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2
무릇 본 고을 백성과 이웃 고을 사람들을 인접(引接)해서는 안 된다. 무릇 관부(官府)는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
(凡邑人及鄰邑之人。不可引接。大凡官府之中。宜肅肅淸淸)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4조인 ‘병객(屛客)’은 지방 관청에서 책객(册客), 겸인(傔人), 객인(客人) 등을 통한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요즈음 풍속에 이른바 존문(存問)하는 법이 있다. 토호(土豪)와 간민(奸民)이 조정의 고관들과 결탁하여, 수령이 부임 인사를 드리는 날에 조정의 고관들이 존문을 부탁하고 일에 따라 두호(斗護) - 곧 비호(庇護)의 뜻이다. - 해 주도록 한다.
▶존문(存問) : 고을 수령이 그 지방의 찾아볼만한 사람을 인사로 방문하는 일을 뜻하나, 여기서는 이를 핑계로 조정의 관리들이 고을에 부임하는 새로운 수령에게 특정 백성을 찾아가 그들의 청탁을 들어주도록 요구한다는 의미다. |
옛날에 참판(參判) 유의(柳誼)가 홍주 목사(洪州牧使)로 있을 때 무릇 존문의 부탁은 하나도 시행하지 않았다. 내가 공에게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다고 하니 공은,
“주상께서 이미 홍주 백성을 나 목신(牧臣)에게 부탁하여 그들을 보존하고 비호하도록 하셨으니 조정에 있는 고관들의 부탁이 중하다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중할 수야 있겠소. 만일 내가 한 사람만을 붙잡고 존문하면서 치우치게 두호하면, 이는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한 사람의 사사로운 명령을 받드는 것이니 어찌 그렇게 하겠소.”
하였다. 나는 유공(柳公)의 말에 깊이 감복하여 다시 더 논란하지 못하였다. 대저 존문은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유의(柳誼) : 조선 후기의 문신(1734 ~ ?)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와 병조참판을 지냈다. |
만약 어쩔 수 없이 들어주어야 할 경우에는 모름지기 부임 후 석 달이 지난 뒤에 서서히 그 사람의 행적을 살펴서, 위력으로 횡포를 부리거나 간사한 행동이 없는 사람이라면 존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단(禮單) 끝에는 쓰기를,
“모름지기 와서 회사(回謝)하지 말라.”
하라.
▶예단(禮單) : 예물(禮物)을 기재한 목록. ▶회사(回謝) : 사례(謝禮)하는 뜻을 표함. |
문리(門吏) - 예방(禮房)의 승발(承發) 등 - 들을 엄중히 단속하여 약속하기를,
“무릇 읍내 유생(儒生)들 중에 학궁(學宮)의 현 재임(齋任)이나 새로 존문을 받은 자라 하더라도 통자(通刺)해서는 안 된다. 만일 어기는 자가 있으면 벌을 받을 것이다.”
하라.
▶승발(承發) : 지방 관아의 이서(吏胥) 밑에서 잡무에 종사하던 사람. ▶통자(通刺) : 명함을 통하는 일, 또는 들이는 일. |
조정에서 벼슬살다가 퇴관(退官)한 자는 비록 쇠잔한 음관(蔭官)이나 시원찮은 무관(武官)이라 하더라도 불가불 맨 먼저 존문해야 할 것이니, 이는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뜻에서인 것이다. 그들 중에 혹 찾아오는 자가 있으면 거절해서는 안 된다. 서로 만나는 날 약속하기를,
“정의가 두텁지 않은 것은 아니나 예는 한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귀공과 약속하고자 합니다. 의논할 일이 있으면 내가 가서 서로 만날 것이요 모임이 있을 때는 초청하여 서로 만나도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담대멸명(澹臺滅明)이 언(偃)의 사실(私室)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방공(龐公)이 성부(城府)로 들어온 적이 없었으니, 비록 섭섭한 듯하더라도 길이 좋게 지내기 바랍니다.”
하라. 그리고 문리(門吏)에게 이런 약속을 단단히 일러 주어야 한다.
