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7 - 아전들이 말하는 금기(禁忌)에 현혹되지 말라.

從心所欲 2021. 3. 18. 10:47

[<필자미상경직도(筆者未詳耕織圖)> 8폭 中 2폭, 지본담채, 102.7 x 47.3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4조 계행(啓行) 3

관아에 귀신과 요괴가 있다고 하거나 아전들이 금기(禁忌)를 고하더라도 마땅히 아울러 구애받지 말고 현혹된 습속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廨有鬼怪 吏告拘忌 宜竝勿拘 以鎭煽動之俗)

▶계행(啓行) : 부임하는 행차

 

동한(東漢) 때에 왕돈(王忳)이 미현(郿縣)의 수령에 임명받고 부임하여 시정(漦亭)에 이르니, 정장(亭長)이,

“정(亭)에는 귀신이 있어 지나가는 나그네를 자주 죽이니 잘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왕돈이,

“인(仁)은 흉사(凶邪)를 이기고 덕(德)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치니 어찌 귀신을 피하랴.”

하고, 바로 정(亭)에 들어가 머물러 잤다. 밤중에 들으니 여자가 억울함을 말하되, 정장에게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였다. 왕돈이 이튿날 아침 유격(游檄)을 불러 힐문(詰問)하니, 죄를 낱낱이 자백하므로 곧 정장을 잡아 가두었다.

▶동한(東漢) : 후한(後漢)의 별칭. 한 광무제(漢光武帝)가 동경(東京), 즉 낙양(洛陽)에 도읍한 때문에 이렇게 일컬어진 것이다. 장안(長安)을 수도로 하였던 전한(前漢)을 서한(西漢)이라 하는 데 대한 대칭(對稱).

▶정장(亭長) : 숙역(宿驛)의 장(長)이다. 진한(秦漢) 때의 제도로, 10리에 1정(亭)을 두고 정마다 장(長)이 있는데, 도적의 체포와 취조를 맡았다.

▶유격(游檄) : 한대(漢代)에 향리를 순찰하며 도적을 막는 일을 맡았던 관명.

 

진(晉)나라 때 악광(樂廣)이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는데 관사(官舍)에 요괴(妖怪)가 많아 전임 부윤(府尹)은 감히 거처하지를 못하였다. 악광이 뒷날 벽 구멍 속에서 삵[貍]을 잡아 죽이니 드디어 요괴가 없어졌다.

▶하남윤(河南尹) : 하남은 부(府)의 이름. 윤(尹)은 부윤(府尹)으로 부(府)의 정사를 맡은 장관.

▶삵[貍] : 살쾡이

 

양(梁)나라 때 부소(傅昭)는 좌호상서(左戶尙書)를 역임하고 안성현 내사(安成縣內史)가 되었다. 고을에서는 송(宋)이래로 병란(兵亂)이 연이었으므로 관사(官舍)는 흉가로 일컬어졌다. 밤중이나 새벽에 사람과 귀신이 서로 맞닥뜨려 재임자가 좋게 임기를 마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부소가 도임하자, 어떤 사람이 밤에 보니 갑옷과 군기를 가진 군사가 나타나,

“부공(傅公)은 착한 사람이니 침범할 수가 없다.”

하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로부터 고을에는 드디어 변괴가 없어졌다.

 

조극선(趙克善)이 면천 군수(沔川郡守)가 되어 부임하러 가는데, 아전이 금기(禁忌)가 있다 하여 길을 둘러 갈 것을 청하였고, 귀신과 요괴가 있다 하여 아사(衙舍)를 옮길 것을 청하였으며, 또 택일(擇日)하여서 부임할 것을 청하였으나 모두 들어 주지 않았다.

또, 당(唐)나라 이길보(李吉甫)와 우리나라의 이위국(李緯國)은 모두 임지에서 죽은 전임자의 관직을 이었으나, 옛 관사(官舍)를 꺼리지 않았다. 뒤의 해관편(解官篇) - 은졸조(隱卒條) - 에 보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조극선(趙克善) : 1595 ~ 1658. 조선 문신.

▶아사(衙舍) : 조선시대 지방관이 정무(政務)를 보던 건물인 동헌(東軒)을 가리킴. 지방관의 생활 처소는 내아(內衙) 또는 서헌(西軒)이라 하였다.

▶이길보(李吉甫) : 당(唐)나라 사람으로 요주 자사(饒州刺史)로 부임하자, 전 자사(刺史)가 넷이나 죽어 주성(州城)에 요물이 있다 하여 버려두고 거처하지 않았으나, 이길보는 풀을 베어 내고 일을 보았다.

▶이위국(李緯國) : 1597 ~ ?. 조선 문신. 상원 군수(祥原郡守)ㆍ이천 부사(伊川府使)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청렴 강직하였다.

▶뒤의 해관편(解官篇) :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마지막 편(篇)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