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3
많이 말하지도 말고 갑자기 성내지도 말아야 한다.
(毋多言 毋暴怒)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는 한 번 동작하고 한마디 말하는 것을 아랫사람들은 모두 엿들어 살피며 추측하여,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읍으로, 읍에서 사방으로 새어 나가서 한 도(道)에 다 퍼지게 된다. 군자는 집에 있을 때도 오히려 말을 삼가야 하는데, 하물며 벼슬살이할 때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시동(侍童)이 비록 어리고 시노(侍奴)가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여러 해 관청에 있어 백번 단련된 쇠붙이와 같아, 눈치 빠르고 영리해져서 엿보고 살피는 데는 귀신과 같다. 겨우 관청 문만 벗어나면 세세히 누설하게 된다. 내가 10여 년 동안 읍바닥에서 객지살이하였으므로 그 사정을 알고 있다.
▶내가 10여 …… 객지살이하였으므로 : 정약용 자신의 유배생활을 가리킨다. 정약용은 순조 1년(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장기(長鬐)로 유배(流配)되었다가 황사영(黄嗣永)의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그해 11월에 다시 강진(康津)에 이배(移配)되어 18년 동안 강진에서 지냈다. |
《주역(周易)》 〈계사 상(繫辭上)〉에,
“군자가 집안에 있으면서 그 말이 선(善)하면 천리 밖에서도 응하는데, 하물며 가까운 데 있어 서랴. 집안에 있으면서 그 말이 불선(不善)하면 천리 밖에서도 어기는데, 하물며 가까운 데에 있어 서랴.” 하였고,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에는,
“뜻하지 않은 일을 경계하고 네 말을 삼가라.”하였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이는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정선(鄭瑄)이,
“자신이 백성의 수령이 되면 몸은 화살의 표적이 되는 것이므로 한마디 말이나 한 가지 행동도 삼가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또, “한마디 말로 천지의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는 수가 있고, 한 가지 일로 평생의 복을 끊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 모름지기 잘 점검해야 한다.”
하였다.
포증(包拯)이 경조윤(京兆尹)으로 있을 적에 말과 웃음이 적으니, 사람들은 그 웃음을 황하(黃河)가 맑아지는 것에 비유하였다.
▶황하(黄河)가 맑아지는 것 : 황하청(黃河淸). 황하는 예로부터 토사가 많아 물이 항상 흐린데, 오백년 또는 천년에 한 번씩 맑아진다는 데서 나온 말로, 희귀하거나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표현. |
수령이 되어 지방에 나간 자들은 항상 말하기를,
“이 고장 인심은 아주 악하다.”한다.
서쪽 지방으로 나간 자도 이 말을 하고 남쪽 지방으로 나간 자도 이 말을 하며, 동쪽으로 나가거나 북쪽으로 나간 자도 이런 말을 한다. 천리(天理)는 본디 선한 것인데 어찌 팔도(八道) 백성의 마음은 아주 악하고 나만 홀로 선하겠는가?
맹자(孟子)는, “남을 사랑하여도 친해오지 않으면 자기의 인(仁)을 반성하고, 남을 예(禮)로 대하여도 답이 없으면 자기의 공경심을 반성하라.”하였는데, 또한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육상산(陸象山)이, “서해나 동해나 마음도 같고 이치도 같다.”하였는데, 이 지방 인심만 어찌 반드시 별다르게 악하겠는가? 하물며 나는 손이요 그들은 주인임에랴. 외로운 한 몸으로 뭇 초나라 사람 속에 뛰어들어 꾸짖기를, “인심이 아주 악하다.”하니, 이는 스스로 고립되는 길이 아닌가.
사방 풍속은 혹 각각 다르니 나에게 친숙하지 못하여 마음에 거슬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나, 그것 때문에 꾸짖거나, 화를 내는 것도 본 것이 적어서 괴상하게 여기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외로운 한 몸으로....꾸짖기를 : 『맹자 · 등문공 하』에, 초나라 사람들이 제나라 사람을 교사로 초빙해서 배우는데 제나라 사람이 날마다 매를 때리면서 제나라 말을 가르쳐도 결국은 효과가 없었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비유한 것. |
수령이 한 악인을 보고 꾸짖기를, “이 지방 인심은 순박한데 네가 어지럽히니 그 죄 더욱 중하다.” 하면 뭇사람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요, 수령이 한 악인을 꾸짖기를, “이 지방 인심이 아주 악하더니 이 같은 일이 생겼구나.” 하면, 뭇사람이 노여워할 것이다.
자기 한마디의 실언으로 뭇사람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면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하물며 그 이른바 극악하다는 것은 모두 쌀이나 소금 따위에 관한 작은 일과 오이ㆍ배추 따위의 하찮은 물건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백성을 침학하며 법을 범한 자는 노여워하는 대상에 들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뭇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옛사람은 제(齊)나라와 노(魯)나라처럼 촉인(蜀人)을 대우해 주었는데, 하물며 본디 촉인이 아닌 자에 있어서랴.
▶옛사람은 …… 주었는데 : 촉인(蜀人)은 워낙 성질이 사납고 제(齊)와 노(魯)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탄생지로 문화와 교육이 흥성한 지방이며 인심이 순후하였다.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의 장방평(張方平)이 촉(蜀) 지방의 반란을 평정하러 가서 촉인을 제(齊)ㆍ노(魯)의 사람처럼 대우하여 줌으로써 촉인을 심복하게 하였다. |
여본중(呂本中)의 《동몽훈(童蒙訓)》에, “벼슬에 임하는 자는 먼저 과격하게 성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하였으니, 진실로 수령으로서 형벌의 권한을 쥐고 있으니 무릇 명령이 내리면 좌우가 순종하여 거역함이 없을 것인데 만약 과격하게 성냄을 타서 문득 형벌을 시행하면 그 형벌이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이 많을 것이다.
무릇 과격하게 성내는 성품을 걱정하는 자는 평소에 마음으로 맹세하고 법을 세워, ‘노즉수(怒則囚)’라는 석 자를 가슴 깊이 새겨두도록 하라.
▶노즉수(怒則囚) : 성나면 그것을 가두어두라는 뜻. |
이에 성이 날 때에는 과감히 깨달아 힘써 누르고 곧 범인(犯人)을 잡아서 옥에 가두어 두라. 혹 하룻밤을 새워 생각하거나 사흘을 두고 생각하면 순리로 풀려 온당하게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또 과격하게 성내는 사람은 성내는 것이 과격했기 때문에 풀리는 것도 그처럼 빠를 것이니, 이른바 ‘회오리바람은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오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못 가서 본성으로 돌아올 것이니 그것을 기다리기는 어렵지 않다. 다른 사람은 화를 면하고 나는 허물이 없게 되니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정선(鄭瑄)은, “성났을 때의 말은 도무지 체면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성내고 난 뒤에 생각하면 자기의 비루한 속을 온통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만 셈이 된다.” 하였다.
한지(韓祉)가 감사로 있을 때에 한 번도 빠른 말씨를 쓰거나 성난 기색을 보인 일이 없었고, 하루에 사람을 매 때리는 것이 두셋에 지나지 않았으되 부(府) 안팎이 숙연하였다. 그의 신발 끄는 소리만 나도 사람들이 벌벌 떨었다. 그가 순력(巡歷)하여 이르는 곳마다 떠드는 것을 금지하지 않아도 적연함이 마치 사람이 없는 것 같았으되, 영(令)은 행해지고 금법은 그쳐졌는데,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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