▶귀한 …… 뜻 :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귀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 한다.” 는 구절이 있다. ▶담대멸명(澹臺滅明)이 …… 없었고 :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이 되었을 때 공자(孔子)가 “네가 사람을 얻었느냐?” 하고 물었다. 자유는 “담대멸명(澹臺滅明)이란 사람이 있으니……공사(公事)가 아니면 언(偃)의 집에 이른 적이 없습니다.” 하였다. 언(偃)은 자유(子游)의 이름이다.《論語 雍也》 ▶방공(龐公)이 …… 없었으니 : 후한(後漢) 방덕공(龐德公)은 현산(峴山)의 남쪽에 살면서 성시(城市)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유표(劉表)가 자주 초청하였는데도 끝까지 가지 않았다는 고사. |
고을 안에 반드시 문사(文士)라 칭하는 자들이 과시(科詩)나 과부(科賦)로 수령과 교분을 맺고 그것을 인연으로 하여 농간을 부리는 자가 있을 것이니 그런 사람을 인접(引接)해서는 안 된다. 또 풍수(風水)ㆍ두수(斗數)ㆍ간상(看相)ㆍ추명(推命)ㆍ복서(卜筮)ㆍ파자(破字) 등 가지가지 요괴(妖怪)하고 허탄(虛誕)한 술책을 가진 자가 수령과 인연을 맺어, 작게는 정사를 문란하게 하고 크게는 화를 취하게 되니 천리 밖으로 물리쳐서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오직 의원(醫員)만은 물리치기가 어렵다. 자신이 의술을 모르고 그 사람은 의술에 정통하니 때때로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충분히 삼가서 보수를 후하게 주고 입을 열어 청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과시(科詩)나 과부(科賦) : 과거 때 짓는 시(詩)와 부(賦). ▶두수(斗數) : 사주(四柱)를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추정하는 추명(推命)과 같은 뜻. ▶간상(看相) : 사람의 상을 보고 운명을 판단하는 것. ▶복서(卜筮) :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 ▶파자(破字) : 한자(漢字)를 집계하여 자획(字劃)을 풀어 길흉을 점치는 것. |
윤옹귀(尹翁歸)가 동양 태수(東陽太守)가 되었을 때 우정국(于定國)이 고을 유생 두 사람을 부탁하고자 하여 그들을 후당(後堂)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우정국이 윤옹귀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고을 유생들을 보이지 않았다. 윤옹귀가 돌아간 뒤에 우정국이 그 두 유생에게 말하기를,
“이 현명한 분에게 사정(私情)으로 부탁할 수 없었다.”
하였다.
▶윤옹귀(尹翁歸) : 중국 한 선제(漢宣帝) 때 청렴하기로 소문이 났던 관리. ▶우정국(于定國) : 한(漢)나라에서 어사대부(御史大夫)를 거쳐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며 관직에 있을 때에 공평하였다. |
《남사(南史)》에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람(謝覽)이 오흥 태수(吳興太守)가 되었을 때 중서사인(中書舍人) 황목지(黃睦之)의 집이 오정(烏程)에 있었는데 자제들이 횡포를 부렸다. 사람이 고을에 도착하기 전에 황목지의 자제가 맞이하여 알현(謁見)하려 하였는데, 사람(謝覽)은 그들을 쫓아 버렸다.”
▶사람(謝覽) : 남조(南朝) 양 무제(梁武帝)의 관리로 청렴하였다. ▶중서사인(中書舍人) : 조고(詔誥)와 제칙(制勅)을 맡은 중서성(中書省)에 속한 벼슬. 처음에는 통사(通事)ㆍ통사사인(通事舍人) 또는 사인통사(舍人通事)라 불리어졌으나 뒤에 중서사인으로 불리었다. |
설 문청(薛文淸)의 《독서록(讀書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선비들은 본디 예(禮)로써 접해야 하지만 혹 글이나 글씨를 빌어서 그것으로 진취하는 매개를 삼으니, 한번 친하게 대하면 그 술책에 빠지는 수가 있다. 이런 부류들을 잘 살펴서 끊어 버린다면 또한 마음을 맑게 하고 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설 문청(薛文淸) : 명(明)나라 때 문신이자 학자. |
정 한봉(鄭漢奉)은 이렇게 말하였다.
“벼슬살이할 때에는 이색적인 인물과는 서로 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무축(巫祝)이나 이온(尼媼) 같은 부류들뿐만 아니라 공예(工藝)를 다루는 사람들도 필요할 때만 쓰고 오래 머물러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들과 너무 친해지면 이목(耳目)을 가리우고 시비(是非)를 농간하기도 한다. 방관(房琯)이 재상이 되었을 때 한 금공(琴工) 황정란(黃庭蘭)이 문하에 출입하면서 의지하고 그른 짓을 하여 드디어 재상의 사업에 흠이 되었으니, 이런 것들을 깊이 살피지 않아서 되겠는가.”
▶무축(巫祝)이나 이온(尼媼) : 무축(巫祝)은 귀신을 숭배하는 무당, 이(尼)는 승녀(僧女), 온(媼)은 방물장수. ▶방관(房琯) : 당(唐)나라 때 관리.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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