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론(官論)은 성소부부고 제11권 문부(文部)의 세 번째 논(論)이다.
<관론(官論)>
삼대(三代) 이후로 관직을 함부로 늘리고 관원(官員)이 많았던 것으로는 당(唐)나라보다 더한 나라는 없었다.
관직을 함부로 늘린다면 권한이 분산되어 지위가 높아지지 못하고, 관원이 많으면 녹(祿)만 허비되고 일은 성취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고서야 훌륭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씨(李氏)의 번창하지 못했음은 오로지 여기에 연유하였다.
▶이씨(李氏) : 이연(李淵)이 건국한 당나라를 가리킨다. |
우리나라의 관제(官制)는 당(唐)나라를 본받았으나, 더욱 관직이 늘어났고 또 헛 비용이 들게 되어 있다. 중국처럼 큰 천하로서도 오히려 권한이 분산되고 녹의 비용이 드는 것을 걱정하였는데, 하물며 궁벽한 조그마한 우리나라에서야 어떠하랴. 나는 감히 먼 옛일을 인용하지는 못하고, 명(明)나라의 제도로써 말해 보겠다.
두 서울에 설치했던 5부(府)는 군정(軍政)을 다스렸고, 6부(部)는 각 업무를 다스렸다. 종인(宗人)ㆍ찰원(察院)ㆍ대리(大理)ㆍ통정(通政)ㆍ태상(太常)ㆍ태복(太僕)ㆍ광록(光祿)ㆍ홍려(鴻臚) 등 경좌(卿佐)와, 국자감(國子監)ㆍ첨사부(詹事府)ㆍ한림(翰林)ㆍ6과(科)ㆍ상보(尙寶)ㆍ중서(中書) 등 관직이 분담하여 일을 맡았다. 금의위(錦衣衛)는 시위(侍衛)와 요도(徼道)를 관장했고, 흠천감(欽天監)ㆍ태의원(太醫院)ㆍ상림원(上林苑)ㆍ5성(城) 병마(兵馬)는 예부(禮部)와 병부(兵部)에 예속되었을 뿐이다. 아문(衙門)은 이 정도뿐이고 관원(官員) 또한 쓸데없이 많지 않았지만, 역시 천하의 일을 다스리기 충분하였다.
▶두 서울 : 남경(南京)과 북경(北京). ▶요도(徼道) : 도로 순찰 |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정부(政府)ㆍ6조(曹)ㆍ3사(司)와 시종(侍從)을 제외한 이외에 아문(衙門)과 관원(官員) 숫자의 넘치고 번다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종척(宗戚)을 관장하는 데는 하나의 종인(宗人)이면 충분하지만 종친부(宗親府)ㆍ의빈부(儀賓府)ㆍ종부시(宗簿寺) 등이 있으며, 재화(財貨)를 관장하는 데에는 호부(戶部)면 넉넉한데 제용감(濟用監)ㆍ상의원(尙衣院)ㆍ사섬시(司贍寺) 등을 설치하였다. 궁중의 주식(酒食)을 관장하는 데도 하나의 광록(光祿)이면 넉넉하지만 내자시(內資寺)ㆍ내섬시(內贍寺)ㆍ예빈시(禮賓寺)ㆍ사도시(司䆃寺)ㆍ사재감(司宰監)ㆍ사온서(司醞署) 등이 분담하여 맡고 있다. 형조(刑曹)만 있으면 장례원(掌隷院)으로 나눌 필요가 없으며, 군자감(軍資監)이 있으면 풍저창(豐儲倉)ㆍ광흥창(廣興倉)의 두 창(倉)으로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묘악(廟樂)은 제사를 지내기 위함인데, 태상(太常)은 버려두고 별도로 장악원(掌樂院)을 세웠으며, 특생(特牲) 하나만 사용하면 되는데 전생서(典牲署)와 사축서(司畜署) 두 곳이나 있다. 심지어는 연설(涓設)을 둘로 나누기까지 하였으며, 의약(醫藥)을 맡은 관청은 세 곳으로 나누었다.
▶정부(政府) : 의정부(議政府) ▶태상(太常) : 종묘의 예를 관장하는 관청 ▶연설(涓設) : 전설(典設) ▶세 곳 : 내의원(內醫院)ㆍ전의감(典醫監)ㆍ혜민서(惠民署) |
그 밖의 섞이고 중복된 것들이야 또한 낱낱이 들어 말하기도 어려우니, 하나의 관청에 한 사람이면 될 것도 모두 두 자리로 만들었거나 많은 경우는 열 서너 명, 적더라도 예닐곱 명 아래로는 없었다. 그리고 여러 관청마다 각각 소견(所見)을 고집하니, 내섬시(內贍寺) 같은 경우는 내자시(內資寺) 보다 업무를 더 많이 하려하고, 예빈시(禮賓寺)는 사재감(司宰監)의 업무를 침범하려 하여 서로 다투며 지혜를 자랑하느라 서로 간에 전교(傳敎)를 받아내니 해당 조(曹)에서는 봉행(奉行)하는 데 어리둥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 이 때문에 성취되지 못하고 만다.
관청의 책임자도 하나하나 가려 뽑을 수 없어 대부분 어리석고 재능 없는 사람으로 구차스럽게 채워진 사람은 서리(胥吏)들이나 멍청히 쳐다보며 일을 처리한다. 갑작스럽게 자기의 맡은 책임을 물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대답하지 못하므로, 이런 것으로 연유하여 지위도 높임을 받지 못한다.
나라 일이 날이 갈수록 문란해지고, 강기(綱紀)도 날로 땅에 떨어지고 있다. 권한은 이로 말미암아 분산되어 통일할 수 없고, 녹(祿)은 이로 말미암아 허비되어 공급할 수가 없다. 온갖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날이 갈수록 쇠퇴한 말속(末俗)으로 빠져들어 가게 됨은, 관직을 함부로 늘리는 것을 빌미로 하여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얼마 전에 논의하는 사람들이 긴치 않은 관원을 도태(淘汰)시키고자 했으나 도태시키면 시킬수록 계속 복귀되어 끝내 그 시책을 마칠 수 없었는데, 이건 단지 긴치 않은 관원이 있음만을 살폈고, 아문(衙門)의 많음이 큰 병폐가 되는 것은 알지 못해서였다. 아문(衙門)을 합하면 그런 긴하지 않은 관원은 저절로 간소해질 것이다.
▶아문(衙門) : 관아(官衙)의 총칭 |
우리나라를 중국에 비교하면 하나의 번얼(藩臬) 정도이다. 가령 중국의 호남성(湖南省)ㆍ광동성(廣東省) 같은 하나의 성(省)에는 녹을 받는 사람이 7백여 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원이 많아 여러 천 명이고, 아문의 경우도 중국의 다섯 배나 되고 있으니 권한이 분산되고 녹이 허비됨은 이상할 것도 없다.
국가를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나라를 경계(警戒)로 삼고, 명나라를 본받는다면 그런 대로 괜찮으리라.
▶번얼(藩臬) : 번(藩)은 봉건 시대의 제후의 나라를 뜻하고, 얼(臬)은 얼사(臬司)로 ‘안찰사(按察使)의 관아(官衙)’와 같으니 하나의 지방이라는 의미. |
번역문 출처 : 성소부부고(임형택 역, 1983,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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