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3조 제가(齊家) 9
규문(閨門)이 엄하지 않으면 가도(家道)가 문란해진다.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관서(官署)에 있어 서랴. 법을 마련하여 거듭 금하되 우레와 같고 서리와 같이 해야 한다.
(閨門不嚴 家道亂矣 在家猶然 況於官署乎 立法申禁 宜如雷如霜)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고, '가정을 바로 다스리는 것‘을 뜻하는 제가(齊家)는 그 가운데 3번째이다.
▶규문(閨門) : 부녀(婦女)가 거처(居處)하는 안방
내사(內舍)의 문을 옛날에는 염석문(簾席門)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발[簾]을 쳐서 가리고 자리로 막아서 집안의 종들과 관의 노복들이 상면할 수 없었으니 이는 내외(內外)의 구분을 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근세에 와서는 이 법이 문란해져서 집안 종들이 이 문을 멋대로 드나들고 관비(官婢)들도 이 문을 함부로 들어와서, 발과 자리를 걷어 치우고 서로 귀에 입을 대거나 무릎을 맞대고 소곤거려, 명령이 여러 곳에서 나오게 되어서 온갖 폐단이 생겨나니, 이 어찌 한심하지 않는가.
▶염석문(簾席門) : 각 고을 관아(官衙)의 안채인 내아(內衙)의 바깥문. 바깥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발이나 자리를 쳐서 가렸다. |
염석문 밖에 한 개의 어석(棜石) - 섬돌을 어금(棜禁) 모양으로 만든 것. - 을 놓고 명령하기를,
“매일 아침에 주노(廚奴) - 관청 고지기 - 와 원노(園奴) - 원두한(園頭漢) - 가 바칠 물건을 이 어석 위에 놓고 방울 - 곧 내사(內舍)의 방울 - 을 울려 알리며, 물러서서 30보 밖에 섰으면 - 관에서 땅에 금을 그어 표를 세운다. - 내아(內衙)의 종이 방울 소리를 듣고 문에 와서 자리를 걷고 물건을 들여가 바치고는 곧 빈 그릇을 도로 그 어석(棜石) 위에 놓는다. 내아의 종이 안으로 들어간 지 한참 후에 관아 종이 그 빈 그릇을 가지고 나갈 것이요, 감히 얼굴을 보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자가 있으면 안팎 종을 모두 매로 엄중하게 다스릴 것이다.”
하라.
▶어금(棜禁) : 어(棜)는 다리가 없는 상, 금(禁)은 다리가 있는 상으로 모두 술잔을 놓는 기구. ▶원두한(園頭漢) : 채소를 심고 관리하는 사람 |
바친 물건이 정말로 고약하게 나빠서 먹을 수가 없으면 수령이 안으로 들어온 당일에 친히 자세히 살펴보아서 용서할 만한 것은 용서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한가한 시기에 수리(首吏)에게 말하여 밖에서 살펴 신칙하도록 하는 것이 좋으며, 끝내 종들은 한 마디도 말을 하게 해서는 안 되고, 또 안식구가 사사로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해도 안 되며, 또 책객(册客) - 곧 자제(子弟)와 친빈(親賓) - 들이 이러쿵저러쿵 조금이라도 간섭하게 해서는 안 된다.
▶수리(首吏) : 각 지방 관아의 수석 아전(衙前). 호장(戶長)일 경우도 있었고 이방(吏房)일 때도 있었다. |
만약 소용은 시급한데 들여오는 것이 매우 늦을 때는 내찰(內札)로 책방(册房)에게 알려 동헌(東軒) - 정당(政堂) - 에 전하도록 하며, 동헌에서는 수리를 불러 독촉하도록 하며 끝내 사인(私人)이 관속(官屬)을 독촉하거나 신칙하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지극히 작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명령이 여러 군데서 나오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법을 이와 같이 세워놓으면 수리(首吏)는 몹시 괴로워하여 그 독촉과 신칙이 반드시 엄할 것이므로 며칠이 안 가서 일이 지체 없이 잘 되어 갈 것이다.
▶내찰(內札) : 부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한글 편지. |
권일(權佾)이 수령이 되자, 그의 어머니 안 부인(安夫人)이 경계하기를,
“백성에게 임할 때는 반드시 관대하게 하여 늙은 어미가 봉양 받을 때에 부끄럽게 하지 말라. 안팎이 엄하지 않으면 뇌물을 주고받는 길이 트일 것이니, 더욱 삼가야 한다.”
하였다.
