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9 - 길일을 골라 부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從心所欲 2021. 3. 22. 11:32

[김홍도 외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中 부분1, 지본채색, 전체 25.3 x 633cm, 국립중앙박물관]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는 황해도 안릉(安陵)에 새로 부임하는 관리의 행차를 긴 두루마리에 그린 행렬도이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의궤도에 보이는 반차도(班次圖) 형태로 그려졌다. 그림에 달린 글에 의하면 김홍도에게 그리게 했다고 적혀있지만, 그림의 세부 필치에 차이가 있음을 근거로 후세에서는 여러 화원 화가들이 함께 그렸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있다.

그림은 행차의 맨 선두로 ‘행차에 앞서 길을 깨끗이 하거나, 다른 사람의 통행을 금하는’ 청도(淸道)기를 비롯하여 감문(監門), 순시(巡視), 홍문(紅門), 주작(朱雀), 청룡(靑龍), 백호(白虎) 등 각종 의장기(儀仗旗)를 든 기수 48명의 앞부분이다.

 

 

●부임(赴任) 제5조 상관(上官) 1

부임할 때에 날을 받을 것이 없고 비가 오면 개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上官不須擇日 雨則待晴 可也)

▶상관(上官) : 관리가 임지에 부임하는 것

 

도임할 때 택일(擇日)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고파직(封庫罷職) - 암행어사가 탐관(貪官)을 내쫓으려면 반드시 관고(官庫)를 봉한다. - 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폄하(貶下)가 되어 파직되는 사람도 있고, 사고를 만나 떠나는 사람도 있다. 앞사람들이 징험이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따르겠는가?

▶폄하(貶下) : 감사가 수령을 고과(考課)하는 데 있어 등급이 가장 낮은 하(下)를 주는 것.

 

매양 보면, 신관(新官)이 이미 가까운 곳에 당도하여서 혹은 하루에 겨우 한 역참(驛站)만 가기도 하고, 혹은 종일 지체해서 길일(吉日)을 기다리기도 한다. 읍(邑)에 남아 있는 이속(吏屬)들은 수군수군 비웃으며 그의 슬기롭지 못함을 추측하게 될 것이요, 부임 행차를 따르는 관속들은 집 생각에 마음이 초조한데 앉아서 노자만 소비하므로, 모두들 그 곤란을 원망할 것이다. 길일(吉日)이 도리어 원망을 당해내지 못하니 필경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다만 부임하는 날 비바람이 치고 일기가 흐리면 백성들의 이목을 새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니, 청명한 날씨를 잠깐 기다림이 좋을 것이다.

 

기치(旗幟)는 폐단이 있으므로, 다만 영기(令旗) 두 쌍만 쓰고 - 위의 제배조(除拜條)에 나와 있다. - 그 나머지 관속들의 영접하는 절차는 전례에 따라 거행하도록 할 것이다.

고을의 경계에 들어서면 말을 달리지 말도록 단속하고, 길가에 나와서 구경하는 사람을 금하지 말 것이며, 읍에 들어서면 더욱 말을 달리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무겁게 보이는 방법이다.

말 위에서는 눈을 두리번거리지 말고, 몸을 비스듬히 하지 말고, 의관을 엄숙하게 정제해야 할 것이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장엄하게 보이는 방법이다.

▶기치(旗幟) : 의례와 군사적인 목적에 쓰이는 깃발. 원래 기(旗)는 좌우가 좁고 상하가 긴 형태로, 깃대에 매는 부분만을 제외하면 삼면에 술을 달며, 치(幟)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길어 바람에 길게 나부끼게 만든 깃발을 뜻했다.

▶영기(令旗) : 군중(軍中)에서 군령(軍令)을 전달할 때에 쓰는 기(旗)

 

객관(客館) 밖에 당도하면 의복을 갈아입고 뜰 안으로 들어가서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하되, 잠시 엎드려서 마음에 스스로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만 리 밖을 밝히 보시므로, 천위(天威)는 나로부터 지척도 떨어지지 않았으니, 소신(小臣)이 감히 조심하지 아니하랴. 전하(殿下)께서 만민의 생명을 오로지 소신에게 맡기셨으니, 소신이 감히 백성을 삼가서 다스리지 않으랴?”

한다. 그리고 일어나서 물러나온다.

▶객관(客館) : 조선 시대 각 고을에 설치했던 관사(館舍)로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관리나 사신을 대접하고 묵게 하던 시설. 객관 안에 ‘전(殿)’자가 새겨진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殿牌)를 모셔두었다. 객사(客舍).

▶망궐례(望闕禮) : 지방관이 초하루와 보름에 명절, 또는 왕과 왕비의 생일에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해 객사에 봉안한 전패(殿牌)에 예를 올리고 절하는 일.

▶천위(天威) : 하늘에서 타고 난 위엄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