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

허균 7 - 유재론(遺才論)

從心所欲 2021. 7. 5. 08:43

유재론(遺才論)은 성소부부고 제11권 문부(文部)의 다섯 번째 논(論)이다.

 

<유재론(遺才論)>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과, 함께 하늘이 맡겨 준 직분을 다스릴 사람은 인재(人才)가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 하늘이 인재를 태어나게 함은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인재를 태어나게 함에는 고귀한 집안의 태생이라 하여 그 성품을 풍부하게 해주지 않고, 미천한 집안의 태생이라고 하여 그 품성을 인색하게 주지만은 않는다. 그런 때문에 옛날의 선철(先哲)들은 명확히 그런 줄을 알아서, 더러는 초야(草野)에서도 인재를 구했으며, 더러는 병사(兵士)의 대열에서 뽑아냈고, 더러는 패전하여 항복한 적장을 발탁하기도 하였다. 더러는 도둑 무리에서 고르며, 더러는 창고지기를 등용했었다. 그렇게 하여 임용한 사람마다 모두 임무를 맡기기에 적당하였고, 임용당한 사람들도 각자가 지닌 재능을 펼쳤었다. 나라는 복(福)을 받았고 다스림이 날로 융성하였음은 이러한 도(道)를 써서였다. 그래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나라로서도 혹시라도 그러한 인재를 놓칠세라 오히려 염려하여, 근심 많은 듯 앉거나 누워서도 생각하고 밥상머리에 앉아서도 탄식했었다.

그런데, 어찌해서 산림(山林)과 초택(草澤)에서 보배스러운 포부를 가슴에 품고도 벼슬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며, 영특하고 준수한 인재들이 지위 낮은 벼슬에 침체하여 끝내 그들의 포부를 시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있는가! 정말로 인재를 모두 찾아내기도 어렵고, 쓰더라도 재능을 다하도록 하는 일은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는 땅까지 좁아, 인재가 드물게 나옴은 예부터 걱정하던 일이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하는 길이 더욱 좁아져, 대대로 벼슬하던 명망 높은 집안이 아니면 높은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고, 암혈(巖穴)이나 띳집에 사는 선비라면 비록 기재(奇才)가 있더라도 억울하게 쓰이지 못했다. 과거 출신(科擧出身)이 아니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어, 비록 덕업(德業)이 매우 훌륭한 사람도 끝내 경상(卿相)에 오르지 못한다. 하늘이 재능을 부여함은 균등한데,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과 과거 출신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니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애태움은 당연하리라.

▶경상(卿相) : 판서나 정승

 

예부터 지금까지 시대가 멀고 오래이며, 세상이 넓기는 하더라도 서얼(庶孼) 출신이어서 어진 인재를 버려두고, 어머니가 개가(改嫁)했으니 그의 재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 어머니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모두 벼슬길의 차례에 끼지 못한다. 변변찮은 나라로서, 두 오랑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모든 인재들이 나의 쓰임으로 되지 못할까 오히려 염려하더라도 더러는 나라 일이 구제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막고는 자탄하기를,

“인재가 없군, 인재가 없군.”

하니, 월(越) 나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웃 나라에 알리지 못할 일이다.

 

한 사내ㆍ한 아낙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은 그들을 위해 감상(感傷)하거늘,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네ㆍ홀어미들이 나라 안의 절반이나 되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는 것은 또한 어려우리라.

옛날의 어진 인재는 대부분 미천한 데서 나왔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의 법을 사용했다면, 범 문정(范文正)은 정승의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고, 진관(陳瓘)ㆍ반양귀(潘良貴)는 직신(直臣)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양저(司馬穰苴)ㆍ위청(衛靑)과 같은 장수, 왕부(王符)의 문장(文章) 등은 끝내 세상에 쓰이질 못했으리라.

▶범 문정(范文正) : 이름은 중엄(仲淹)이고 문정(文正)은 시호. 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였다. 어질어서 송(宋)나라 제일의 재상으로 이름을 남겼다.
▶진관(陳瓘) …… 왕부(王符) : 진관은 송나라 간관(諫官). 반양귀는 부당한 관리를 여러 차례 탄핵한 송나라의 직신(直臣). 사마양저는 미천한 출신으로 병법에 밝아 대사마(大司馬)가 된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 성은 전씨(田氏). 위청은 본래 정씨(鄭氏)인데, 어머니가 개가(改嫁)하여 위씨(衛氏)가 된 한(漢)나라의 대장군(大將軍). 왕부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끝내 벼슬하지 않고《잠부론(潛夫論)》을 지어 문명을 남긴 후한(後漢) 때의 인물.

 

하늘이 낳아주셨는데 사람이 그걸 버리니, 이건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다. 하늘을 거역하고 하늘에 빌어 영명(永命)할 수 있던 사람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늘을 받들어 하늘의 뜻대로 행한다면 경명(景命)을 또한 맞이할 수 있으리라.

▶경명(景命) : 영명(永命)과 비슷한 뜻으로 복된 큰 운수.

 

[18세기 왜국의 경세가이자 저명한 지도 편찬자였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제작한 <대삼국지도(大三國之圖)> 1802년 판 中 부분. 하야시 시헤이가 자신이 1785년에 만든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三國通覽輿地路程全圖)>를 수정·보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상징하는 노란 색깔로 함께 칠해져 있고 그 옆에 `조선의 것[朝鮮ノ持之]`이라고 표기하였다. 지도에는 울릉도를 당시 일본이 부르던 이름인 `다케시마[竹島]`로, 독도는 당시의 일본 명칭인 `마쓰시마[松島]`로 표기되었다. ㅣ 우리문화가꾸기회 사진]

 

 

 

번역문 출처 : 성소부부고(임형택 역, 1983,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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