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기(律己) 제4조 병객(屛客) 5
가난한 친구와 궁한 친척이 먼 데서 찾아오는 경우에는 곧 영접하여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내야 한다.
(貪交窮族。自遠方來者。宜卽延接。厚遇以遣之)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령이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를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율기(律己)의 제4조인 ‘병객(屛客)’은 지방 관청에서 책객(册客), 겸인(傔人) 등 객인(客人)과 외부로부터의 청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선인(先人)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가난한 친구와 궁한 친척은 잘 대접하기가 가장 어렵다.”
진실로 맑은 선비와 고상한 벗은 비록 매우 가난하고 궁할지라도 친구나 친척을 찾아 관부(官府)에 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찾아오는 자는 대개가 흐리터분한 못난이거나 구차스럽고 비루한 자들로서 혹 얼굴이 밉살스럽고 말이 재미가 없으며 혹 무리한 청탁을 하고 요구가 한이 없으며, 떨어진 옷과 닳아빠진 신에 이가 득실거리며, 혹 내가 일찍이 액운을 만나 궁했을 때는 전혀 돌보거나 근심해주지 않던 자들로 추세(趨勢)만 하는 그 정상이 밉살스러워 반갑게 접대하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다.
대개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글을 짓는 것과 같다. 좋은 제목으로 글을 잘 짓는 것은 공교하다고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어려운 제목으로 묵묵히 생각하여 남다른 변화를 일으키고 문채가 찬란하며, 금옥(金玉) 소리가 나게 함은 글 솜씨가 높은 이들이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측은한 마음으로 자애롭게 대하면서 반갑게 영접하고 얼굴빛도 유쾌하게 하고 말과 웃음도 화락하게 하여, 따뜻한 방에 재우며 풍성한 음식을 먹이고 새옷을 갈아입히며, 돌아갈 때는 전대도 후히 채워 주도록 하여 낭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옛날에 참판 이기양(李基讓)이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되어 이런 부류들을 잘 대우하였더니 달포 동안에 칭찬하는 소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였다. 그가 화를 입자 눈물짓는 자가 유독 많았다. 이런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기양(李基讓) : 조선의 문신(1744 ~ 1802)으로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이가환(李家煥)과 함께 서학(西學)을 강론하고, 나라의 혁신을 위해 서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순조 1년(180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단천(端川)에 유배되었다. |
단 영접하는 날 참알(參謁)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나 아전과 백성이 아직 뜰에 있을 때에는 곧장 책방(册房)으로 가게하고 뜰에 사람이 없어지기를 기다려서, 존장(尊長)일 경우에는 몸소 가서 뵙고 평교(平交) 이하의 사람이면 동각(東閣)에서 접견하되 약속하기를,
“오늘부터 떠나는 날까지 깊이 책방에 거처하고 정당(政堂)에는 나오지 말라.”
하라. 혹 밤이 깊어 관아가 다 파했을 때에는 정당에 나와서 술을 데우고 고기를 익혀가면서 서로 즐겨도 좋을 것이다.
만일 맑은 선비, 고상한 벗이 우연히 관부를 찾아오는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잘 접대할 것이니, 여기서 따로 권할 필요가 없다.
▶참알(參謁) : 원래는 새로 벼슬을 받은 중하급 관원들이 상급 관청을 방문하여 인사하는 의식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수령이 매일 수하의 관속을 접견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존장(尊長) : 나이가 많은 어른을 높여 일컫는 말. ▶평교(平交) : 나이가 서로 비슷한 벗. |
범 문정공(范文正公)이 일찍이 그의 자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오중(吳中)에 종족(宗族)들이 매우 많은데 우리 조종(祖宗)의 입장에서 보면 다 같은 자손들이다. 만약 혼자 부귀를 누리면서 종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다른 날 지하에서 어떻게 조종을 뵙겠으며 이제 또한 무슨 낯으로 가묘(家廟)에 들어가겠는가.”
▶가묘(家廟) : 집안의 사당(祠堂). 신주를 모셔 놓은 집. |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부귀한 집안에 항상 궁한 친척의 왕래함이 있으면 충후(忠厚)한 집안임을 알 수 있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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