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2
공사(公事)에 틈이 있으면, 반드시 정신을 집중하여 고요히 생각하며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내어 지성으로 잘 되기를 강구해야 한다.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
주자(朱子)는 이렇게 말했다.
“오공제(吳公濟)는 ‘날마다 사물을 응접하는 중에서도 모름지기 한때의 시간을 내어 조용히 혈기(血氣)와 정신을 함양해야 한다. 요컨대 일이 번잡할수록 마음을 더욱 느긋하게 가지고, 시간은 부족하나 나는 여유 있게 지내야 한다.’ 하였다. - 그 말이 비록 이설(異說)에서 나왔지만, 시험해 보매 효험이 있으니 주자(周子)의 이른바, 정(靜)을 주로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 ”
▶오공제(吳公濟) : 이름은 즙(楫), 자(字)가 공제(公濟)이다. 송 고종(宋高宗) 때의 학자로 주희(朱熹)가 그의 서실(書室)을 열재(悅齋)라 명명하고, 자기 아들을 보내어 사사(師事)시켰다. ▶주자(周子) :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의 학자 주돈이(周敦頤) |
정백자(程伯子)가 현령이 되었을 적에 일찍이 자리의 오른편에 ‘시민여상(視民如傷)’ 넉 자를 써 놓고,
“나는 매일 이 문구에 부끄러움이 있다.”
하였다. - 양귀산(楊龜山)이 “그 마음 쓰는 것을 보면 잘못된 판결로 사람을 매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였다. -
▶정백자(程伯子) :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의 학자 정호(程顥). ▶시민여상(視民如傷) : 백성 보살피기를 상한 데가 있듯 한다는 뜻. |
장구성(張九成) - 자(字)는 자소(子韶)이다. - 이 진동 판관(鎭東判官)이 되어 정사에 마음을 다하니 사람들이 속이지 못하였다. 한번은 벽에 크게 써 붙이기를,
“이 몸이 구차히 하루를 한가하면 백성은 한없는 괴로움을 당한다.”
하였다.
《치현결(治縣訣)》에,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됨이 없을 것이니, 이는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정요(政要)》에,
“벼슬살이하는 데에 석 자의 오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맑음[淸]이고, 둘째는 삼감[愼]이고, 셋째는 부지런함[勤]이다.”
하였다.
▶정요(政要) :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임관정요(臨官政要)》 |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에,
“임금 섬기기를 나의 어버이 섬기듯 하고, 아전들 대하기를 나의 노복(奴僕)처럼 하며, 백성 사랑하기를 나의 처자(妻子)처럼 하며, 공무 처리하기를 집안일처럼 한 뒤에야 내 마음을 다한 것이니, 만약 조금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다면 이는 다 내 마음을 다하지 않은 바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 :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 여본중(呂本中)이 가정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데 쓰도록 만든 책. 정론(正論)과 격언(格言)이 많다. |
매양 한 가지 일을 당할 때마다 선례만 좇아서 시행할 것이 아니요, 반드시 법도의 범위 안에서 편의하게 변통할 것을 생각하여 백성을 편안히 하고 이롭게 하기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법도가 국가의 전장(典章)이 아니면서 현저히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은 고치지 않을 수 없다.
▶전장(典章) : 국가의 제도와 문물. 법식(法式). |
한 위공(韓魏公)이 개봉부(開封府)의 추관(推官)이 되어, 일을 처리함에 게으르지 아니해서 더운 철에는 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부윤(府尹) 왕박문(王博文)이 중히 여겨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요로(要路)가 앞으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백성 다스리기를 이와 같이 하니 참으로 재상의 그릇이다.”
하였다.
▶추관(推官) : 절도사(節度使)나 관찰사(觀察使) 아래에서 형명(刑名) 관계의 일을 맡은 관원. |
오늘날 사람들로서 옥당(玉堂)ㆍ은대(銀臺)를 거쳐 지방관이 된 이는 망령되이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잘한 일은 직접 돌보지 않고 말하기를,
“문신(文臣)의 정사하는 체모는 음관(蔭官)과 다르다.”
하여, 바둑이나 시로써 스스로 즐기며, 정사는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 생민들을 괴롭히니, 이와 같은 자는 위의 이 조문(條文)을 읽어야 할 것이다.
▶옥당(玉堂) : 홍문관(弘文館)의 별칭. ▶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의 별칭. ▶음관(蔭官) : 공신 또는 당상관(堂上官)의 자손이 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조(父祖)의 공덕(功德)으로 얻는 벼슬. |
진서산(眞西山)이 장사(長沙) 지방을 다스릴 때에 12고을의 수령을 모아 상강정(湘江亭)에서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짓기를,
從來官吏與斯民 종래 관리와 백성들은 本是同胞一體親 본디 한 몸 같은 동포였는데 旣以膏脂供爾祿 백성들이 고혈을 짜내어 너희들 녹봉에 이바지하니 須知痛癢切吾身 모름지기 아픔이 내 몸 베인 듯하라 此邦素號唐朝古 이 고을은 당조(唐朝)의 옛고을이라 이르는데 我輩當如漢吏循 우리들은 한(漢)나라 순리(循吏)처럼 되어야 하리 今日湘亭一杯酒 오늘 상정(湘亭)의 한 잔 술로 更煩散作十分春 무르녹은 봄기운을 사방으로 번지게 하리
하였다.
▶한(漢)나라 순리(循吏) : 순리는 규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관리를 가리키는 말로, 전한(前漢)ㆍ후한(後漢) 때 특히 순리(循吏)가 많았다고 한다. |
정선(鄭瑄)이,
“하늘은 한 사람을 사사로이 부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뭇 가난한 자들을 그에게 부탁하려는 것이요, 하늘은 한 사람을 사사로이 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개 뭇 천한 자들을 그에게 부탁하려는 것이다. 빈천한 사람은 제힘으로 먹고살면서 제 일을 경영하여 제 피땀으로 제가 먹으니 하늘이 살펴봄에도 오히려 너그러울 것이요, 부귀한 사람은 벼슬을 가지고 녹을 먹되 만민의 피땀을 한 사람이 먹으니 하늘이 그 허물을 감독함이 더욱 엄중할 것이다.”
하였다.
한지(韓祉)가 감사로 있을 적에 매양 막료(幕僚)들이 조알(朝謁)을 오면, 부반(副盤)을 내려 주고 술을 돌린 다음에는,
“내가 어제 한 일 가운데 무슨 허물이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막료들이,
“없었습니다.”
대답하면, 정색하고 말하기를,
“ ‘세 사람이 길을 가는 데에도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하였는데, 10여 명의 의견이 어찌 내 의견과 똑같을 것인가. 제군(諸君)은 우선 말하라. 말해서 옳으면 좇을 것이요, 그르다면 서로 논란을 다시 하면 또한 깨우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이와 같이 날마다 묻기를 상례(常例)로 하니, 여러 막료들이 미리 강구해 가지고 들어가서 고하였다. 그 말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면 비록 매우 중대하여 고치기 어려운 일이라도 선뜻 자기 의견을 버리고 그에 따랐으며,
언제나 말하기를,
“천하의 일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세 사람이 …… 있다 :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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