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3
친척이나 친구가 관내(管內)에 많이 살면 단단히 약속하여 의심하거나 헐뜯는 일이 없게 하고 서로 좋은 정을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
(親戚故舊。多居部內。宜申嚴約束。以絶疑謗。以保情好)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4조인 ‘병객(屛客)’은 지방 관청에서 책객(册客), 겸인(傔人) 등 객인(客人)과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친척이나 친구 중에 혹 본읍(本邑)에 살거나 혹 이웃 읍에 살거나 하면 한 번 초청하고 한 번 가서 만나되 때에 따라 선물을 보내면서 약속하기를,
“비록 날마다 만나고 싶지만 예(禮)에는 한계가 있으니 초청하기 전에는 절대로 보러 오지 말기 바란다. 편지 왕래도 의심과 비방을 살 염려가 있으므로 만일 질병이나 우환이 있어서 서로 알려야만 할 경우에는 몇 자의 편지를 쓰되 풀로 봉하지도 말고 직접 예리(禮吏)에게 주어서 공공연히 받아들이도록 해 주기 바란다.”
하라.
매양 보면, 친척들 중에 때를 타서 청탁을 하다가 인심을 몹시 잃어서, 수령이 떠난 뒤에는 마치 강물은 흘러가고 돌은 남는 격이 되어서 뭇사람의 노여움이 빗발치듯하여 보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당(唐)나라 장진주(張鎭周)가 서주 도독(舒州都督)이 되었는데, 서주는 본래 그의 고향이었다. 서주에 도착하여 자기 옛집에 나아가 술과 안주를 많이 준비해서 친척들을 초대하여 그들과 잔치를 즐기는데, 머리는 흐트러지고 두 다리는 뻗고 앉아 마치 벼슬 없던 포의(布衣) 시절 같았다. 그렇게 한 지 무릇 10일이 되었다. 이윽고 돈과 비단을 나누어 주면서 눈물지어 작별하기를,
“오늘은 장진주가 오히려 친구들과 기꺼이 마실 수가 있지만, 내일부터는 서주 도독으로 백성을 다스릴 따름입니다. 관민(官民)의 예는 각별하여 다시 교유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 뒤부터는 친척이나 친구가 법을 어기면 일체 용서하는 바가 없으니 경내가 숙연하였다.
이것은 소유문(蘇孺文)의 법을 써서 친척과 고구를 대접한 것이다.
▶소유문(蘇孺文)의 법 : 소유문(蘇孺文)은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었을 때 친구가 관하인 청하 태수(淸河太守)로 있었다. 소유문이 그 친구를 초청하여 술을 대접하고 평소의 우정을 나누었더니, 그 친구가 기뻐하며 “사람은 다 하늘이 하나이지만 나만은 하늘이 둘이 있다.” 하였다. 소유문은 “오늘 저녁 소유문이 친구와 마시는 것은 사은(私恩)이고 내일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일을 조사하는 것은 공법(公法)이다.” 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 친구의 죄를 들추어 바로잡았다. 《後漢書 蘇章列傳》 |
포증(包拯)은 합비(合肥) 사람이었다. 자기 고을의 수령이 되었으나 법을 어겨 가며 마을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않으니 고장 사람들이 그를 위해 말하기를,
“곧은 잣나무는 기둥이 되고 강한 저울대는 갈고리가 되지 않는다.”
하였다. - 포증이 여주 지주(廬州知州)가 되었는데 곧 고향이었다. 친척들이 그 세(勢)를 타고 관부(官府)를 소란하게 하였다. 외오촌(外五寸)에 법을 범한 자가 있어서 희인(希仁)이 매를 때렸더니 이로부터 친척과 친구들이 숨을 죽이고 두려워하였다. -
▶포증(包拯) :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희인(希仁), 청렴 강직하였다. |
이공 현보(李公賢輔) - 호는 농암(聾巖) - 가 안동 부사(安東府使)가 되었는데 안동 경내가 모두 친척과 친구들이었다. 예로써 영접하게 되니 정사에 방해가 많았다. 그러나 공은 이를 무난히 처리하고 터럭 끝만큼도 사정(私情)에 치우치지 않으니 사람들도 감히 그를 원망하지 못하였다.
▶이공 현보(李公賢輔) : 조선의 문신 이현보(1467~1555). 본관은 영천(永川). 안동 부사ㆍ충주 목사ㆍ부제학(副提學)ㆍ경상도 관찰사 등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저서에 《농암집(聾巖集)》이 있다. |
호태초(胡太初)는 이렇게 말하였다.
“손과 친구들이 와서 놀기도 하고 알현하기도 하면 백성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느 사람은 왕래가 매우 잦고 어느 사람은 정담이 매우 오래가는 것을 보면 정분이 두터운가보다.’ 하고 이에 그 사람의 문전으로 몰려가서 청탁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심한 자는 이미 갑(甲)의 돈을 받고 또 을(乙)의 돈도 약속하고서 바삐 현재(縣齋)로 나아가 수령을 뵙고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훌쩍 물러와서 갑과 을에게 ‘이미 샅샅이 다 이야기했노라.’ 한다. 그러나 사실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뒷날에 수령이 그 일을 결정할 때 반드시 한 편이 이기게 될 것이므로 그는 약속대로 돈을 받으면서 ‘이 돈은 금당(琴堂)에 바칠 것이다.’ 한다. 수령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누명을 쓰겠는가.”
호태초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알현을 받을 때에는 공청(公廳)에서 만나도록 할 것이니, 아전과 백성이 함께 보므로 의심 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만 예모(禮貌)를 갖추어 접대해서 수령 자신이 그를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인정과 세태가 고금(古今)이나 동서(東西)가 다르지 않음이 이와 같다.
▶현재(縣齋) : 현(縣)의 관아. ▶금당(琴堂) : 수령이 정무를 보는 동헌(東軒). 공자(孔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있을 때에 거문고[琴]를 퉁기면서 정당(政堂)을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고을이 잘 다스려졌다고 한데서 생긴 말.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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