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6 - 병론(兵論)

從心所欲 2021. 6. 29. 06:57

병론(兵論)은 성소부부고 제11권 문부(文部)의 네 번째 논(論)이다.

 

<병론(兵論)>

 

천하에 군대 없는 나라가 있을까? 그런 나라는 없다. 나라에 군대가 없다면 무엇으로써 포악한 무리들을 막겠는가? 포악한 것들을 막을 장비가 없다면 나라가 어떻게 자립하며, 임금이 어떻게 자존(自尊)하며, 백성들은 어떻게 하루인들 그들의 잠자리를 펴랴.

그런데, 천하에 군대 없는 나라가 있다. 군대가 없고도 오히려 수십 년이나 오래도록 보존함은 고금에 없는 바이나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나라다.

그렇다면 포악한 것들을 막을 장비도 없이 오히려 천승(千乘)의 왕위를 유지함에는 어떤 술법(術法)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한 술법은 없고 우연이었다. 왜 우연이라고 하는가? 왜적이 물러간 다음 우연히 다시 오지 않았고, 노추(奴酋)들이 우연히 우리를 침범하지 않았으며, 복려(卜廬)도 우연히 북쪽 변경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거리가 없자 시일(時日)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천승(千乘) : 제후의 나라
▶노추(奴酋) : 흉노의 우두머리. 여기서는 여진(女眞)을 가리킴.
▶복려(卜廬) : 원래는 중국 주(周)나라 때의 서북 지방 오랑캐를 지칭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우리나라 북쪽의 오랑캐인 만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군대가 없다는 것도 군대가 완전히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적어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이며, 군대가 적다고 하는 것은 군정(軍政)이 제대로 닦아지지 않음이다.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자격 있는 장수가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군정을 엄하게 하고 장수를 제대로 골라 위에 있는 사람이 신임하여 전권을 행사하게 한다면, 10만의 훈련받은 군사들이 남북에서 도약할 수 있어 치고 공격하는 위엄을 자랑할 것이다. 이런 걸 놓아두고 계책은 쓰지 않고 난리만 나면 도망할 계획만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서의 나라 왕씨(王氏) 때는 군정(軍政)이 가장 엄하였다. 조관(朝官)으로 붉은 비단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모두 친군(親軍)에 예속되었고, 재상(宰相)의 아들도 으레 병직(兵職)을 받았으며, 학관(學館)의 유사 (儒士)들도 역시 종군(從軍)토록 하였다. 내외의 정규 군대는 공사 천예(公私賤隷)를 묻지 않고 모두 척적(尺籍)에 매여 있었다.

장령(將領)은 양부(兩府)의 대신(大臣) 이하로부터 통솔되는 바가 있었으며, 중외(中外)의 크고 작은 여러 장수에게는 모두 몸소 이끄는 병사들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그들의 의식을 후하게 해주면서 교련(敎鍊)하였고, 사변(事變)이 있으면 장수나 병졸이 서로 연습되어 있어 팔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같이 하므로, 백만 명의 군사도 하루아침에 충당하였다.

비록 소손녕(蕭遜寧)처럼 순탄함, 금산(金山)ㆍ금시(金始)같이 궁색스러움, 늑대 같던 실리타[撒禮塔]와의 싸움, 군사 많기로는 모거경(毛居敬)ㆍ유사(劉沙)ㆍ관선생(關先生)과의 싸움에서도 옛 고려에서는 모두 싸워서 격퇴시킬 수 있었다.

▶앞서의 나라 왕씨(王氏) 때 : 고려(高麗)
▶붉은 비단옷 : 5품(品) 이상의 벼슬아치가 입던 옷.
▶척적(尺籍) : 군령(軍令)을 기록하는 문서인 병적(兵籍).
▶소손녕(蕭遜寧) : 고려 성종(成宗) 12년에 고려를 침입했다가 서희(徐熙)의 담판으로 물러간 거란의 장수.
▶금산(金山)ㆍ금시(金始) : 고려 고종 4년에 침입하였다가 김취려(金就礪)에게 멸망한 거란의 왕자들.
▶실리타[撒禮塔] : 고려 고종 18~19년 사이에 고려를 침입한 몽고의 장수.

 

지금의 지역은 고려에 비교하여 더 축나지도 않았고 인민(人民)도 더 줄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겁을 먹고서 항상 군대 없다는 것으로 두려워하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군대는 비단 조관(朝官)ㆍ재신(宰臣)의 아들과 학관의 선비들이 예속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복(典僕) 및 하천(下賤)한 자들까지도 모두 군적(軍籍)에 누락되기를 꾀하며, 병관리(兵官吏)들이 군사에게서 재물을 빼앗아 써서 골수가 이미 다 빠졌다.

평시에 충분히 먹도록 해주어도, 난리를 당하여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도록 한다면 더러 물러나고 달아나며 살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모질게 부리다가 죽을 곳으로 몰아넣음에랴! 그들이 흩어져버림은 당연하다.

▶전복(典僕) : 조선시대 각 관아에 소속되어 잡역을 맡아 하던 노복(奴僕)

 

장수를 고르는 일에 있어서도 반드시 치민(治民)을 잘하는 사람 중에서 임용해야 한다. 치민과 치병(治兵)은 본래 방법상으로는 같지 않다. 더구나 치민도 능하지 못하면서 괜스레 임금의 좌우 사람만 잘 섬기는 자들이겠는가. 그런 까닭으로 어쩌다 장수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고 수족을 놀릴 줄도 모르며, 적군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먼저 무너졌음은 왕왕이 모두 이래서였다.

 

오호라, 이런 사람으로 장수를 삼아 이런 군대를 거느렸으니, 군대가 없다고 하더라도 옳다. 나라가 나라 노릇을 하고 있음은 역시 우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폐단을 고칠 수 있을까?

고려의 제도 같이만 하더라도 군대는 씩씩해지고 장수도 고를 수 있어 나라가 나라 노릇을 하리라.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장신(將臣)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오래도록 외방에 있으면 남의 헐뜯음을 받아서 임금의 의심을 받게 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군대를 강해지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며, 노복들을 단속하고 호령이 엄하며, 위아래 사람이 서로 친숙하여 적국이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 임금의 의심받을 꼬투리를 일으키면, 발굽을 돌리기도 전에 자신이 패망하고 나라도 따라서 위태로워진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군대를 다스리고 장수를 통솔해서 나라를 자강(自强)케 할 사람이란 오직 임금뿐이리라.

 

[<진주지도(晋州地圖), 지본채색, 128.5 x 88cm, 국립중앙박물관]

 

 

 

번역문 출처 : 성소부부고(임형택 역, 1983,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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