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명훈(名訓)은 11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고인(古人)의 짤막한 말이나 대구(對句) 같은 것 중에 속된 것을 치유하거나 세상을 훈계할 만한 것이 있는데, 한거 중에는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11 ‘명훈(名訓)’으로 한다.”
● 회암 선생(晦庵先生 : 회암은 송(宋) 주희(朱熹)의 호)이 말하였다.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뜻[志]을 세워야 하니, 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끝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근사록(近思錄)》
● 정자(程子 : 정이(程頤))가 말하였다.
“뜻을 세워 그 근본을 정하고, 거경(居敬)하여 그 뜻을 붙든다.” 《근사록》
● 상채(上蔡 송(宋) : 사양좌(謝良佐))가 말하였다.
“사람은 반드시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뜻이 서면 근본(根本)이 있게 된다.” 《근사록》
● 명도 선생(明道先生 : 정호(程顥))이 말하였다.
“성인(聖人)을 배워 성취하지 못할지언정 한 가지 잘하는 일로써 이름을 얻으려 하지는 않겠다.” 《근사록》
● 회암(晦庵)이 말하였다.
“학문을 하는 도(道)는 궁리(窮理)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독서(讀書)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주자전서(朱子全書)》
● 왕양명(王陽明 : 양명은 명(明) 왕수인(王守仁)의 호)이 말하였다.
“일분(一分)의 인욕(人欲)을 덜면 일분의 천리(天理)를 얻는다.” 《사자수언(四字粹言)》
● 소강절(邵康節 강절은 : 송 소옹(邵雍)의 시호)이 말하였다.
“심(心)이 확고하여 산란하지 않으면 모든 변화에 응할 수 있다. 이것이 군자(君子)가 마음을 텅 비게 하여 움직이지 않는 까닭이다.” 《지비록(知非錄)》
● 염계 선생(濂溪先生 : 염계는 송(宋) 주돈이(周敦頤)의 호)이 말하였다.
“적연부동(寂然不動)이란 것은 성(誠)이요, 감이수통(感而遂通)이란 것은 신(神)이요, 아직 형상(形象)으로 나타나지 않아 유무(有無) 사이에 있는 것은 기미[幾]이다.” 《근사록(近思錄)》
▶적연부동(寂然不動) ... 기미[幾]이다. : ‘고요하여서 움직이지 아니함‘을 뜻하는 적연부동은 천지 운화(運化)의 신묘(神妙)함을 본체(本體)면에서 형용한 말이고,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만사의 이치에 통달함‘을 뜻하는 감이수통은 그 현상면에서 형용한 말이다. ‘기미[幾]’란 ‘무(無)’는 아니되 아직 감관으로 들어와 알 수 있는 구체적 현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원래 적감(寂感)이란 말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있는 말로, 역(易 : 우주의 대 운행)은 사려(思慮)하지도 않고 작위(作爲)하지도 않으나 위와 같은 신묘한 체용(體用)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송대(宋代)에 와서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의 중요한 형이상학 이론이 되었는데, 그 선구인 주돈이(周敦頤)가 그의 저서 《통서(通書)》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
●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의 수신지요(修身之要 : 수신(修身)하는 요령)에 말하였다.
“말[言]은 충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행위는 독실하고 신중하며, 분(忿)을 참고 욕망을 억누르며, 착한 일을 하고 잘못을 고친다.” 《지비록》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 : 주자(朱子)가 백록동서원에 게시한 학문의 목적과 방법을 적은 일종의 교육 지침. |
●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거든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이 낫고,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내가 그런 행동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공여일록(公餘日錄)》
● 학문 공부는 모르는 데서 점점 아는 것이 생기고 잘 아는 데서 점점 또 모르는 것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공여일록》
● 병에 마개를 꼭 막듯이 입을 다물어 말을 삼가고, 군사가 성(城)을 지키듯 마음에 사욕(私欲)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라. 《공여일록》
▶위 구절은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에 나온다. |
● 혜숙야(嵇叔夜 : 숙야는 혜강(嵇康)의 자)가 말하였다.
“완사종(阮嗣宗 : 사종은 완적(阮籍)의 자)은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를 스승 삼고자 하지만 아직 미치지 못하였다.” 《문선(文選)》
● 설 문청(薛文淸 : 문청은 명(明) 설선(薛瑄)의 시호)이 말하였다.
“소인(小人)은 그와 더불어 사물의 진상을 낱낱이 말할 수 없다.” 《독서록(讀書錄)》
●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 문정은 송(宋) 사마광(司馬光)의 시호)이 말하였다.
“등산(登山)에도 도(道)가 있다. 천천히 걸으면 피곤하지 않고, 안전한 땅을 밟으면 위험하지 않다.”
● 사마 문정공이 말하였다.
“풀이 걸음을 방해하거든 깎고, 나무가 관(冠)을 방해하거든 자르라. 기타 다른 일은 모두 자연(自然)에 맡겨야 하니, 천지(天地) 사이에서 서로 함께 사는 것이라 만물로 하여금 제각기 그 생(生)을 완수하도록 할 것이다.”
● 소 강절이 말하였다.