▶권일(權佾) : 조선 숙종 때 관리로, 청도 군수(淸道郡守)로 있을 적에 선치(善治)로 표리(表裡, 옷의 겉감과 안집)를 하사받았다. |
관기(官妓)나 관비(官婢)가 내정(內庭)에 출입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잗달고 잡스러운 말들이 모두 이들의 입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이다.
침비(針婢)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동헌에서 수노(首奴)를 시켜 침공(針工)을 보내게 해야 한다.
물 긷는 여종은 염석문(簾席門) 곁에 담 구멍을 뚫고 거기에다 홈통을 걸고 안으로 물을 붓도록 해야 한다.
수리(首吏)의 처(妻)를 내사에 출입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무리들은 공관(空官) - 수령이 나가 자리를 비울 때를 공관이라 한다. - 의 틈을 타서 음식을 잘 장만하여 오고, 혹은 포백(布帛)이나 기물 같은 귀하게 여길 물건을 내실에 바쳐서 사사로운 안면을 친숙히 한다. 수령은 여기에 끌려서 수리를 마치 사인(私人)같이 여기게 되니 정사를 그르침이 많은 것이다.
▶침비(針婢) : 바느질을 맡은 관비(官婢). |
매양 성대한 제삿날이 되면 제사 음식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옛날 예법에는 훈포(煇胞)나 적혼(翟閽)에게도 은혜를 골고루 베풀었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은혜가 고르면 정사가 잘 된다.”
하였다. 육방(六房)의 아전들과 시노(侍奴)ㆍ시동(侍童) 등 가까우면서 수고가 많은 자들에게 골고루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훈포(煇胞) : 훈(煇)은 가죽을 다루어 갖옷을 만드는 사람이고, 포(胞)는 가축을 잡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모두 천한 직책이다. ▶적혼(翟閽) : 적(翟)은 약을 다루는 아전이고, 혼(閽)은 문지기. 모두 신분이 천한 사람들이 맡았다. |
호태초(胡太初)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제나 문객(門客)들은 아전들과 서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전이나 백성의 부녀자들이 드나들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오고 가면서 서로 결탁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화(禍)가 담 안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구제할 수 있겠는가? 일이 규문(閨門)에 관계되면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오성가계(烏城家誡)에 이렇게 말하였다.
“자제나 친빈(親賓)은 깊이 책실(册室)에 들어 있을 것이요, 아전ㆍ향임(鄕任)ㆍ종들과 대면하여 말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 전에 내 선인께서도 군현(郡縣)을 다스릴 때 이와 같이 경계하였다. - 자제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빗은 뒤 당에 올라 문안을 드려야 한다. - 곧 신성(晨省)이다. - 참알(參謁)할 때가 되면 바로 자기의 처소로 물러가야지 아버지의 곁에 서서 참알을 참관해서는 안 된다. 혹 아전들이 물러가고 뜰에 사람이 없으면 다시 올라가서 모시고 즐거워하여도 좋다. 만약 송사하는 백성이 들어오거나 죄인에게 곤장을 칠 때는 곧 자기 처소로 물러갈 것이요, 아버지의 곁에 서서 송사를 판결하고 죄인을 다스리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된다.
자제들이 서울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까운 읍으로 놀러 가거나 할 때에는 마땅히 자기 종과 자기 말[馬]을 사용해야 하는데, 매양 보면 자제들이 나들이할 적에 관(官)의 말을 타고 관의 종을 거느리고 좌우로 옹위하여 벼슬아치의 행차 모양을 차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민망히 여기게 한다.
자제들이 책실에 있을 때는 반드시 시동(侍童) - 곧 책방통인(冊房通引)이다. - 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 시동이 없으면 객지에서 손발을 놀릴 수 없으므로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리고 무지하여 아직도 입에서 젖내를 풍기는 아이로 충당하되 항상 자제들에게 주의를 주어 그를 아끼고 달래면서 글자도 가르치고, 비록 잘못이 있더라도 큰소리로 나무라지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제들이 혹 산사(山寺)로 놀러나갈 경우에는 시동을 데리고 조용히 걸어서 가는 것이 좋다. 절에서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값을 후하게 주어야 한다. 폐단 같은 것을 물어보아 돌아와서 아뢰도록 하고, 비록 시(詩)나 경서(經書)를 아는 중[僧]이 있더라도 부중(府中)으로 불러들여서는 안 된다.
만약 읍자(邑子) 중에서 만나자는 청이 있더라도 사양하여 만나지 말아야 하며, 갑자기 찾아와 이야기를 청하거든 온화한 얼굴로 사양하면서 ‘가훈(家訓)이 아주 엄하여 감히 환대하지 못하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 바라오.’ 하고 바로 일어나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읍자(邑子) : 고을 사람의 자제.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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