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37 - 백성의 윗사람은 진중해야 한다.

從心所欲 2021. 5. 7. 18:48

[1907년 독일인이 촬영한 경복궁 성벽 동쪽 거리 모습. 성벽 위에 솟은 누각은 동십자각. 지금은 복개해버린 개천의 모습이 보인다.]

 

 

 

●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6

군자가 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는 몸가짐을 진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君子不重則不威。爲民上者。不可不持重)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사안(謝安)은 바둑 두던 것을 그만두지 않았고, 유관(劉寬)은 국이 엎질러져도 놀라지 않았으니, 이는 평소부터 익히 헤아린 바가 있기 때문에 일을 당하여도 당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부중(府中)에 혹시 호랑이나 도둑, 수재나 화재가 나고 담이 무너지며 지붕이 떨어지는 변이 있고, 혹은 지네나 뱀 따위가 앉은 자리에 떨어지거나 시동(侍童)이 잘못하여 물을 엎지르고 술잔을 떨어뜨리는 등의 일이 생기더라도, 모름지기 단정하게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말고 차분히 그 까닭을 살펴야 하고, 혹 어사(御史)가 출도(出道) - 암행(暗行)하여 일을 처리함을 출도라 한다. - 하거나 폄보(貶報)가 갑자기 이르더라도 더욱 말이나 안색이 변하여 남의 비웃음이나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안(謝安) : 진(晉)나라 때의 벼슬아치로, 전진(前秦)의 임금 부견(苻堅)의 군사가 남침하자, 정토대도독에 임명되었는데, 그의 조카 현(玄)의 승전 보고를 받고도 태연히 바둑을 두었다. 그러나 바둑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너무 기뻐서 나막신의 굽이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유관(劉寬) : 후한(後漢) 때 시중(侍中)ㆍ태위(太尉)를 지낸 벼슬아치로 너그럽기로 유명하였다. 지냈다. 그의 부인(夫人)이 유관(劉寬)의 성내는 것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조복(朝服)을 입고 입궐하려는 남편을 엿보고 있다가 시비(侍婢)를 시켜 국을 엎질러 조복을 더럽히게 하였더니, 그는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고 조용히 말하기를 “네 손이 데지는 않았느냐?” 하였다 한다.

▶폄보(貶報) : 좌천ㆍ파면의 통보서.

 

배도(裵度)가 중서성(中書省)에 있을 때, 좌우가 갑자기 인장을 잃었다고 아뢰었으나 배공(裵公)은 여전히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얼마 후에 다시 원래 두었던 자리에서 인장을 찾았다고 아뢰었으나 배도는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이는 필시 아전이 인장을 훔쳐서 문권에 찍고 있는 중일 텐데, 급하게 되면 물속에나 불 속에 던져버릴 것이요, 늦추어 주면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을 것이다.”

하니, 모두들 그의 도량에 탄복하였다.

 

유공권(柳公權)이 한번은 은술잔을 상자에 넣어 두었는데, 동여매고 봉해 놓은 것은 전과 다름없는데도 넣어 둔 물건은 모두 없어졌으며, 종들은 모른다고 속였다. 공권은 웃으면서,

“은술잔에 날개가 돋쳐서 날아간 모양이지.”

하고, 다시는 따지지 않았다.

 

한위공(韓魏公)이 대명부(大名府)에 있을 때 백금(百金)을 주고 옥잔 한 쌍을 샀는데, 밭갈이하던 자가 고총(古塚)에서 얻은 것으로 안팎에 흠이라고는 없는 진귀한 보물이었다. 하루는 조사(漕使)를 불러 술을 대접하였는데 한 아전이 잘못 부딪쳐 그 옥잔이 모두 깨졌다. 그러나 공은 얼굴빛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앉은 손님들에게,

“물건의 만들어지고 부서짐은 또한 때가 있는 것이다.”

하고 그 아전을 돌아보면서,

“네가 실수한 것이요 고의로 한 것이 아니니 무슨 죄가 있겠느냐.”

하였다.

▶조사(漕使) : 징부(徵賦)의 독촉과 금곡(金穀)의 출납, 상공(上供)을 마련하는 관원.

 

문 노공(文潞公)이 네 개의 옥술잔을 꺼내어 손님을 접대하는데 관노(官奴)가 잘못하여 그중 한 개를 깨뜨렸다. 노공(潞公)이 장차 그 죄를 다스리려 하는데 사마 온공(司馬溫公)이 붓을 청하여 문서 끝에 쓰기를,

“‘옥술잔을 털어 비우지 말라’는 예법(禮法)은 비록 옛글에 있으나, 채운(彩雲)이 흩어지기 쉬우니 이 사람의 허물은 용서함직하다.”

하니, 노공이 웃으면서 그 관노를 풀어 주었다.