“착한 사람은 분명 사귈 만하지만 그를 아직 모를 때는 너무 급히 사귀어서는 안 된다. 또 악인(惡人)은 멀리해야 하지만 멀리할 수 없을 때에는 너무 급히 그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 서유자(徐孺子 : 유자는 후한(後漢)의 서치(徐穉)의 자)는 누가 조정의 일을 물으면 언제나 묵묵부답하였다 한다. 이 말은 음미할 만하다.
● 자가자(子家子)가 말하였다.
“가장 즐거운 것은 독서(讀書)만한 것이 없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일만한 것이 없고, 가장 부유(富裕)한 것은 지붕을 기와로 이는 일만한 것이 없고, 가장 곤궁한 것은 전토(田土)를 파는[賣] 일만한 것이 없다.” 《공여일록(公餘日錄)》
●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하루 동안에 혹 한 가지 선행(善行)을 듣거나 한 가지 착한 일을 행하거나 하면 그날은 헛되게 살지 않은 것이다. 《공여일록》
● 호 문정(胡文定 : 문정은 북송(北宋) 호안국(胡安國)의 시호)이 양훈(楊訓 : 호안국의 고제(高弟))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일이 일마다 만족스럽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약간 부족한 것이 좋은 것이다. 만약 사람의 일이 만약 일마다 모두 만족스럽게 되면 곧바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것은 소장(消長)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공여일록》
▶소장(消長) : 쇠(衰)하여 사라짐과 성(盛)하여 자라감. |
● 독서(讀書)는 비단 사람의 기질(氣質)을 변화시킬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도 기를 수 있다. 이것은 이(理)와 의(義)가 사람을 수렴(收斂)하기 때문이다. 《공여일록》
● 왕일천(王一泉)이 말하였다.
“몸을 잘 닦는 자는 덕(德)이 성(盛)하더라도 마치 없는 것처럼 하고, 집을 잘 꾸리는 자는 여유가 있어도 부족한 때를 잊지 않는다.” 《공여일록》
● 인후(仁厚)와 각박(刻薄)은 장단(長短)이 달린 곳이요, 겸억(謙抑)과 영만(盈滿)은 화복(禍福)이 달린 곳이요, 근검(勤儉)과 사정(奢情)은 빈부(貧富)가 달린 곳이요, 보양(保養)과 종욕(縱欲)은 인귀(人鬼)가 달린 곳이다. 《소창청기(小窓淸記)》
▶겸억(謙抑) : 겸양(謙讓) ▶영만(盈滿) : 가득 참. ▶사정(奢情) ; 사치하고자 하는 욕망. ▶인귀(人鬼) : 사람의 형상을 한 귀신. |
● 날 때 모두 한 가지 물건도 가지지 않고 이 세상에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모두 한 가지 물건도 가지지 않고 가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성학계관억설(聖學啓關臆說)》
● 나는 본래 박복인(薄福人)이니 의당 후덕사(厚德事)를 행해야 하고, 나는 본래 박덕인(薄德人)이니 의당 석복사(惜福事 )를 행해야 한다. 《미공십부집(眉公十部集)》
▶석복사(惜福事) : 복을 소중히 알고 누리도록 검소하게 생활하여 가는 일 |
● 속된 말은 장사치와 가깝고, 부드러운 말은 창기(娼妓)에 가깝고 농담은 배우에 가깝다. 사군자(士君子)가 일단 이런 것에 관련하면 위엄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복도 받기 어렵다. 《미공십부집》
● 벼슬에 대한 마음이 강하면 집으로 돌아갈 때 갈 수 없으며, 생(生)에 대한 뜻이 강하면 죽을 때 죽지 못한다. 참으로 담백(淡白)한 데 맛이 있는 것이다. 《미공십부집》
● 한 가지 선(善)한 생각에는 길신(吉神)이 따르고, 한 가지 악(惡)한 생각에는 나쁜 귀신이 따른다. 이것을 알면 귀신을 부릴 수 있다. 《미공십부집》
● 사대부(士大夫)는 마땅히 우국(憂國)의 마음은 있어야 되지만 우국의 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미공십부집》
● 육 선공(陸宣公 : 육지(陸贄))이 말하였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며,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반드시 찬다.” 《공여일록》
● 책을 교감(校勘)할 때 의심스러운 것을 함부로 고치지 않는 자는 그 평생에 허튼말이 없을 것을 알 수 있다. 《공여일록》
● 성심전요(省心銓要 : 송(宋)의 은군자(隱君子)로 매화를 심고 학을 길렀던 임포(林逋)가 지음.)에 말하였다.
“만족할 줄 알면 즐겁고, 탐욕에 힘쓰면 근심스럽다.” 《공여일록》
● 장무진(張無盡)의 석복(惜福)의 설(說)에 이렇게 말하였다.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하지 말고, 복(福)은 끝까지 다 향유하지 말라.” 《공여일록》
● 장무진은 또 말하였다.
“사람은 반드시 만족스럽지 않는 여유가 있도록 해야 좋은 것이다. 만약 일단 만족해 버리면 곧 다른 일이 생긴다.” 《공여일록》
● 일이란 마음에 만족스러울 때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생(生)의 적막함을 면할 뿐만 아니라 조화(造化)를 능히 부리게 된다. 또 말은 뜻이 만족할 때 멈춰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평생 과오가 적을 뿐 아니라 묘미가 무궁함을 깨닫게 된다. 《소창청기(小窓淸記)》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84, 김주희 정태현 이동희 임정기 이재수 정기태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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