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6 - 부임길의 미신을 타파하라.

從心所欲 2021. 3. 16. 05:36

[김홍도필풍속도병풍(金弘道筆風俗圖屛風) 일명 김홍도필 행려풍속도 8폭 中 8, 1795년, 지본담채, 병풍 각 폭 : 142 x 38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4조 계행(啓行) 2

지나가는 길에 미신으로 기휘(忌諱)하는 것이 있어 정로(正路)를 버리고 먼 길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으나, 반드시 정로로 지나감으로써 사특하고 괴이한 말을 타파해야 한다.

(道路所由 其有忌諱 舍正趨迂者 宜由正路 以破邪怪之說)

▶계행(啓行) : 부임하는 행차

▶기휘(忌諱) : 꺼리거나 두려워 피함

▶정로(正路) : 바른 길. 마땅히 가야할 길.

 

노준(盧遵)이 전의령(全義令)이 되어 그 성(城)을 보니 북문을 틀어막고 다른 곳을 뚫어서 출입하였다. 그가 물으니, 문지기는 백 년도 넘었다고 말하고, 어떤 자는,

“무당(巫堂)이 현령(縣令)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틀어막았다.”

라고 말하고 또 어떤 자는,

“손님들이 너무나 많아서 음식 접대하는 비용이 많으므로 접대하는 사람이 손님들의 길을 우회시키기 위하여 문을 틀어막았다.” 말하였다.

노준은,

“이는 인색하거나 속임수가 아닌가? 현자(賢者)의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생각하는데 이에 반대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다. 내가 그 문을 회복하리라.”

하고, 상급 관청에 아뢰니, 상급 관청에서는 이를 허락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편리하게 여겨 마을에서 기뻐 춤추었다. 주민들은 그냥 그대로 눌러 살려고 하였으며 나그네는 즐거이 그 고을 길을 드나들었다.

▶노준(盧遵) : 중국 당나라 때 인물로 관리이자 문학가였던 유종원(柳宗元)의 제자

 

《남사(南史)》에 보면, 하후상(夏侯詳)이 상주자사(湘州刺史)가 되었는데 성(城)의 남쪽에 높은 봉우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말에,

“자사가 이 봉우리에 오르면 곧 해직 당한다.”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산에 올라가 본 자사가 아무도 없었다. 하후상이 이에 그 봉우리에 대(臺)를 쌓아 요속(僚屬)들을 맞이함으로써 자기 관직을 가볍게 여기는 뜻을 보였다.

▶남사(南史) :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왕조인 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의 170년 역사를 서술한 책으로 당(唐)나라 이연수(李延壽)가 지었다.

▶하후상(夏侯詳) :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양(梁)나라 사람으로, 양 무제(梁武帝) 때 상주 자사(湘州刺史)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자사(刺史) : 중국(中國)의 지방(地方) 관리(官吏)

▶요속(僚屬) : 지위가 낮은 관료붙이

 

손순효(孫舜孝)가 영남순찰사(嶺南巡察使)가 되었는데, 영해(寧海)에 서읍령(西泣嶺)이 있었다. 속담(俗談)에,

“사신(使臣)이 만약 이 재를 처음 넘으면 반드시 흉사(凶事)가 있을 것이다.”

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 고개를 피하였다. 그는 고개 위에 바로 이르러 고목나무 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시를 지어 쓰기를,

 

汝揖華山呼萬歲 너는 화산(華山)에 절하여 만세 부르고

我將綸命慰群氓 나는 왕명(王命)을 받들어 뭇 백성을 돌보노라

箇中輕重誰能會 어느 편이 더 중요한지 뉘라서 알랴?

白日昭然照兩情 밝은 해는 양쪽 다 환히 비춰주누나.

 

하였다. 이에 고개의 이름을 파괴현(破怪峴)이라고 고쳤다.

▶손순효(孫舜孝) : 1427 ~ 1497. 조선시대 문신.

▶순찰사(巡察使) : 조선시대 도 안의 군무를 순찰하는 벼슬. 각 도의 관찰사(觀察使)가 겸임한다. 순상(巡相)ㆍ순사(巡使)라고도 한다.

▶영해(寧海) :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에 속한 고을 이름

▶서읍령(西泣嶺) : 경상북도 영덕군과 영양군 사이의 고갯길

▶너는 …… 부르고 : 백성이 만세를 불러 임금을 축수하는 것. 화산(華山)은 중국 오악(五嶽)의 하나로, 한 무제(漢武帝)가 화산(華山)에 제사하고 숭산(嵩山)에 올라 봉제(封祭)를 지낼 때 어느 곳에서 만세 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진산(鎭山)인 화산(華山), 즉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만세를 부른다는 의미.

▶파괴현(破怪峴) : ‘괴이함을 깨뜨리는 고개’라는 의미.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