▶옥술잔을 …… 말라 : 《禮記 曲禮上》에 “옥술잔으로 마시는 사람은 나머지를 다 털어 비우지 말라.”는 구절을 인용. 옥술잔은 보물이어서 떨어질까 염려되는 때문이라 한다.

 

왕 문정(王文正)은 평생토록 노여움을 밖으로 나타낸 일이 없었다. 음식이 불결할 때는 먹지 않을 뿐이었다. 집안사람들이 그의 도량을 시험하기 위해서 먼지를 국물 속에 넣었더니, 공은 밥만 먹을 뿐이었다. 왜 국을 먹지 않느냐고 물으니,

“어쩐지 고기가 먹기 싫다.”

하였다. 하루는 또 먹물을 밥 위에 끼얹었더니 공은 보고서,

“어쩐지 밥이 싫으니 죽을 쑤어 오라.”

하였다.

 

여조겸(呂祖謙)이 젊을 적에 성기(性氣)가 거칠고 사나워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득 집안 물건을 부수었다. 후에 오래도록 병을 얻어 《논어(論語)》 한 권을 아침저녁으로 한가로이 읽더니,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마음이 평정(平靜)해졌다. 그 후로는 평생토록 갑자기 성내는 일이 없었으니 이야말로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진호(陳鎬)가 산동(山東)의 학정(學政)을 감독할 때 밤중에 제양(濟陽)의 공관(公館)에 이르니 포인(庖人)이 음식을 올리면서 수저 놓는 것을 깜빡 잊었다. 제양의 수령이 그가 성내어 꾸짖을 것을 두려워하여 문을 열고 밖에 나가 찾아올 것을 청하니, 그는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예(禮)와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한가.”

하고 마침내 밤참을 들지 않고 과실 몇 개만을 먹었다.

▶포인(庖人) : 음식을 맡은 사람

 

한 위공(韓魏公)이 정무(定武)를 맡아 다스릴 때 밤중에 공문(公文)을 쓰면서 한 시병(侍兵)에게 곁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도록 하였다. 시병이 딴 데 한눈을 팔다가 촛불로 공의 수염을 태웠으나 공은 문득 옷소매로 문지르고서 여전히 공문을 계속해서 썼다. 얼마 후에 돌아다보니 그 시병을 이미 바꾸어 버렸다. 공은 주리(主吏)가 그 시병을 매 때릴 것을 걱정하여 속히 불러오도록 하고,

“그를 바꾸지 말라. 이제는 촛불을 잡을 줄 알 것이다.”

하였다.

 

하원길(夏原吉)이 겨울에 사명(使命)을 받고 지방에 나갔다가 관소(館所)에 이르러 관인(館人)에게 버선을 말리게 하였는데 잘못하여 한 짝을 태웠다. 관인이 두려워서 감히 아뢰지 못하고 있던 차에 공이 매우 급하게 버선을 찾자, 좌우가 죄주기를 청하였다. 공은 웃으면서,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장요(蔣瑤)는 성품이 관후(寬厚)하였다. 양주지부(揚州知府)로 있을 때, 어느 날 저자에 나갔는데, 한 아이가 띄운 연이 잘못하여 공의 모자에 떨어졌다. 좌우 사람들이 그 아이를 붙들어 오려고 하자, 공이,

“아이가 어리니 놀라게 하지 말라.”

하였다. 또 어느 부인이 누각(樓閣) 창문으로 물을 버리다가 잘못하여 공의 옷을 더럽혔다. 그 부인의 남편을 묶어 오니 장요가 좌우를 꾸짖어 그를 돌려보내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공이 너무 관대함을 의아스럽게 여기니, 공은,

“내가 명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인도 실수하였을 뿐인데 더구나 그 남편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였다.

 

장형(張鎣)이 산동성(山東城)을 순안(巡按)할 때 맨 처음 임청(臨淸)에 이르렀는데, 우연히 어떤 술집의 깃대에 그의 사모(紗帽)가 걸려서 떨어지니 좌우가 실색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주(州)의 수령이 그 술집 주인을 묶어서 죄주기를 기다리게 하였더니, 장형이 조용히 이르기를,

“다음부터는 술집 깃대를 높이 걸어 놓도록 하라.”

하고 바로 돌려보내 주었다.

장형이 수령으로 있을 때 급히 보고해야 할 옥사(獄事)가 있어서 밤중에 촛불을 잡고 이속(吏屬)을 재촉하여 문서를 작성하였다. 밤중에 문서가 완성되었는데 이속의 옷소매가 촛불을 스치는 바람에 문서 위에 초가 넘어져서 문서는 상주(上奏)할 수 없게 되었다. 이속이 머리를 조아리며 죽음을 청하니, 공은,

“실수한 것뿐이다.”

하고 재촉하여 다시 쓰게 하고는 태연히 앉아 기다리면서 새벽이 되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