게 보이게 된다.

작은 길이 꾸불꾸불한 곳에서는 돌아보지 말라. 돌아보면 말을 탄 이속(吏屬)들이 진흙구덩이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니 또한 생각해 주어야 한다. 돌아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세에 따라서는 외면하기도 하여 그들이 용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도중에서는 몸을 굽히지 않는 아전이 있더라도 책망하지 말고, 묵연히 말 못하는 사람처럼 하라.

 

도중에서의 매일 세 끼의 반찬으로는 국 한 그릇, 김치 - 곧 침채(沈菜)다. - 한 그릇, 장 한 종지 외에는 네 접시를 초과하지 말라. 네 접시라는 것은 옛날의 이른바 이두이변(二豆二籩)이다. 점주(店廚)에서 먹을 때에도 이 숫자보다 덜하지 말고, 행주(行廚) - 곧 이른바 지응(支應)이다. - 에서 먹을 때에도 이 숫자보다 더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쓰이는 물품은 하인들에게 맡겨 잔소리를 하지 말며, 쓰는 바가 많고 적은 것도 결코 따져서는 안 된다.

만약, 잔현(殘縣)으로 목천(木川)이나 연기(燕岐)처럼 녹(祿)이 박한 경우에는 마땅히 두 접시로써 정식(定式)을 삼아야 한다.

▶이두이변(二豆二籩) : 두(豆)와 변(籩)은 모두 제사와 잔치에 쓰는 기구이다. 두는 김치, 젓갈을 담는 나무로 만든 그릇이고, 변은 실과를 담는 대로 만든 그릇.

▶점주(店廚) : 행객이 머무는 숙소의 주방. 주막을 가리키기도 한다.

▶행주(行廚) : 행차할 때 임시로 차리는 주방.

▶지응(支應) : 벼슬아치가 공무로 어느 곳에 갔을 때, 필요한 물품을 당해 관아에서 대어주는 일.

▶잔현(殘縣) : 재정이 궁색한 고을. 대동미(大同米)의 유치미(留置米)에서 지출되는 관수미(官需米)가 수령의 녹이 되므로 잔현(殘縣)에서는 수령의 녹이 박하다.

▶목천(木川)ㆍ연기(燕岐) : 목천은 천안의 옛 지명이고 연기는 현 세종특별자치시 지역.

 

우리나라의 풍속에 행차에는 권마성(勸馬聲)이 있는데, 이는 떠들썩하게 하지 말라는 뜻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행차가 교외(郊外)에 이르면 수리(首吏)를 불러서 이렇게 약속해야 한다.

“나는 권마성을 매우 싫어하니, 마을을 지날 때에는 권마성을 한 번만 하고, 고을을 지나거나 고을에 들어가거나 고을에서 나오거나, 역참(驛站)에 들어가거나 역참에서 나오거나 할 때에는 세 번을 넘지 말라. 만약 이 번수를 초과하면 너에게 죄를 지우겠다.”

▶권마성(勸馬聲) : 임금이나 봉명관(奉命官) 또는 수령이 말이나 가마ㆍ쌍교(雙轎)를 타고 행차할 때에 위세를 더하기 위하여 앞에서 하졸들이 목청을 가늘고 길게 빼어 부르는 소리.

▶역참(驛站) : 역마를 갈아타는 곳.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공(車攻)〉에,

“그대가 먼 곳에 가는데, 소문만 있었지 소리는 없구나.”

라고 하였는데, 군자의 행차는 그 엄숙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풍속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여 많은 추종들이 벼슬아치를 옹위(擁衛)하고 잡된 소리를 어지러이 발하여 백성이 바라보기에 엄숙하고 장중한 기상이 없어 보인다. 무릇 근엄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은 반드시 이런 소리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성을 위하여 수령이 된 자는 비록 말을 타고 있더라도 마땅히 지혜를 짜내고 정신을 가다듬어 백성에게 편의한 정사(政事)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결같이 들뜨기만 하면 어찌 침착하고 세밀한 생각이 나올 수 있겠는가?

 

여혜경(呂惠卿)이 연주 지사(延州知事)가 되어 길이 서도(西都)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 무렵 정이천(程伊川)이 문인(門人)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여길보(呂吉甫)의 이름은 들었으나 아직 안면이 없으니, 아침에 내 집 문 앞을 지나면 한 번 보리라.”

하고 이윽고 물어보니 지나간 지 오래되었다. 이천(伊川)은 차탄하여,

“수행자 수백 인과 말 수십 필을 능히 조용히 소리 없게 하였으니, 이와 같이 여러 사람을 부리는 것은 정숙(整肅)하다고 할 만하다. 조정에 있어서 한 일은 비평 들을 것이 많았지만 그 재주는 또한 어찌 가릴 수 있겠는가.”

하였다.

▶여혜경(呂惠卿) : 중국 송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의 추천을 받아 대소정사(大小政事)의 기획에 참여하였던 관리. 길보(吉甫)는 자이다.

▶정이천(程伊川) : 송(宋)의 유학자인 정이(程頤). 호가 이천(伊川)이다.

 

행차가 교외(郊外)에 이르면 수리(首吏)를 불러서 이렇게 약속해야 할 것이다.

“길에서 선비를 만났을 때 선비가 나 때문에 말에서 내리는 데도 너희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으면 너희에게 죄를 주겠다. 비록 걸어가는 자일지라도 만약 양반임이 분명하면 너희들은 말에서 내려라. 혹시 말썽이 있으면 너에게 죄를 주겠다.”

근세(近世)에는 아전들의 습성이 날로 교만해져서, 심지어는 조정의 관리나 명망 있는 선비가 수령을 만나 말에서 내리는 데도 수령을 수행하는 아전은 방자하게 말을 달리며 돌아보지 않고, 수령도 이러한 아전을 비호(庇護)하고 훈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방과 욕을 무더기로 듣는 일이 많으니 아전 단속은 반드시 지엄하게 해야 한다.

 

부임길의 중도에 아전과 하인이 죄과를 저지르면 작은 잘못과 우연히 저지른 잘못은 아울러 간략히 처리하고 큰 잘못과 고의로 저지른 잘못은 형리(刑吏)를 불러서 부과(附過)하여 두었다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그를 불러서 책망하되 끝내는 모두 용서하는 것이 좋다. 천리 길을 동행하는 자를 도중에서 채찍질과 종아리질을 낭자히 하고, 임지에 도착한 뒤에는 처벌하여 용서치 않는 것은 인정이 아니다. 다만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부과(附過) : 명부에 적어 두는 것

 

부임길의 중도에 고을에 머물러 있는 공형(公兄)의 문보(文報)를 받으면 마땅히 ‘도부(到付)’라고 하거나 혹은 ‘지실(知悉)’이라고만 제사(題辭)할 것이지 장황하게 사리를 논해서는 안 된다. 만일 긴요한 일이 있으면 수리(首吏)로 하여금 사사로이 통기하도록 한다.

부임길의 중도에서 고을 백성의 소첩(訴牒)이 있을 경우에는 단지,

“부임한 후에 와서 진정하라.”

고만 제사할 것이지 사리를 논해서는 안 된다.

▶공형(公兄) : 조선시대 각 고을의 호장, 이방, 수형리(首刑吏, 형방)의 3관속

▶문보(文報) : 보고문. 보고서.

▶도부(到付) : 받았다는 뜻.

▶지실(知悉) : 알았다는 뜻.

▶제사(題辭) : 관부(官府)에서 백성이 제출한 소장(訴狀) 또는 원서(願書)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

▶소첩(訴牒) : 진정서 또는 고소장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