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76 - 관아 장부를 살피기 위해 사람을 따로 쓸 필요는 없다.

從心所欲 2021. 10. 1. 07:43

[최우석(崔禹錫) <경직도(耕織圖)> 10폭 병풍 中 1폭, 견본담채, 병풍크기 131 x 38.5cm, 국립민속박물관 ㅣ 정재(鼎齋) 최우석(崔禹錫)은 일제강점기의 화가다. 각 병풍차 마다 오중탑동도인(五重塔洞道人)이라는 자신의 별호를 적었다. 안중식(安中植)과 조석진(趙錫晋) 밑에서 전통화법의 수업을 받았으나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산수화와 인물화를 그리다 뒤늦게 전통적 수묵 담채화로 화풍을 바꾸었다.]

 

●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1
무릇 관부(官府)에 책객(册客)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오직 서기(書記) 한 사람이 겸임하여 안 일을 보살피도록 해야 한다.
(凡官府不宜有客 唯書記一人 兼察內事)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4조인 ‘병객(屛客)’은 지방 관청에서 책객(册客), 겸인(傔人) 등 객인(客人)과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책객(册客)은 고을 수령이 문서나 회계 등을 맡기기 위하여 사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고, 겸인(傔人)은 양반집에서 집안일을 맡아보는 청지기, 객인(客人)은 손님을 가리킨다.

 

요즈음 풍속에 소위 책객(册客)이란 한 사람을 두어 회계를 맡겨서 하기(下記) - 즉 날마다 쓰는 쌀ㆍ소금 등의 장부 - 를 살피게 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관부의 회계는 무릇 공용(公用)이건 사용(私用)이건 기입하지 않는 것이 없고, 뭇 아전이나 하인들이 관계되지 않는 자가 없는데, 지위도 없고 명분도 없는 사람에게 이 권리를 총람(總攬)하게 하여, 날마다 재정을 맡은 아전ㆍ노비들과 많네 적네, 비었네 찼네 하도록 하니 어찌 사리에 맞겠는가.

 

이 책객이 아전들의 부정과 숨기는 짓을 적발하면 그 원망은 수령 자신에게 돌아오고 잘못된 일들을 용서하면 해는 수령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자잘한 하기(下記)는 지나치게 따질 것이 못 된다.

수령이 밝으면 아전들은 저절로 속이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좀도둑질이 있다 하더라도 1년 손실은 1만 전(錢) - 백 냥 - 을 넘지 못할 것이고, 회계를 보는 책객을 1년 기르는 비용은 적어도 3 ~ 4만 전은 된다. 소득이 손실을 보충하지 못하고 수령 자신에게 누만 더할 뿐이니 책객은 제거해야 할 쓸모없는 것이다.

▶1만 전(錢) : 당시 통행한 동전은 1개가 1푼이며, 동전 100개가 1냥(兩)이었다.

 

매양 보면 인색한 사람은 책객에게 거듭 일러서 하기(下記)를 자세히 밝혀내게 하는데, 그 때문에 책객은 아전과 약속하기를,

“수령의 성품이 깎기를 좋아하니 나도 괴롭다. 모든 소비되는 비용을 네가 더 기록하면 내가 그것을 깎겠다. 소용되는 기름이 5홉이면 너는 7홉으로 늘리고 나는 5홉으로 깎으면 네게도 손해가 없고 관에서도 잃는 것이 없으며, 나는 중간에서 허물과 책망을 면하게 되니 또한 서로 좋지 않겠는가.”

하면, 아전들은 기꺼이 그와 한통속이 되어, 몰래 토산물을 책객에게 뇌물로 보내고 책객은 남용(濫用)을 덮어주어 이익을 서로 나누어 먹는다.

수령이 퇴임하는 날에 뭇 아전들이 모여앉아 이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손뼉을 칠 것이다. 따라서 수령은 어리석고 책객은 간사하다는 두 가지 악명(惡名)만 남길 것이니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관에서 쓰는 모든 물건은 마땅히 월례(月例)가 있어야 한다. - 자세한 것은 아래 절용조(節用條)에 보인다. - 이미 월례가 있다면 하기(下記)는 무엇 때문에 살피겠는가.

다만 서기 한 사람은 없을 수 없다. 무릇 수령의 집안일은 가재(家宰) - 고례(古禮)에 집안일을 주관하는 가신(家臣)을 재(宰)라 하였다. - 한 사람을 두어서 위아래를 이어주고 안팎을 통하게 해야 할 것이다.

▶월례(月例) : 매월의 정례(定例).

 

무릇 잗다란 일을 관에서 직접 관장하면 체모를 손상하게 되고, 자제들이 보살피면 비천하게 되기 때문에 가재(家宰)는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제사에 쓰이는 물건과 선사하는 물건을 싸고 표지하는 일은 마땅히 이 사람에게 맡기고, 내아(內衙)에서 쓰는 모든 물건을 출납하는 재량도 마땅히 이 사람에게 맡기되, 다만 이 사람으로 하여금 한마디의 명령이나 한마디의 말이라도 내게 해서는 안 되며, 또 틈을 타서 동헌(東軒)에 여쭈어야 한다. 또 무릇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만약 수령 자신의 자제 중에서 대신할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이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이를 기실(記室)이라 하는 것이다.

▶기실(記室) : 기록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

 

수령이 편지 끝에 혹 모수(某倅)라 칭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군수(郡倅)를 반자(半刺)라고 하는데, 수(倅)는 부(副)요 둘째[貳]인 것이니, 영(營) 아래 있는 판관(判官)이 자칭하여 수(倅)라 한다면 옳다. - 공주(公州)ㆍ전주(全州) 등 - 군수(郡守)나 현령(縣令)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수의 음은 취내(取內)의 절음(切音)이니 - 음이 채(蔡)와 비슷하다. - 요즈음 이를 수(粹)라고 읽는 것도 또한 잘못이다.

▶반자(半刺) : 장사(長史)ㆍ별가(別駕)ㆍ통판(通判) 등 군현(郡縣)의 보좌관을 가리킨다. 감영(監營)이나 유수영(留守營) 같은 큰 고을에 둔 판관(判官)이 이에 해당된다.

 

월례(月例) 외에 따로 지출된 것은 이 사람에게 사사로 장부를 만들게 하고 월말의 회계가 끝나거든 회계 문서를 준 후 이 사람에게 사사로 조사하도록 시키되 월례의 소용과 따로 지출된 소용에 착오가 생기면 마땅히 이를 적발하여 동헌에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동헌에서는 수리(首吏)를 불러 이를 바로잡도록 할 뿐이요, 결코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아전이나 노복들을 불러놓고 앉아서 함께 타산하면서 붉은 점을 찍거나 먹으로 지우거나 하는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